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상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이 소위원회에서 위원 간 의견이 갈리면 진정을 기각·각하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지난해 자신이 막말을 했다는 비판을 받은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해고노동자 진정’을 예로 들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농성 중인 한국옵티칼 노동자들이 낸 진정 사건을 심의하기도 전에 “기각할 것”이라고 말해 심의에서 배제됐던 이 상임위원은 이 사건에 대해 “22년간 인권위 실무 관행의 단점”이며 “기각이 딱한 근로자를 돕는 길이고, 회사에도 좋고 대한민국에도 좋다”고 밝혔다.
경향신문이 31일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인권위의 ‘소위원회 의결정족수의 요약본’ 의견서를 보면 이 상임위원은 “22년간 소위에서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면 전원위에 회부되거나 회부해야 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던 것으로 인한 문제가 있었다”며 “실무 관행의 단점은 전원위에 회부하는 것이 아주 부적절한 실제 사례인 한국 옵티칼 사건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고 주장했다.
외국인투자(외투)기업 한국옵티칼하이테크는 2022년 10월 구미 공장 화재 이후 한국 철수를 결정했다. 고용승계는 이뤄지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희망퇴직에 응하지 않은 노동자 17명이 해고됐고, 13명이 농성에 들어갔다. 이후 농성장은 단수조치가 됐는데, 노동자들은 인권침해라며 인권위에 긴급구제를 신청했다. 하지만 긴급구제 결정이 한 달 넘게 나지 않자, 진정인들은 이를 취하하고 진정 사건으로 다시 제출했다.
이 사건을 담당했던 이 상임위원은 지난해 10월 전원위 공개석상에서 “사건 소위에서 기각해야 겠다고 벼르고 있는 사건이 있다”며 “빨리 기각하는 것이 불쌍한 근로자들을 진정으로 도와주는 길”이라고 발언해 논란을 일으켰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노동자들은 이 상임위원에 대한 기피 신청을 냈고, 이는 인용됐다. 진정 사건 자체는 인권위가 아직 조사 중이다.
인권위가 아직 조사 중인 안건에 대해 이 상임위원은 의견서에서 재차 반노동적 관점을 드러냈다. 그는 “적법하게 해고된 13명만 민주노총 관계자 17명과 함께 노조 사무실을 불법점거 해 농성하면서 공장을 다시 지어 일을 맡기라고 요구하고 있다”며 “행정소송에서 승소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동정적인 (인권위) 조사관이 그 근로자 13명이 세탁, 용변을 위해 집을 왔다 갔다 한다고 썼지만, 불법점거 농성을 하면서 물 사용과 관련한 자신들의 불편을 덜기 위해 수돗물 공급계약의 당사자가 아닌데도 구미시를 피진정인으로 ‘단수는 인권침해’라고 진정하는 것은 턱도 없는 진정”이라고 했다. 이어 “하루빨리 이 진정을 기각하고 행정소송에서 원고를 패소판결 해주어 늦지 않게 일자리를 알아보게 하는 것이 딱한 그 근로자들을 돕는 길”이라고 썼다.
지난 28일 인권위는 소위원회 위원 간 의견이 모이지 않더라도 기각·각하가 가능하도록 의결했다. 이로 인해 소위에서 한국옵티칼 진정 사건이 일부 위원의 독단으로 기각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진정 사건 조사·조정 및 심의는 비공개로 진행토록 한 인권위 규정으로 소위에서의 기각시 진정인이 그 이유를 알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해고노동자 17명 중 7명은 여전히 농성을 이어가는 중이다. 박정혜 옵티칼 노조 수석 부지회장과 소현숙 조직부장은 10개월째 공장 옥상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