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미국 대선에서 예상을 깨고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당선되자 ‘샤이 트럼프’가 주목받았다. 여론조사에 잡히지 않던 유권자들이 대거 트럼프에게 투표했다는 의미다. 하지만 트럼프 지지자들이 여론조사에서 조직적으로 거짓말을 했다는 증거는 없었다. 그렇다고 반증하기도 어려웠다. 이 말에는 현대 대의민주주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여론조사 업계, 이에 의존하는 주류 언론이 자신들의 처참한 예측 실패를 사후 정당화한 측면이 있었다.
5일 치러지는 이번 대선에서는 ‘히든 해리스’라는 말이 뜨고 있다. ‘수줍어하는’ 대신 ‘숨은’이란 말이 민주당 후보를 꾸미는 게 차이이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민주당 후보로 정해진 뒤 여론조사에서 우위를 지키다 주요 경합주에서 트럼프에게 추월당한 조사가 나오자 부쩍 더 주목받았다. 이 말에는 민주당이 아직 못 찾아낸 해리스 표를 끌어내려는 선거 전략이 담겨 있다.
대표적 사례는 주요 경합주에서 방영되고 있는 30초 분량 TV광고이다. ‘누구 찍을지 알지?’라는 남편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뒤로하고 투표장에 들어간 여성이 맞은편 기표소의 여성과 눈빛을 교환한 뒤 해리스를 찍는 영상이다. “여성이 선택할 권리가 있는 미국, 당신은 다른 누구에게 알리지 않고 원하는 사람에게 투표할 수 있습니다”라는 영화배우 줄리아 로버츠의 목소리가 배경에 깔린다.
민주당이 막판에 주력하는 것은 백인 여성 표심이다. 남녀 후보 대결에서 성평등 권리를 놓고 극명하게 대립하면서 해리스가 여성의 지지를 더 받고 있다. 그런 가운데 해리스 진영은 트럼프에 쏠려 있다고 여겨지는 백인 여성의 지지를 조금이라도 더 얻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트럼프 진영은 이 광고에 ‘미국 가족의 몰락을 상징한다’ ‘트럼프 지지 여성을 괴물 남편의 인질로 취급한다’며 반발했다.
민주당 전략이 통할지는 지켜봐야 한다. 경합주 표심은 막판 혼전을 거듭하고 있고, 여론조사기관들은 ‘50 대 50 승부’라는 무의미한 예측을 내놓고 있다. 이번 선거는 코로나19 와중에 치러진 2020년 선거를 제외하면 최다 사전투표수를 기록했다. 이것은 분명 해리스에게 유리한 신호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