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웃기고 싶은 코미디언들의 고민···‘저질 개그’와 ‘고급 개그’를 가르는 것은?

2024.11.04 16:25 입력 2024.11.04 20:52 수정

<코미디 리벤지> 연출한 권해봄 PD가 말하는 좋은 코미디란?

<코미디 리벤지>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코미디 리벤지>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버텨! 할 수 있어! 이번에는 보여줘!”

넷플릭스 <코미디 리벤지>를 보다 보면 간간이 <피지컬 100>에 나올법한 외침이 들린다. 관객들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연기 중인 동료들을 지켜보던 코미디언들이 자기도 모르게 내뱉는 응원소리다.

<코미디 리벤지>는 지난해 방송된 <코미디 로얄>의 후속이다. <코미디 로얄>에서 국내 정상급 코미디언들은 넷플릭스 단독 쇼 론칭 기회를 두고 코미디 대결을 펼쳤다. <코미디 리벤지>는 당시 우승한 이경규팀이 호스트가 돼 만든 코미디 서바이벌이다. ‘리벤지(복수)’라는 이름이 암시하듯, ‘로얄’에서 혹평을 받고 패배했던 코미디언들이 대거 출연한다.

좋은 코미디란 무엇일까. 공개되자마자 넷플릭스 ‘탑 10’ 1위를 찍었던 전작만큼 큰 화제를 모으진 못했지만, <코미디 리벤지>에서는 요즘 다수의 코미디 콘텐츠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던 코미디 장르 자체에 대한 고민이 드러난다. 전작 방영 때 쏟아진 비판을 수용해 선정성·불쾌감과 웃음 사이에서 더 조심스럽게 줄을 타고, 독특한 형식의 미션을 통해 코미디언들의 역량을 보여주려 애쓴다.

코미디, 통념을 비틀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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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쿠팡플레이 <SNL 코리아>는 드라마 <정년이>를 ‘젖년이’로 패러디하는 과정에서 ‘게으른 관성’을 보여줬다. ‘젖년이’는 춘향가 일부를 성적으로 개사해 부르며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몸짓을 했다. 이름 중 ‘정’이란 글자가 ‘젖’으로 바꿔부르기 쉽다는 것 외엔 정년이가 갑자기 젖년이가 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SNL 코리아>는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화제의 인물’도, 유명 정치인도 아닌 가상의 캐릭터에 맥락없는 성적 코드를 집어넣었다.

‘로스팅’(상대를 구워버리듯 독한 농담으로 공격하는 것)이라는 장르가 있을만큼 누군가를 흉내내거나 놀리는 것은 코미디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다. 하지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웃음 대신 불쾌감만 선사하기도, 반대로 놀림당하는 사람까지 웃어버리게 만들기도 한다. 둘을 가르는 기준은 어떻게 잡을 수 있을까.

<코미디 로얄> <코미디 리벤지>를 연출한 권해봄 카카오엔터테인먼트 PD는 “기준까지는 모르겠지만, 코미디에는 통념을 비트는 ‘반전의 미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권해봄 PD.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제공

권해봄 PD.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는 <코미디 로얄> 때 많은 비판을 받았던 ‘원숭이 교미’ 개그를 언급했다. 당시 메타코미디 소속 코미디언인 이재율, 이선민, 곽범은 콩트 미션에서 원숭이들이 교미하는 장면을 흉내냈고, 이경규가 ‘저질’이라고 크게 화를 내는 장면이 그대로 방송됐다.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 코미디의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는데, 원숭이 코미디에는 그런 지점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많은 사람에게 ‘실패한 코미디’라고 받아들여졌고요. 사실 연출자로서 그 개그가 재밌다고 생각했다면, 이경규씨가 화내는 리액션 대신 깔깔 웃는 장면을 붙일 수도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코미디언들이 개그를 두고 논쟁하는 과정을 그대로 담아서, 이들이 이 일에 얼마나 진심인지도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재율, 이선민, 곽범은 <코미디 리벤지>에서도 같은 팀으로 출연해 성적 개그로만 도배했던 전작과는 다른 스타일의 코미디를 보여준다. 이 팀은 이번에 준우승을 차지했다.

“갑자기 욕설을 내뱉는 건 저질스럽지만, 직접적으로 웃길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거든요. 하지만 그런 원색적인 것은 최대한 배제하고, ‘아이디어’로 승부를 보자는 이야기를 출연자들과 많이 나눴어요. 통념을 뒤집는 발상, 참신한 아이디어가 우선되는 코미디를 하려고 했습니다.”

정극 배우들과 함께한 즉흥극

<코미디 리벤지>의 호스트로 나선 이경규(가운데). 넷플릭스 제공

<코미디 리벤지>의 호스트로 나선 이경규(가운데). 넷플릭스 제공

아무런 대본없이 즉흥적으로 극을 만드는 코미디인 ‘임프랍(Improv)’ 대결은 이번 시즌에서 가장 눈에 띄는 포맷이다. 제작진은 생생한 상황극을 위해 베테랑 정극 배우들을 여럿 섭외했다. ‘팔순 잔치’ 상황극에는 <카지노>의 최홍일 배우, ‘재벌집’ 상황극에는 회장님 역 전문 배우인 김병기, ‘교도소’ 상황극에는 <악마를 보았다>의 신스틸러 정미남, 영화 <범털>의 주인공 이설구 배우가 나온다. ‘대선 토론’ 상황극에서는 시사평론가 정관용이 사회를 본다.

코미디언들은 웃음기를 싹 거두고 진지하게 연기를 하는 정극 배우들 사이에서 개그를 던질 작은 틈을 찾으려 애쓴다. 미리 구상해 둔 시나리오는 전혀 써먹을 수 없는 상황이지만, 팀 동료의 손동작 하나, 눈빛 하나까지 예민하게 주시하며 몸을 던져 웃길 기회를 만든다. 권 PD는 “처음 시도하는 형식이 걱정돼 노련한 베테랑 연기자들을 섭외하려 했다. 예상 외로 다들 재미있어 하면서 흔쾌히 응해주셨다. 배우들 덕분에 포맷이 완성됐다”고 말했다.

<코미디 리벤지>는 15세 관람가다. 19세 관람가였던 전작보다 시청가능연령을 낮췄다. 온 가족이 모여앉아 TV를 보는 시대는 끝났다고들 하지만, 권 PD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같이 볼 수 있는 코미디를 만들고 싶다. “평소 홍대에 있는 코미디 소극장을 많이 찾아다니면서 지난 수십년 간 해온 콩트 말고 어떤 새로운 것을 시청자들에게 보여드릴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코미디에 대해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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