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지도부, 장외 집회서 탄핵·하야 언급
이재명 “하고 싶은 말 다 할 수 없어…양해 바라”
중도·보수 외연 확장에 도움 안 된다는 판단
‘11월 위기설’과 민주당 지지율 정체도 원인
안팎에서 분출하는 윤석열 정권 퇴진 촉구 메시지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탄핵과 하야, 임기단축 개헌 등 다양한 방법론이 제시되고 있지만, 차기 대선을 앞두고 중도·보수로의 외연 확장 승부수를 띄운 이 대표가 정권 퇴진 운동에 섣불리 참여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는 평가가 3일 나온다.
민주당에선 최근 윤 대통령이 명태균씨에게 김영선 전 국민의힘 의원의 공천을 언급하는 통화 음성 파일이 공개된 이후 윤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2일 서울역 앞에서 열린 ‘김건희·윤석열 국정농단 규탄·특검 촉구 국민 행동의 날’ 집회에선 그동안 탄핵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던 지도부 인사들의 관련 발언이 쏟아졌다. 김민석 최고위원은 “시작했으니 끝을 봐야 한다”며 “특검이든, 탄핵이든, 개헌이든 대한의 봄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고, 이언주 최고위원은 “자신과 배우자, 처가의 비리를 덮는 내로남불의 대명사가 됐다”며 “윤 대통령은 내려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현희 최고위원도 “윤석열 정권 심판 열차를 출발시키자”며 “썩은 이는 뽑아야 한다”고 밝혔다.
민주당 의원들의 발언 수위도 더욱더 높아졌다. 강득구 의원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더 절박한 특검과 탄핵에 앞장서겠다”고 밝혔고, 박지원 의원은 “대통령 내외분은 하산을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민주당·조국혁신당 소속 의원 21명은 지난 1일 윤 대통령 임기를 2년 줄인 개헌안 추진을 목표로 하는 ‘임기 단축 개헌 의원 연대(개헌연대)’까지 결성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정중동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 대표는 2일 집회에서 “2016년 10월29일 청계광장에서 박근혜 정권을 질타하는 연설을 했을 땐 성남시장, 변방의 장수여서 자유롭게 말했지만, 지금은 제1야당 대표라는 무거운 책임감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는 없다는 점을 양해해달라”고 말했다.
친이재명(친명)계 수도권 의원은 통화에서 “대통령 탄핵은 국민과 여론이 하는 것”이라며 “이 대표가 직접 나설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기자간담회에서 ‘지도부에서 탄핵과 임기단축 개헌 논의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당 차원에서 공식 논의된 바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윤 대통령과 명씨 통화 음성 내용이 탄핵 사유가 되는지에 관한 질문에도 “많은 분이 녹취 내용을 기초로 (윤 대통령이) 헌법 질서를 지키지 못하고 있고 탄핵 사유로 생각하는 것 같다”면서도 “탄핵과 관련된 부분은 지도부이기 때문에 답변하지 않겠다”고 말을 아꼈다.
당내에선 최근 외연 확장에 나선 이 대표가 탄핵과 관련해 의도적으로 말을 아끼고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지난달 30일 소상공인·자영업자와 민생 경제 간담회를 연 이 대표는 4일 ‘SK 인공지능(AI) 서밋’ 행사, 11일 한국경영자총협회 간담회 참석 등 정책 행보에 주력하고 있다. 이 대표 측 관계자는 “강경한 목소리는 주변에서 내주면 된다”며 “이 대표는 당분간 먹고사는 문제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의 지지부진한 지지율이 이 대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한국갤럽 10월 5주차 여론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에서 윤 대통령 지지율이 정권 출범 후 최저인 19%를 기록했지만, 민주당은 정당지지도에서 국민의힘과 같은 32%를 얻는 데 그쳤다. 일각에선 ‘11월 위기설’에 휩싸인 이 대표의 각종 사법 리스크가 민주당 지지율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에 이 대표가 직접 탄핵을 언급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