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세 진씨 아내, 무죄 판결 위해 일본에서 와
“남편 억울함 끊어내고자 이날까지 기다려”
법원 “가혹행위로 진술 임의성 없어,
오늘 판결이 유족에게 작은 위로가 되기를”
“지금까지 50년이나 고생을 했습니다. 이제 마음 놓고 잠을 잘 수 있겠습니다.”
1974년 가을 어느 날, 고 진두현씨의 아내 박삼순씨(92)와 두 아들은 보안사령부(보안사)로부터 “진씨는 북한 간첩”이라는 말을 들었다. 진씨의 아내는 “열심히 살아온 사람을 그렇게 얘기하면 누가 믿을 수 있겠냐”라며 당시 심정을 떠올렸다. 보안사는 “북한에서 간첩 교육을 받고 국내에 잡입했다”며 진씨를 끌고 갔다. 진씨는 1976년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됐고 16년간 수감 생활을 한 뒤 1990년 가석방됐다. 그는 2014년 세상을 떠났다. 진씨가 보안사에 연행된 지 50년이 흘렀고, 세상을 떠난 지 10년 만에 아내 박씨가 남편을 대신해 법정에 섰다. 남편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서였다.
서울고법 형사10부(재판장 남성민)는 31일 진씨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재심 사건의 선고기일을 열었다. 이날 박씨는 선고를 직접 보기 위해 일본에서 법정까지 날아왔다. 고령의 나이로 휠체어를 탄 박씨는 긴장된 표정으로 법정에 들어섰다. 진씨와 같은 혐의로 강제 연행돼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던 고 박석주씨의 아들 정민씨도 함께 선고를 기다렸다.
재심 결과는 ‘무죄’였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보안사에 의해 불법 체포·구금돼 가혹행위를 당했다”면서 임의성이 없는 상황에서 조사와 진술이 이뤄진 것으로 볼 정황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보안사가 수사 권한이 없는 민간인을 불법으로 구금했으며, 진씨와 박씨에게 가혹행위를 해 진술을 이끌어 냈다는 것이다. 검찰은 재판 과정에서 나온 진술에는 강제성이 없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임의성이 없는 상태가 공판 단계에서 단절됐다는 점은 검찰이 증명해야 하는데, 그 점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설령 피고인들의 진술 임의성이 인정돼서 증거능력이 인정되더라도 재심 청구인들이 제시한 객관적 증거와 배치돼 신빙성이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배우자가 첫 공판에서 한 진술 내용이나 오늘 선고를 위해 일본에서 직접 온 것을 보더라도 반세기가 흘렀지만 그 가족들은 그때의 고통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며 “오늘의 판결이 피고인들과 유족에게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며 선고를 마쳤다. 방청석에서는 박수갈채가 나왔다. 정민씨는 눈물을 삼키며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았다. 한국어가 서툰 박씨는 선고가 끝난 뒤 “무죄래요”라는 변호사의 말을 듣자 그제서야 표정이 환해졌다. 박씨는 법정을 향해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박씨는 선고 뒤 기자들과 만나 “우리말도 못하며 50년을 큰 고통 속에 살았지만 마지막에 무죄로 남편의 억울함을 끊어내고 싶다는 생각으로 기다렸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로 끝내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강조했다. 검찰의 항소를 염려한 말이었다.
변상철 공익법률센터 파이팅챈스 소장은 “앞으로 피해자들에 대해 무리하게 재판을 이어가지 않는 것이 유일하게 피해자들에게 위로의 마음 전할 수 있는 것”이라며 “이번 무죄 판결을 반면교사 삼아 과거사 사건에서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까지 통혁당(통일혁명당) 재건위 사건으로 기소된 17명 중 총 4명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은 북한 지령을 받은 인사들이 통혁당을 결성해 반정부 활동을 했다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민간인 15명과 군인 2명을 기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