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달한 내 입맛, 씁쓸한 간 건강…지방간, 술 안 마셔도 생겨요

2024.11.23 06:00

그래픽 | 변희슬 기자 hiseul@kyunghyang.com

그래픽 | 변희슬 기자 hiseul@kyunghyang.com

작은 커피전문점을 운영하는 이모씨(42)는 건강검진 결과를 받아보고 ‘경도의 지방간’이란 대목을 읽으며 의아해졌다. 이씨는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 데다 비슷한 연령대의 남성과 비교하면 체중이 많이 나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술을 마시지 않아도 비만에 가까우면 지방간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있어서 자신의 체질량지수를 계산해봤지만 비만에 해당하지는 않았다. 검진 결과를 상담하려고 검진기관 의사를 찾았다. 이씨는 “술을 안 마시고 뚱뚱하지 않아도 당분 등 고열량 식품을 많이 먹으면 지방간이 생길 수 있단 말을 들었다”며 “가게에서 파는 달콤한 디저트 종류에는 앞으로 손대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지방간은 이름 그대로 간에 지방이 비정상적으로 쌓이는 상태를 가리킨다. 일반적으로 지방이 간의 5% 이상을 차지하면 지방간으로 진단하는데, 그중 전체 간세포의 3분의 1 이하가 지방으로 구성되면 경증 지방간, 3분의 2 이하까지는 중등도 지방간, 3분의 2 이상이면 중증 지방간으로 분류된다. 대한당뇨병학회 지방간연구회가 지난해 발표한 국내 지방간 유병률 통계를 보면 20세 이상 성인의 지방간 유병률은 39.3%로, 국내 성인 10명 중 4명은 지방간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남성의 지방간 유병률은 55.6%로, 여성(21.1%)보다 2배 이상 높았다.

과거에는 지방간이 과음 때문에 생긴다고 여겼다. 하지만 현재는 과도한 열량 섭취 때문에 비알코올성 지방간이 생긴다는 점이 알려져 있고, 실제로 이렇게 나타난 지방간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가 더 많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를 보면 지난해 비알코올성 지방간으로 진료를 받은 인원은 40만4447명인 데 비해 알코올성 지방간 환자는 2만2708명으로 큰 차이를 보였다. 다만 알코올성 지방간 진단은 하루 알코올 섭취량이 남성은 30g, 여성은 20g이면서 지방간이 관찰될 때만 내려진다는 점에서 음주와 과다한 음식 섭취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지방간을 유발한 경우도 상당할 것으로 추정된다.

지방이 간 5% 이상일 때 ‘지방간’
국내 성인 10명 중 4명이 해당
당분 등 고열량 식품 섭취도 원인

피로·식욕감퇴·구토 나타날 수도
당뇨 땐 정상인의 2배 발병 위험

총 열량 줄이는 식습관 교정 중요
주 3회 중등도 이상 운동 30분씩

정상간

정상간

지방간은 비만·당뇨병 같은 대사질환과도 관련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만성 간염과 간경변증, 간암에 이르는 다양한 단계의 간질환으로 진행할 위험까지 높인다. 전문가들이 가벼운 지방간이라도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영석 순천향대 부천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식생활이 서구화되면서 지방간의 발병률이 아주 많이 증가하고 있지만 ‘중년이라면 누구나 있는 질환’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며 “지방간은 조기에 진단·치료하면 양호한 경과를 보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중증 간질환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방관하지 말고 꾸준히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간은 인체에서 가장 큰 고형 장기이며 크기에 걸맞게 다양한 역할을 한다. 먼저 음식이 소화기관을 거쳐 각종 영양분으로 분해된 뒤에는 첫 번째로 간을 통과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알코올을 비롯한 여러 독성물질을 해독하는 작용도 간이 담당한다. 또한 간은 식후 생성된 포도당을 저장해뒀다가 혈당 수치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데 사용하는 역할도 맡는다. 간은 이렇게 섭취된 당질 외에도 지방질까지 모아 중성지방 형태로 간세포 안에 저장하기 때문에 필요한 열량에 비해 섭취한 열량이 남아돌면 그만큼의 에너지가 간에 지방 형태로 쌓이는 것이다.

지방간

지방간

지방간은 특별한 증상이 없다. 그래서 조기 진단이 어렵고 건강검진으로 발견해도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간에 지방이 과도하게 축적되면 점차 심각한 간질환으로 진행할 위험이 높아진다. ‘침묵의 장기’라는 별명답게 특징적인 증상을 보이지 않는 편이지만 정도가 심해지면 간질환이 있을 때처럼 피로, 전신쇠약, 식욕감퇴, 메스꺼움, 구토, 소화불량, 복부 불쾌감 등의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서준영 분당제생병원 소화기내과 과장은 “지방간은 장기적으로 간 기능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데, 지방간 환자의 20%가 지방간염으로 진행되고 지방간염 환자들이 간경화, 간암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높다”며 “지방간은 우리 몸이 보내는 위험신호이기에 지방간이 있을 경우 주기적인 검진을 통해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간질환 외에 당뇨와의 관련성도 높다. 지방간연구회 통계를 보면 정상적으로 당질을 대사하는 경우의 지방간 유병률은 29.7%였지만, 공복혈당장애가 있으면 51.2%, 2형 당뇨병이 있으면 61.7%로 당 대사 능력에 이상이 있을수록 지방간인 비율이 높았다. 또 지방간이 심각할수록 2형 당뇨병을 비롯해 심근경색증, 허혈성 뇌졸중, 심부전 등의 합병증 발생 위험 역시 높았다. 이에 따라 학계에서는 지방간을 보다 넓은 시선에서 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영석 교수는 “지방간 질환이 심혈관질환 위험을 높이는 인자로 알려지면서 최근 ‘비알코올성 지방간 질환’ 대신 ‘대사이상 관련 지방성 간질환’으로 불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방간 치료의 핵심은 생활습관 교정이다. 알코올성·비알코올성 지방간 모두 음주를 제한할 필요가 있으며, 과체중이나 비만을 동반한 지방간 질환이라면 체중을 5% 이상 감량해야 간에 축적된 지방량이 감소한다. 7~10% 이상의 체중을 감량하면 간의 염증과 섬유화가 개선될 수 있다.

식습관 교정을 위해선 무엇보다 섭취하는 총 열량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주목을 끄는 ‘지중해식 식단’처럼 섬유질이 풍부하면서 양질의 지방과 단백질을 골고루 갖춘 식사를 하면 간 내부의 지방량을 줄이고 인슐린의 혈당 조절 기능을 개선하는 효과도 크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주 3회 중등도 이상의 운동을 회당 30분 넘게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증상이나 중증도가 심각하면 약물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대표적인 치료 약물은 인슐린 저항성 개선제, 항산화제, 지질강하제 등이 있으며, 콜레스테롤 조절에 이상이 있는 이상지질혈증을 동반할 경우 심혈관계질환 예방을 위해 스타틴을 사용할 수 있다. 최근에는 갑상선호르몬 수용체 베타 선별작용제가 비알코올성 지방간염 치료제로 처음 미국 식품의약국 승인을 받았다. 서준영 과장은 “비타민E가 지방간의 염증을 치료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근본적인 치료를 위해 운동과 식이요법을 병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치료방법”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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