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영화 리메이크작 <청설> 주연 배우 홍 경
배우 홍경(28)의 말간 얼굴을 볼 때면 ‘백지 같다’는 진부한 표현이 절로 떠오른다. 세상에서 가장 순진무구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어딘가 묘하게 뒤틀린 데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영화 <청설>(6일 개봉) 속 홍경의 얼굴은 지금까지와는 또 다르다. 동네에서 흔히 볼 법한 수수한 모습의 ‘용준’은 대학을 졸업했지만 딱히 잘 하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다. 그런 그에게 첫사랑이 찾아온다. 용준은 간질거리는 마음을 숨김없이 꺼내보인다.
“20대일 때 꼭 첫사랑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그 찰나의 감정을 영화로 담아볼 수 있다는 게 너무나도 시네마틱하거든요.”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홍경이 말했다.
<청설>은 동명의 대만 영화를 리메이크한 로맨스 영화다. 용준이 부모님 일을 돕다 만난 동갑내기 여름(노윤서)에게 첫눈에 반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용준은 수어로 대화하는 여름과 가을(김민주) 자매를 보고 대학 시절 익힌 수어로 말을 건다.
홍경은 여름, 가을과 함께 하는 대부분 장면을 수어로 소화했다. 촬영 돌입 전 3개월 간 함께 수어 훈련을 한 주연 배우들은 눈빛과 표정, 몸짓으로 마음을 표현한다. 음성 언어가 아닌 수어로 연기하는 것은 어렵지만 특별한 경험이었다. “수어를 하면 상대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어요. 상대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뭘 느끼는지 온 신경을 집중해 들여다봐야해요.”
노윤서, 김민주와 대부분 장면 수어로 소화
한국 여름 배경으로 세 사람 청춘 싱그럽게 담아
“20대 초상 깊이 투영…원작과 다른 특별함”
영화는 한국의 여름 풍경을 배경으로 세 사람이 쓰는 청춘의 한 페이지를 싱그럽게 담아낸다. 용준과 여름, 가을이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과정에선 첫사랑, 꿈 같은 청년의 고민이 드러난다. 홍경은 이 지점에서 원작과는 다른 특별함이 피어난다고 설명했다. “용준과 여름, 가을 모두 자기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나아가요. 이 시기를 지나는 20대의 초상이 깊이 투영되어 있는데 그게 우리 영화가 가진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청량청량한 멜로’나 ‘말랑말랑한 로맨스’도 의미있지만요.”
잘 알려진 원작의 리메이크에 출연하는 건 장·단점이 뚜렷한 선택이다. 홍경의 ‘용준’은 팽우안의 ‘티엔커’와의 비교를 피할 수 없다. 그럼에도 용기를 낸 것은 작품이 가진 순수함 때문이다. “용준이 자기 마음을 온전히 내던져요. 그 모습이 굉장히 매력적이었죠. 요즘처럼 모든 게 빠르게 휘발되는 시대에 <청설>은 ‘변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고 생각해요.”
홍경은 지금 가장 주목받는 20대 남자 배우 중 하나다. 2017년 드라마 <학교 2017>로 데뷔한 이래 <D.P>, <약한 영웅 Class 1>, 영화 <결백>, <댓글부대> 등을 거치며 인상적인 발자국을 남겨왔다. 지난달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식 사회를 봤고, 지금은 변성현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 <굿뉴스>를 촬영 중이다. 그래도 홍경은 여전히 고민이 많다. 그는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떻게 가고 있는지 매 순간 생각한다”며 “나의 초상을 잘 남기고 싶다는 고민이 짙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청설>은 각별하다. 20대의 끝자락에 선 시기에 만난 마지막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20대 배우가 주축이 돼 이 시기에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영화로 그려낼 기회는 적었어요. 우리 20대 배우들도 충분히 스크린 안에서 춤출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청설>을 통해 20대 만이 낼 수 있는 에너지와 설렘, 처음이라는 테마를 관객에게 잘 전해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