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해외 순방 등에 끌어 쓰는 ‘정부 쌈짓돈’ 대폭 증액

2024.11.06 06:00 입력 2024.11.06 06:03 수정

내년 ‘예비비’ 올해보다 6000억원 늘어난 4조8000억원 편성

내년 ‘감염병 대응 예산’ 전액 삭감해놓고…감염병 등 이유로 금액 늘려
앞뒤 안 맞는 사유로 일단 ‘묻지마 지출’ 가능 예산 확보하려는 꼼수 의심
국회 예정처 “적정성 검토해야”…기재부는 “불확실성 커져 더 늘린 것”

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에서 예비비를 올해보다 14% 넘게 늘리면서 “미국 대선의 불확실성과 감염병 유행 가능성”을 그 이유로 들었다.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에서 ‘감염병 대응 지원체계 구축사업’ 예산을 전액 삭감했는데, 감염병 대응 등을 이유로 예비비를 증액 편성한 것이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예비비 증액 규모의 적정성을 검토해야 한다”면서 사실상 삭감 의견을 제시했다.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5일 공개한 서면답변 자료를 보면, 기획재정부는 예비비를 늘린 이유에 대해 “미 대선 등 국제정세 변화, 재난·재해의 발생 피해 증가 등 불확실성 확대, 농수산물 물가 변동 등 민생지원 소요, 복지급여액 증가, 감염병 유행 가능성 등을 감안했다”고 밝혔다. 기재부 관계자는 “미 대선 결과에 따라 통상압력이 있을 수도 있고, 코로나19 재유행이나 제2, 제3의 감염병이 있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내년 예산안에서 예비비를 올해보다 6000억원 증액한 4조8000억원으로 편성했다. 특히 내년 예산안에서 정부가 아무 제한 없이 쓸 수 있는 일반예비비는 지난해보다 2000억원 늘려 1991년 이후 역대 최고 수준인 2조2000억원으로 편성했다. 2021년 코로나19 대유행 당시(1조6000억원)보다 많다. 재난 등 특수목적을 위해 쓸 수 있는 목적예비비는 4000억원 증액한 2조6000억원으로 늘렸다.

논란거리는 정부가 올해 126억1000만원의 예산을 편성했던 ‘감염병 대응 지원체계 구축 및 운영 사업’을 내년도 예산안에서 폐기했다는 점이다. 정 의원은 “감염병 관련 예산은 필요 없다는 이유로 삭감해놓고 예비비를 편성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국회 예정처는 재난·재해 대책 관련 예비비 수요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예정처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제출한 ‘2025년도 예산안 분석 보고서’에서 “예비비의 경우 대규모의 지출 소요가 발생했던 코로나19 기간 이후 전체적인 규모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증액됐다”며 “예비비의 주된 용도 중 하나인 재해대책비 관련 예산안이 개별 부처에도 편성돼 있는 점, 예산에 대한 국회의 사전 의결 원칙을 적용받지 않는 예외적인 재정운용 방식이란 점 등을 감안할 때 예비비 증액 규모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예비비는 일반 예산과는 달리 국회가 사용 내역을 사전에 검증할 수 없다. 정부는 지난해 대통령 해외 순방과 정상외교 관련 업무에 예비비 532억원을 끌어 썼다. 또 대통령실 용산 이전 관련 비용으로도 예비비 86억7000만원을 써 논란이 된 바 있다.

야당은 예비비가 ‘정부 쌈짓돈’으로 쓰인다면서 삭감을 예고했다. 정 의원은 “정부가 코로나19 팬데믹 때보다도 많은 일반예비비를 편성한 것은 국회를 우회하는 꼼수 예산으로 활용하겠다는 의도가 다분한 만큼 대규모 감액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예비비는 사용처가 나눠진 게 아니므로 어떤 사안에 대한 일대일 대응 성격이 아니다”라며 “전반적인 정책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에 예비비 증액을 요청한 것”이라고 재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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