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6·1 국회의원 보궐선거 공천에 직접적으로 관여한 정황이 31일 드러났다. 윤 대통령이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을 공천개입 승인·공모만으로도 기소했다는 점에서 큰 파장이 예상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유사한 혐의로 탄핵소추를 당하기도 했다. 다만 윤 대통령이 발언 시점 기준에선 당선인 신분이었다는 점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이 이날 공개한 녹음에서 윤 대통령은 2022년 5월9일 명태균씨에게 “공관위에서 나한테 들고 왔길래, ‘내가 김영선이 경선 때도 열심히 뛰었으니까 그거는 김영선이 좀 해줘라 그랬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는 통화가 이뤄진 직후인 2022년 5월10일 김영선 전 국민의힘 의원을 경남 창원 의창 국회의원 후보로 전략공천했다.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가 윤 대통령의 통화가 이뤄진 5월9일까지도 공천을 확정짓지 않았다는 점에서 공천 개입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창원 의창에는 김 전 의원을 제외하고도 김종양 국민의힘 의원 등 7명이 공천을 신청해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는 지역이었음에도 경선 없이 후보가 확정됐다. 김 전 의원의 전직 보좌진 강혜경씨도 명씨가 2022년 6월 보궐선거를 앞두고 김건희 여사와 통화한 음성녹음을 여러 번 들려줬다며 김 여사가 명씨에게 ‘오빠 전화 왔죠? 잘될 거예요’라고 말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오빠’는 윤석열 대통령을 지칭한 것으로 해석된다.
공천개입은 헌법과 공직선거법이 규정하는 정치적 중립 등의 의무를 위반하는 행위다. 헌법은 공무원을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 규정하고 자유선거의 원칙을 천명한다. 국가기관이나 공무원은 자신을 특정 정당, 정치적 세력과 동일시해 선거에서 영향을 미치면 안 된다. 공무원의 선거 중립 의무이다. 공직선거법 제9조도 “공무원, 기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자는 선거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의 행사,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해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한다.
공천 개입으로 처벌된 대표적인 사례가 윤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기소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은 20대 총선을 앞둔 2015·2016년 새누리당 공천에 개입한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현기환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이 친박계 인물들의 총선 여론조사를 실시한 뒤 선거전략을 수립하고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 구성에 관여한 것을 승인·공모했다는 혐의로 기소당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17대 총선을 앞둔 2004년 열린우리당(현 민주당)을 지지해달라고 발언했다가 선거 중립 의무 위반으로 탄핵소추를 당했다. 헌법재판소는 노 전 대통령이 중립 의무를 어기기는 했지만 중대한 위반은 아니라며 기각했다.
다만 윤 대통령이 통화한 시점에는 당선인이었다는 점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명씨와 통화 직후인 2022년 5월10일 취임했다. 헌법과 공직선거법이 정치적 중립 의무를 적용하는 것은 공무원 신분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노종면 민주당 의원은 국회에서 기자들이 ‘5월9일 당선인 신분인데 공직선거법 적용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행위가 영향 미치는 게 5월10일 발표”라며 “대통령 임기 중에 일어난 일로 법적 판단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