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보장 강화 등 관련 법개정안 발의 40건 중 1건 통과
‘중복수사 방지’도 뒷짐…법조계 “해법 알고도 소극적”
국회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개정안을 40건 발의했으나 1건만 통과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여야 정치권이 잇따른 검사 사직과 신규 수사 인력 채용 지연 사태 등 공수처의 위기 상황에 대한 해법을 알면서도 문제 해결의 의지는 없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4일 경향신문이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지난 21대 국회와 현 22대 국회에서 발의된 공수처법 개정안은 총 40건이다. 21대에서 35건, 22대에서 5건이 발의됐다. 하지만 통과된 법안은 1건뿐이고, 4건은 통과안에 반영돼 폐기(대안반영 폐기)됐다. 나머지 30건은 지난 국회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개정안에는 공수처가 현재 직면한 난관에 대한 해법이 담겨 있다. 대표적인 내용이 수사 인력이다. 공수처 수사 인력 정원은 처장·차장을 포함해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이다. 서울중앙지검 산하 반부패수사 3개 부서(30명)보다 적다. 지난해 공수처에 접수된 사건만 2400여건으로 검사 1명당 매년 100건가량을 처리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21대 국회에서만 9건의 법안을 내고 공수처 검사 수를 최대 50명 안팎까지 늘리는 안을 제시했다. 수사관 정원과 행정직원도 각각 최대 80명, 60명까지 늘리자는 내용도 담았다. 가장 많은 의석을 가진 ‘원내 제1당’이 민주당이었지만 해당 법안들은 모두 통과되지 않았다. 민주당은 22대 국회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담은 법안 2건을 발의한 상태다.
공수처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는 검사·수사관의 신분 안정성과 자격 요건에 대한 법안도 여러 건 발의됐다가 폐기됐다. 공수처 검사는 7년 이상 경력의 변호사 등을 인사위원회가 추천하면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다. 임기는 3년으로 제한되고, 대통령 재가가 있으면 세 차례 임기를 연장할 수 있다.
그간 공수처 안팎에서는 3번 연임 조건으로 ‘최대 12년’의 임기제 공무원인 공수처 검사의 직업 안정성이나 처우가 일반 공무원에 밀리고 지원 조건도 까다로워 법조인들이 지원할 유인이 적다는 지적이 나왔다. 21대 국회가 유일하게 통과시킨 공수처법 개정안이 공수처 검사의 변호사 경력을 10년에서 7년으로 단축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우수 법조인을 유인하기엔 부족하다는 의견에 따라 22대 국회에서는 이를 3년으로 더 단축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됐다. 공수처 검사의 임기를 늘리거나 연임 제한을 폐지하는 내용의 법안들도 발의됐으나 현재까지 통과된 것은 없다.
검찰·경찰 등 다른 수사기관과 공수처 간 수사범위 등 권한을 둘러싼 갈등과 중복수사를 방지하기 위한 법안도 10건 넘게 발의됐지만 의결되지 않았다. 공수처 출범 이후 김건희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공천개입 의혹 사건 등 권력형 비리 의혹이 터질 때마다 수사기관끼리 협조가 되지 않아 수사가 지연되거나 반대로 수사력이 낭비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이와 관련, 이성윤 민주당 의원은 지난 7월 국무총리 산하에 수사협의회를 두고 수사기관 간 협조사항을 조정토록 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법조계 인사들은 국회가 공수처 문제의 해결책을 알면서도 해결에 소극적이라고 비판한다. 이창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검경개혁소위 위원장은 “공수처 제도 설계에 관여하거나 깊이 숙고한 의원이 거의 없었던 결과”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