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규모 은행나무 군락지
반세기 넘게 발길이 닿지 않아 자연미 보존
차별화된 콘텐츠와 체험 프로그램 확대 예정
신나는 어트랙션, 신비로운 동물원이 에버랜드 전부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50년간 일반인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비밀의 은행나무 숲이 마침내 공개됐다. 에버랜드 정문에서 차로 약 10분 거리, 약 14만5000㎡ 부지에 자리한 국내 최대 규모의 은행나무 군락지다.
기억하니? 자연농원
‘비밀의 숲’의 탄생은 반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0년대 이병철 삼성 창업 회장은 황폐한 국토를 푸르게 가꾸고 국민의 식량 자급을 위해 국토개발의 시범장으로서 경제 조림단지를 구상했다.
당시 경주 보문단지, 추풍령 고개 근처, 문경새재 일대 등 국내 여러 지역이 후보에 올랐는데, 땅이 척박하고 돌이 많아 조림에는 적합하지 못해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았던 용인 일대가 최종 후보지로 낙점됐다. 수도권에 위치해 접근성이 뛰어나다는 점이 주효했다.
이후 이 회장은 지금의 에버랜드 일대에 약 400만 평 부지를 확보해 식량 증산과 소득효과가 큰 유실수와 미래세대를 위한 장기수를 집중적으로 심었다. 불모지에서 생산하는 땅으로 변한 모습을 국민에게 널리 알리고 어린이들의 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가족 동산도 조성했다. 에버랜드의 전신인 ‘자연농원’이라는 이름은 이 과정에서 유래됐다.
유실수의 주종은 밤나무와 호두나무, 살구나무, 은행나무 등이었다. 당시 쌀이 평당 137원의 수익을 올리는 것과 대비해 은행은 537원, 호두 498원, 살구 250원, 밤 245원으로 수익률이 높았다. 밤, 호두, 은행 등은 영양가가 높아 ‘곡수’로도 불렸다.
그러나 1979년, 거침없이 성장할 것만 같았던 이곳에도 시련이 찾아왔다. 초겨울 기온이 영하 20도까지 떨어지는 기록적인 한파가 용인 일대에 급습한 것이다.
삼성 측은 동해(凍害)를 입어 고사한 밤, 복숭아, 호두 등 많은 과실수를 벌채하고 이듬해 그 자리에 강인한 생존력을 보였던 은행나무 묘목 3만 주를 추가했다. 그 결과 미학적인 요소를 더하기 위해 밤나무 사이사이에 심었던 ‘조연’ 은행나무가 ‘주연’으로 발돋움하게 됐다.
흔한 은행나무, 사실은 멸종 위기
에버랜드는 지난달 25일부터 오는 8일까지 매주 금·토·일, 총 9일 동안 하루 3회씩 진행된 은행나무숲 산책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주로 기업이나 단체 중심으로 개방하고 외부 공개를 거의 하지 않은 까닭에 ‘비밀의 숲’이라는 애칭을 얻은 은행나무숲의 일시적 개방에 가장 먼저 관심을 보인 이들은 주로 20·30세대다. 에버랜드 관계자는 “예약 오픈 2분 만에 ‘매진’되고 ‘노쇼’가 없을 만큼 인기였다”였다고 귀띔했다.
지난 5일, 취재진이 찾은 은행나무 숲은 단풍의 절정기를 맞아 황금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오밀조밀 뿌리 내린 수많은 은행나무는 일반적으로 봐 왔던 나무들과 달리 햇볕을 더 받기 위해 경쟁하듯 하늘로 향해 쭉쭉 뻗어 있는 모습이었다.
현재 이곳에는 약 3만 그루의 은행나무 외에도 밤나무, 참나무, 메타세쿼이아 등 다양한 식물 자원들이 식재돼 있다. 자연에 가깝게, 그러나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도록 관리한 결과다.
취재에 동행한 이준규 에버랜드 식물콘텐츠그룹장은 “침엽수인 은행나무는 빙하기와 온난화기를 거치며 광합성을 통해 더 많은 에너지를 비축하고자 잎을 넓히는 진화 과정을 겪었다”며 “현존하는 식물 중 살아있는 화석으로 취급받는 이유다”라고 설명했다.
이 공간이 특별한 이유는 또 있다. 지천으로 널려있어 ‘흔한’ 나무처럼 여겨지는 은행나무는 1종 1속 1과 1목 1강 1문만이 존재하는 식물이다. 생물이 지구상에서 오랫동안 생존하기 위해서는 종 다양성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은행나무는 전 세계에 한가지 종만 존재하는 것이다. 야생생물의 멸종 위기 현황을 기록하는 세계자연보전연맹 적색목록에서도 은행나무는 멸종 위기종(EN, Endangered)에 속해 있다.
새나 다람쥐 같은 동물들이 은행 열매를 먹지 않는다는 점도 은행나무의 번식을 막는 요소다. 서식지가 확대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은행나무숲의 자연적인 보존 가치는 커질 수밖에 없다.
에버랜드에는 은행나무 숲길 외에도 향수산 일대에 잔디광장, 명상돔, 생태연못, 전망대 등을 갖춘 ‘포레스트 캠프’가 조성돼 있다. 대자연을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트레킹 코스, 해먹에 누워 휴식을 취하거나 전문 강사와 함께 명상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숲 치유 프로그램도 시범 운영 중이다.
가을과 겨울의 경계에서 은행나무는 마치 모든 것을 내어주는 듯 노란빛을 내뿜는다. 이 시기가 지나면 볼 수 없는 찬란함이다. 이번 기회를 놓쳤다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에버랜드는 향후 지속적으로 숲, 정원 등 식물 콘텐츠뿐만 아니라 주변 인프라를 연결하는 새로운 고객 경험을 강화해갈 예정이다.
오직 정원 체험만을 희망하는 고객들을 위한 전용 티켓인 ‘가든 패스’도 그중 하나다. 포레스트캠프, 은행나무숲, 분재원, 스피드웨이, 호암미술관 등 같은 단지에 있는 체험 인프라를 고객이 원하는 대로 모듈화해 이용할 수 있는 ‘맞춤형 프로그램’ 역시 마련했다. 에버랜드 측은 “국내 여가문화와 인구구조의 변화 트렌드 속에서 차별화된 콘텐츠와 체험 프로그램을 더욱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