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품 등 ‘한국문학 전도사’
일본 ‘쿠온출판사’ 김승복 대표
학창시절 시인 꿈꿨지만 한계 느껴 ‘철저한 독자’가 되기로 결심
2011년 ‘채식주의자’ 첫 출간…그땐 진열할 곳도 없었는데 위상 달라져
한강 작품은 읽는 이들을 아주 힘들게 하지만 ‘앞으로 나아갈 힘’을 줘
매년 번역콩쿠르·K-BOOK 페스티벌·한국작가 초청 토크 이벤트 개최
종이책 위기는 만드는 사람들 책임, 넷플릭스보다 재밌게 만들면 돼
시한부 판정 뒤 서울서 성공적 수술…‘한국문학의 안테나숍’ 되고 싶어
“노벨 문학상 수상자 발표 후 출판사 직원들이 울고 웃으면서 제게 말하더라고요. 한강 작가가 노벨상 받는 거 보려고, 또 박경리 선생의 <토지> 전 20권 완역·완간을 마치려고 김상(キムさん·김승복씨)이 살았나 보다고요.”
지난 21일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의 한 복합문화공간에서 만난 김승복 대표(55)는 환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일본 도쿄 지요다구 진보초 고서점 거리에서 한국문학 전문 ‘쿠온출판사’와 서점 ‘책거리’를 운영하는 그는 2011년 한강 작가의 소설 <채식주의자>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총 120여종의 한국문학 작품을 번역·출판해왔다. 소설가 김중혁, 김영하, 김애란, 김연수, 김훈, 박성원, 은희경, 정세랑, 최은영, 편혜영, 황석영과 시인 김혜순, 김소연, 박준, 신경림, 오은, 장석의 작품 등이다.
한국문학 알리기에 과도하게 에너지를 써서였을까. 그는 2022년 일본 도쿄의 암치료전문병원인 간켄아리아케(癌硏有明)병원에서 자궁암 진단과 함께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그러다 기적적으로 한국에서 수술을 받았고 목숨을 건졌다.
일본에 거주하는 그가 이번에 3박4일 일정으로 한국에 온 것은 국외 최초로 지난 9월 박경리 작가의 <토지> 20권을 완역·완간했기 때문이다. 2014년 일본어판 번역에 착수해 2016년 1, 2권을 낸 지 8년 만이다. 이를 기념해 <토지> 번역가, 일본 독자, 일본 기자 등 32명과 함께 지난 18일 내한해 19일 경남 통영에 있는 박 작가의 묘소를 참배하고 그곳에서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그는 “한강씨의 노벨 문학상 수상 발표 직후부터 전화통에 불이 났다”며 “일본에 돌아가자마자 밀린 책 주문과 인터뷰, 그리고 한국국제교류재단과 K-BOOK진흥회가 주관해 매년 가을에 여는 ‘K-BOOK 페스티벌’ 준비로 숨 가쁜 일상이 계속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 페스티벌의 실행위원장이다.
한강 노벨상 소식에 ‘전화기에 불’
- 한강 작가의 소설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와 산문집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 일본어판을 쿠온출판사가 출간했으니, 노벨 문학상 발표 후 상당히 분주해졌겠습니다.
“정말 전화기에 불이 났어요. 전화와 팩스로 한 작가의 책을 달라는 서점들의 주문이 끊임없이 밀려들고 있어요. 하지만 이미 재고가 바닥난 데다 일본은 책을 찍어내는 데 몇주가 소요돼 내달 1일에나 서점에 배포할 수 있어요.”
- 한국의 언론·출판계는 한 작가의 수상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일본에선 어땠나요.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봤어요. 일본의 주요 언론사들은 매년 노벨상 시상을 앞두고 각국 후보자들을 추려요. 준비하는 거죠. 과거에는 한국 작가로는 고은 시인을 꼽았지만, 몇년 전부터는 한강, 황석영, 김혜순 이 세 분이 물망에 올랐어요. 그중 누가 받게 되면 수상자 발표 직후인 오후 8시쯤에 꼭 전화를 받아달라고 제게 부탁했어요. 코멘트를 받으려는 거죠. 그래서 저도 미리 할 말을 생각해놨고, 발표 직후 전화를 걸어온 일본 기자들에게 그 이야기를 해줬죠(웃음).”
- 어떤 말을 했습니까.
“제가 9월에 한국에 가서 한강씨가 운영하는 책방(책방 오늘)을 방문했어요. 일본 가마쿠라에 사는 70대 여성이 한강씨 앞으로 보내온 편지를 전달해주기 위해서였어요. 예쁜 편지지 세 장에 육필로 정성껏 눌러쓴 편지였어요. 이 여성은 1년 전 친구 같던 남편을 여의고 너무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해요. 그러던 차에 일본의 한 책방에서 한강 작가의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를 읽게 됐고, 이후 한강씨의 작품을 다 찾아 읽었다고 해요. 이 여성은 편지에 ‘당신의 문장으로 당신의 글로 내가 몸을 추스르게 되었다. 그래서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고 썼어요.”
- 한 작가의 반응은 어떻던가요.
“바로 차분히 앉아서 답장을 쓰셨어요. 한강씨의 그러한 따뜻한 마음 씀씀이를 보며 다시 느꼈죠. 그가 쓴 작품들과 그의 인간성이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을요.”
- 무라카미 하루키가 받기를 바랐을 일본인들은 노벨상이 한국인에게 돌아간 것에 서운함을 느끼지는 않았을까요.
“지금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어요. 그래서 한강씨의 작품들이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더 적합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한강씨도 전쟁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축하 기자회견을 할 수 없다고 말했듯이요.”
김승복 대표는 1969년 전남 영광에서 7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마을에 원전이 들어서면서 밭과 논이 있던 곳에 아파트와 상점, 도로들이 생기고 학교 시설도 현대화됐다. 특히 학교에 도서관이 생긴 것이 “인생에 결정적 한 방이었다”고 말했다. 수업시간에도, 밥을 먹으면서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는 “철이 들어서야 이런 모든 것이 원전의 위험수당이었음을 알게 됐지만, 책 속의 수많은 이야기 속에 빠져 지금도 허우적거리는 것을 보면 나에겐 삶의 방향타가 된 사건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1991년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시 전공) 졸업 후 일본 니혼(일본)대 문예과에서 평론을 공부했다.
- 작가나 평론가가 되고 싶었던 건가요.
“초등학생일 때부터 시를 썼어요. 그런데 대학에 입학해서 시를 정말 잘 쓰는 친구들을 보며 저의 한계를 느꼈어요. 쓰는 것보다 철저한 독자가 되는 게 좋겠다고 마음을 바꿨죠. 일본에서 유학할 때는 백민석 작가의 소설과 김혜순 시인의 시를 비롯해 한국의 스타일리시한 작품들을 번역해 쓴 노트를 동기들에게 나눠주곤 했어요. 친구들의 기억에 의하면, 당시 제가 ‘나중에 한국문학 일본어판을 출판해서 너희들 다 읽게 해주겠다’고 호언장담했대요(웃음).”
- 학교를 졸업하고 아예 일본에 정착한 이유는 뭔가요.
“졸업한 해인 1997년에 한국에 IMF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돌아가지 못했어요. 일자리 찾기가 쉽지 않을 테니까요. 일본에 남아 웹에이전시에 취직했어요. 그 회사에서 2000년 독립했고요. 회사 이름이 온토프(ontoff)였는데 개인과 기업, 지방자치단체에 웹사이트와 종이 홍보책자를 만들어주고 관리해주는 곳이었어요. 잠잘 시간도 모자랄 만큼 회사가 잘돼 돈도 꽤 벌었어요.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일본에 분 한국 붐(드라마·영화·패션·음식 등) 덕도 봤죠. 그런데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회사가 내리막길을 걸었어요. 그래서 출판업으로 업종을 전환해 쿠온출판사를 그해 설립하고 온토프도 인수·합병한 거예요.”
- 첫 책이 2011년 번역·출간한 <채식주의자>였나요.
“그전까지는 출판계의 흐름을 익히려고 주로 한·일 출판사 간 중개업무를 했어요. 그러면서 어떤 한국 작품을 일본에 소개할까 고민하며 독서노트에 각 작품의 감상평과 별점을 기록하기 시작했어요. 별점순으로 ‘새로운 한국문학 시리즈’를 내자고 마음먹었는데, 1등이 <채식주의자>였어요.”
- 어떤 점에 매료됐길래요.
“많은 분이 작가의 세계관을 굉장히 높게 평가하는데, 저는 거기에 더해 한강씨의 문체가 정말 좋아요. 그래서 <채식주의자>를 읽고 내가 꼭 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번역한 김훈아씨도 이 작품을 제일 먼저 내자고 저와 의기투합했어요. 출간 후 요미우리, 아사히, 마이니치, 니혼게이자이, 교도통신 등 일본의 거의 전 언론에 서평이 크게 실렸어요. 이후 쿠온출판사 주최로 <채식주의자> 독서감상문대회도 열었는데, 매우 많은 일본인이 응모했어요. 대다수 분들이 한강씨의 팬이 됐죠. 그런데 이제야 상을 주다니 노벨상이 게으른 것 아닌가요(웃음).”
- 독자들이 매혹된 점은 뭐였나요.
“한강씨의 작품은 출구 없는 폭력에 상처 입은 인간, 깊은 슬픔에 빠진 인간들의 심리를 묘사해서 읽는 이들을 굉장히 힘들게 만들죠. 하지만 그 힘든 것이 단순히 괴로운 감정에 머물게 하는 게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줘요. 또한 여느 작가들과 달리, 책에 어떤 답을 주는 엔딩이 없어 매우 스타일리시하죠.”
이후 그는 김중혁, 김영하, 김애란, 김연수, 편혜영, 은희경, 김훈, 박성원, 최은영, 정세랑, 황석영, 신경숙 등의 소설과 시인 김혜순 등의 시를 잇달아 번역·출판했다. 아울러 한국 명작선으로 최인훈의 <광장>, 오규원 시선집, 정지용 시선집을 냈으며, 지난 9월 박경리 작가의 <토지> 전 20권을 마침내 완역·완간했다.
한국문학 표지판 만들어 발로 뛰며 세일즈
- 2011년 <채식주의자> 일본어판을 펴냈을 때 일본에서 한국문학의 위상은 어느 정도였습니까.
“한국문학 코너가 따로 없을 정도로 번역 종수가 적었어요. 서점 영업을 해야 하는데 서점 관계자나 저나 <채식주의자>를 진열할 곳이 마땅치 않아 난감할 정도였어요. 그런데 당시 도쿄역 앞 대형 서점인 야에스북센터 점장님이 ‘김상, 새로운 한국문학 시리즈 몇번까지 만들 거야?’ 하고 묻는 거예요. 시리즈 권수만큼 한쪽에 진열대를 만들어주겠다는 거였어요. 책에 01이라고 번호를 매겨놨거든요. 그래서 당시 10번까지 목록을 만들어 놨으면서도 일단 ‘24권 있습니다’라고 말했어요. 이후 24권을 냈죠. 그리고 그날부터는 아예 제가 표지판을 만들어서 영업에 나섰어요.”
- 표지판이라면?
“한국문학이라고 쓴 표지판이요. 그걸 꽂아두고 ‘저희 책을 앞으로 여기에 진열하시면 된다’고 이야기한 거죠. 발로 뛰며 그렇게 한 곳씩 설득해나갔어요. 또 문학을 비롯해 인문, 역사, 실용서, 그림책, 만화까지 한국 책이 많이 번역되게 하려고 ‘일본어로 읽고 싶은 한국 책 50선’ 가이드북을 만들어 일본의 출판사들에 배포했어요. 그런 후 편집자들을 모아 설명회를 열었는데 매번 100여개사가 모였어요. 일본 편집자들의 한국 출판사 방문도 매년 주선해요. 그 결실로 쇼분사, 아키쇼보, 쇼시칸칸보, 신센샤 등이 한국문학 시리즈를 냈죠. 그런 과정을 거쳐 일본에서 지금 한국문학의 위상은 영미권 문학을 넘어섰어요. 대형 서점 가장 잘 보이는 곳에 한국문학 코너가 있죠(웃음).”
한국문학 저변 확대를 위해 그가 한 일은 이뿐만이 아니다. 2018년부터 매년 번역콩쿠르를 개최해 한국어 번역가를 배출하고 있고, 책을 만드는 사람, 읽는 사람, 쓰는 사람, 파는 사람들이 함께하는 ‘K-BOOK 페스티벌’도 연례행사로 열고 있다. 독자들이 함께하는 방한프로그램 ‘한국문학기행’도 실시하고 있다. 쿠온출판사가 위치한 지요다구 진보초 고서점 거리에 2015년 한국 책 전문 서점 ‘책거리’도 냈다. 이곳에서 한국 작가 초청 토크 콘서트 등 한국문학 관련 행사를 연 100회가량 열고 있다고 한다.
‘토지’ 완역까지 일본 독자들 성원 큰 힘
- 2014년 번역 착수 10년 만에 지난 9월 <토지> 전 20권을 완역·완간했지요. 어떻게 대하소설 <토지> 일본어판을 낼 생각을 했습니까.
“한국문학 팬층이 형성되면서 좀 더 묵직한 소설을 찾는 독자들이 생겼어요. 최명희 작가의 대하소설 <혼불>도 생각했지만 번역이 어려울 것 같아 우선 박경리 작가의 <토지>를 먼저 낸 거예요.”
- <토지>는 시대적 배경이 일제강점기로 일본(인)과 친일파들의 악행에 대한 언급이 많아요. 그런 점이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나요.
“2016년 <토지> 1, 2권이 나온 후 오히려 많은 독자의 성원이 전화로, 엽서로 이어졌어요. 정기구독을 해준 서점과 기관들도 있고요. 이번에 통영에 같이 온 독자 한 분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토지>는 1945년 8월15일에 이야기가 끝난 것에 대한 역사적 질문’이라고요.”
- 한국의 역사가 담긴 시대물인 만큼 번역도 상당히 어려웠을 것 같아요.
“그래서 작업 전에 요시카와 나기, 시미즈 지사코, 편집을 맡은 후지이씨가 소설의 무대인 평사리, 간도, 블라디보스토크 등을 답사했어요. 토지학회 분들에게 도움도 받고요.”
- 현재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한국 작가는 누구인가요.
“한강씨 말고도 너무 많아요. 김초엽, 정세랑, 최은영, 김연수, 천선란, 박민규….”
- 한국에서는 종이책 위기에 대한 경고가 오래전부터 있었어요. 일본은 어떻습니까.
“전 세계가 다 그런 것이긴 한데, 결국 작가를 포함해 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책임이죠. 넷플릭스보다, 프리미어리그 축구보다 우리가 더 재미있게 잘 만들면, 종이책의 위기는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2년, 그의 삶에 커다란 위기가 찾아왔다. 자궁에 악성종양이 생겨 급속도로 커졌다. 도쿄의 암치료전문병원인 간켄아리아케병원의 산부인과 전문의는 수술이 불가능해 남은 삶은 3개월뿐이라며 호스피스 의사와 상담하게 했다. 일본의 다른 병원에서도 같은 판단을 했다. 조용히 삶을 정리하던 때, 한국의 가족과 친구인 하성란 소설가 등 문인들이 한국행을 권했고, 그는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한국에서 진료받은 대형 병원 세 곳 중 유일하게 서울삼성병원에서 수술이 가능하다는 말을 들었다. 떼어낸 종양의 무게는 8㎏에 달했고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 지금은 건강한가요.
“아주 건강해요. 수술 후 요양을 위해 서울삼성병원이 있는 강남 일원동에 집을 얻어 1년간 쉬었어요. 그때 동네 도서관에 다니며 시간에 쫓기지 않고 이런저런 책을 읽은 시간도 좋았고요. 지금은 3개월에 한 번씩 한국에 들어가서 암이 재발하지는 않는지 추적 관찰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저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 행복한 사람 10명이 있으면 그중 한 명은 저라고 자부할 만큼 즐겁게 살아왔으니까요.”
김승복 대표는 도쿄의 한 아파트에서 출판사 동료이기도 한 고교(영광여고) 선배와 같이 살고 있다. 연애는 늘 하고 있지만 혼자만의 시간도 소중해 매번 결혼에 이르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는 “아침이 오는 게 설렌다”고 말했다. 매일 오전 4시에 잠에서 깨면 “23명의 김승복이 모여 회의를 하는데, 그 시간이 즐겁다”는 것이다. 그만큼 한국문학을 위한 이런저런 궁리를 하는 게 행복하다는 의미다. 그는 “쿠온출판사와 책거리는 일본의 출판사와 독자들에게 한국문학의 안테나숍이 되고 싶다”며 “일본의 더 많은 출판사들이 한국 작가의 책을 낼 수 있도록 앞으로도 부단히 뛰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