정치인 한동훈에 대해 자세히는 모른다. 그렇지만 그가 금융투자소득세를 반대할 때, 그가 좋은 검사였을지는 모르지만 대통령이 될 준비가 되어 있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퍼펙트 스톰’을 언급할 때, 그의 주변에 보수라도 제대로 된 경제학자가 없을 것이라는 의심마저 들었다. 그렇게 따지면 새로 도입할 수 있는 조세는 없다. 환경세나 탄소세 등 앞으로 논의해야 하는 미래형 조세도 많다. 경기 좋을 때만 새로운 세금을 도입하자는 것, 경제학에 그런 이론은 없다.
다시 30년 걸린 금투세 도입 기회
내가 생각하는 국민경제의 기본은 월급 받는 이들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 과세체계다. ‘유리 지갑’이라고 불평하는 사람들과의 형평성, 이게 조세체계 기본이다. 튼튼한 국민경제는 열심히 일하는 직장인들이 집도 사고 적당한 행복을 누리면서 큰 문제 없이 살 수 있는 경제다. 1인당 국민소득 상위권에 있는 스위스도 그렇고 미국도 마찬가지다. 이게 기본이다. 물론 우리는 점점 더 그 상태에서 멀어지고 있다. 청년들은 당대에 집 사긴 힘들다고 판단한다. 그래도 좋은 경제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한국이 일본보다 먼저 그리고 더 우수하게 한 정책은 별로 없다. 그렇지만 1993년 단행된 금융실명제는 한국이 선진국이 되는 기본틀을 만들었다. 국회의장을 지낸 김진표가 당시 실무를 맡았던 걸로 유명하다. 아쉬운 것은 이걸 더 먼저 할 기회가 있었다는 점이다. 이철희, 장영자 사건이 터지고 지하경제의 문제점이 전면화되면서 전두환 정권 때인 1982년 금융실명제 입법을 했었다. 그렇지만 정작 전두환 본인의 불법 정치자금 문제에 부딪히면서 법 실행이 유보되었다. 노태우도 집권하자마자 ‘선진 화합경제’라는 이름으로 금융실명제 예고는 했지만 시행하진 못했다. 결국 금융실명제는 10년 후 김영삼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당시 대통령의 인기는 연예인보다 높았다. 성공한 금융실명제의 후속 조치로 금투세 도입도 검토되었지만, 도입까지 가진 못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과 함께 선진국이 되기 위한 몇 가지 후속 조치 중 하나였다. 그때 했다면 우리의 21세기는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한국이 다시 금투세를 도입할 기회가 생기는 데 30년이 걸렸다.
30년 전이라면 한동훈이 하는 이야기가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을 수 있다. 지금의 코스피 지수로 증권시장을 정비한 것은 1983년 전두환 정권이었다. 코스피의 기준 연도는 도입 시기인 1983년이 아니라 신군부가 집권한 1980년이다. 슬프게도 우리가 코스피를 볼 때마다 신군부가 집권한 그해를 기준으로 매일매일 비교하게 된다. 코스피가 정비되고 10년밖에 지나지 않은 1990년대에 한국의 증시는 불안정했다. 시기상조라는 말은 그 시기에 할 말이다. 한동훈식으로 이야기하면 한국은 영원히 금투세를 도입할 수가 없다. 증시가 안 좋으면 도입할 수 없고, 증시가 좋으면 “하필 이때에” 이런 이유로 도입할 수가 없다. 그냥 하지 말자는 이야기인데, 국가를 운영하는 사람의 자세라고 보기 어렵다.
한동훈 방식이라면 영원히 못해
게다가 지금은 세수 오류 30조원 등 역대급으로 세수 관리가 어려운 시점이다. 재정 관리가 너무 어려워져서 당장 지방 교부금도 줄여야 하고, 유류세도 다시 올리는 등 허리띠를 조여야 하는 상황이다. 앞으로 국가를 운영하겠다는 사람이 너무 책임감 없다.
금융은 실물의 그림자다. 금융 자체가 실물을 지원하고 보완하기 위해서 생겨난 것이지, 실물경제와 상관없이 자기 혼자 걸어가는 것은 아니다. 실물경제가 성장하지 않으면 증시는 제로섬 게임이 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어디에서 오겠는가? 제도적으로 맹점이 아직 많고, 오너 독단으로 대기업이 운영되는 ‘오너 리스크’ 등이 결국은 증시에 반영되는 것이다. 큰손 몇명에 의해서 증시 자체가 흔들리는 상황이라면, 그 자체가 핵심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다. 크게 보면, 제도가 정비되면서 투명성이 높아지고 불확실성을 줄이는 것이 안정적인 투자자인 외국 연기금이 한국 증시에 유입되는 효과로 나타난다. 큰손에 흔들리는 증시, 그건 선진국 증시 모습이 아니다.
한국 경제의 어두운 모습의 상당 부분은 일본에서 왔다. 재벌 순환구조를 비롯해 후진적인 금융 시스템까지, 근원은 일본이다. 금융실명제를 전격 도입하면서 한국이 일본보다 더 발전된 나라가 될 수 있는 제도 정비를 했다. 일본이 금투세를 도입한 것은 1989년이다. 한국과 일본은 싫든 좋든, 여러 가지가 비교될 수밖에 없는 처지다. 큰손 몇 사람에게 의존해서 한국 증시를 지키겠다는 말, 이런 주장이 국제적으로 “한국은 아직 멀었다”고 보이게 만들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