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죄인이 되지 말라”···좌우 아우른 민족주의자 봉강 정해룡 평전 출간

2024.10.30 18:07 입력 2024.10.30 20:04 수정

독립자금 지원·학교 설립에 헌신

“역사의 죄인 되지 말라” 가훈 속

1980년 보성가족간첩단 사건 연루

일가 30여명 체포···멸문 위기까지

정해룡(왼쪽)과 정해진(오른쪽) 형제가 모친 윤초평 여사와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가운데는 정해룡의 매제 안용섭. 정해진은 한국전쟁 중 월북해 북한 대남사업부 부부장을 지냈다. 도서출판 길 제공.

정해룡(왼쪽)과 정해진(오른쪽) 형제가 모친 윤초평 여사와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가운데는 정해룡의 매제 안용섭. 정해진은 한국전쟁 중 월북해 북한 대남사업부 부부장을 지냈다. 도서출판 길 제공.

전라도 지역의 덕망 높은 명문가로 일제 시대에는 항일 독립운동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해방 후에는 통일 운동에 헌신했으나 전두환 정권 시절 일족이 간첩단으로 몰려 멸문에 가까운 화를 입은 가문이 있다.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261호로 지정된 보성 봉강리 정씨 고택 ‘거북정’의 주인이었던 봉강 정해룡(1913~1969)과 영성 정씨 일가 이야기다.

좌우를 넘나들며 민족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 헌신했던 정해룡의 일대기를 담은 <정해룡 평전>(도서출판 길)이 최근 출간됐다. 정해룡과 일가가 겪은 비극은 일제 식민지배와 분단 체제가 이 땅에 남긴 상처를 고스란히 대변한다.

정해룡은 충무공 이순신의 종사관을 지낸 반곡 정경달(1542〜1602)을 배출한 영성 정씨 사평공파 종손으로 태어났다. 3000석 규모 대지주였던 그의 집안은 춘궁기와 흉년이면 마을 사람들에게 곡식을 푸는 가풍을 이어와 대대로 높은 평판을 쌓았다.

정해룡은 ‘일제가 세운 학교에서 교육시킬 수 없다’는 조부의 뜻에 따라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했다. 반면 동생 정해진은 경성제대와 동경제대에서 공부했다. 정해룡도 학교는 다니지 않았으나 가정교사를 초빙하고 와세다 대학 통신수학 과정을 이수하는 등 신학문을 공부했다.

정해룡은 선대로부터 이어받은 땅 이외에도 양조장과 인쇄소를 운영해 상당한 부를 쌓았으나 독립 운동 자금 지원으로 많은 재산을 소진했다. 교육을 통해 독립 역량을 기르는 데도 돈을 아끼지 않았다. 정해룡은 1935년 인촌 김성수를 처음 만난 이후 여러 차례 보성전문학교(고려대 전신) 발전기금을 기부했다. 1937년에는 보성에 수업료를 받지 않는 4년제 사립학교 ‘양정원’을 설립해 교재와 학용품까지 무상으로 제공했다.

해방 후에는 몽양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 지역위원장을 맡았고, 건준 해체 뒤에는 여운형의 근로인민당에 들어가 중앙위원 겸 재정부장을 맡았다. 정해룡은 남북분단을 막고 통일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남한의 우익세력과도 협력해야 한다는 여운형의 노선을 추종했다.

정해룡은 독립과 통일에 좌우는 없다는 신념을 지녔으나 해방 이후 좌우 이념 대립과 분단은 정씨 일가의 미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한국전쟁 발발 후 인민공화국(인공)에 협조했던 일가 친척 여러 명이 빨치산 활동을 하다 토벌군에 사살됐다.

정씨 일가를 무너뜨린 결정적 사건은 1980년 11월 이른바 ‘보성가족간첩단 사건’이다. 한국전쟁 중 월북했던 동생 정해진이 1965년 8월 봉강리에 몰래 찾아온 것이 사건의 발단이다. 정해룡은 자신의 셋째 아들 정춘상을 북으로 보낸다. 정춘상은 보름가량 북에 머문 뒤 김일성 친서, 소련제 기관단총, 난수표, 공작금을 들고 돌아왔다. 공작 사업에 별다른 진전이 없자 1967년 정해진이 한 차례 더 봉강리에 왔으나 1969년 정해룡이 사망하면서 공작 임무는 유명무실해졌다.

이 사건으로 정해룡의 일가 30여명이 체포됐다. 북에 다녀온 정춘상은 1985년 사형됐다. 빨치산 활동 중 실명했던 정해룡의 숙부 정종희는 무기징역, 여섯째 아들 정길상은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다.

봉강 정해룡. 도서출판 길 제공

봉강 정해룡. 도서출판 길 제공

평전을 집필한 문영심 작가는 “‘역사의 죄인이 되지 말라’는 가훈은 해방 전의 독립운동과 해방 후의 사회주의 투쟁으로 수렴되었으며, 그것은 집안 전체에 대한 탄압으로 이어졌다”고 평가했다.

<정해룡 평전>은 1987년 석방된 정길상씨(78)가 선친의 생애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20년 가까이 애쓴 결과물이다. 정씨는 2007년부터 자료를 모으고 학자들을 찾아가 평전 집필을 요청했다. 우여곡절 끝에 김재규 평전을 쓴 문 작가가 2020년 원고를 탈고했고, 한홍구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감수를 거쳐 평전이 출간됐다.

문 작가는 전화통화에서 “공안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정길상 선생이 다른 분들에게 피해가 갈까봐 많은 자료를 스스로 없애 집필에 어려움이 있었다”면서 “평전을 통해 우리 민족이 어떻게 원치 않는 분단에 이르렀는지, 그리고 끝내 통일을 원했던 사람들에게 어떤 피해가 닥쳤는지를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출간에 맞춰 31일 오후 4시 서울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출간기념회가 열린다. 김민환 고대 명예교수,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이부영 전 의원, 정근식 서울시교육감, 한홍구 성공회대 석좌교수, 함세웅 신부, 표완수 전 YTN 사장 등을 포함한 진보진영 인사들이 ‘봉강정해룡평전출판기념회’ 준비위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역사의 죄인이 되지 말라”···좌우 아우른 민족주의자 봉강 정해룡 평전 출간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