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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자바섬 동북부에 있는 애쉬니나 아자흐라 아킬라니(17)의 집에선 검은 연기 기둥이 보인다. 10분 거리의 시멘트 원료 공장이 뿜어낸 연기다. 플라스틱을 연료로 사용한 탓에 더 짙고 매캐하다. 환경운동가 애쉬니나는 지난 26일 기자와 만나 “초등학생 때 이곳으로 이사 온 뒤 항상 검은 연기와 함께했다”고 말했다. 공장 폐수는 강으로 흘러 식수를 오염시켰다. 태워지지 않은 쓰레기가 마을 곳곳에 뒹굴었다. 그에겐 일상 풍경이었다.

지난 26일 플라스틱 오염 대응을 위한 제5차 정부 간 협상위원회(INC-5)가 열린 부산 벡스코 앞에서 니나가 손하트를 만들어 보이고 있다. 이홍근 기자

지난 26일 플라스틱 오염 대응을 위한 제5차 정부 간 협상위원회(INC-5)가 열린 부산 벡스코 앞에서 니나가 손하트를 만들어 보이고 있다. 이홍근 기자

애쉬니나는 마을 쓰레기가 자기 나라 땅에서 만들어진 게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된 뒤 환경운동을 시작했다. 쓰레기에 적힌 글씨가 인도네시아어가 아니었다. ‘선진국’으로부터 불법으로 수입된 쓰레기가 섬으로 흘러들어왔다. 가난한 주민들은 비싼 나무 대신 플라스틱을 연료로 태웠다. 니나는 “쓰레기를 버린 나라에 책임을 물어야겠다고 생각했다”면서 “편지 보내기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12살이던 2019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을 시작으로, 독일, 호주, 캐나다, 네덜란드 등 ‘쓰레기의 주인’들에게 항의 서한을 보내고 있다.

항의서한으로 ‘아시아의 그레타 툰베리’라는 별명을 얻은 니나는 지난 22일 한국에 입국했다. 25일 시작된 플라스틱 오염 대응을 위한 제5차 정부 간 협상위원회(INC-5)에 참여했다. 개발도상국 시민이자, 여성이 청소년인 니나는 “플라스틱 문제에 있어서 우린 취약한 그룹”이라면서 “국제회의에서 (약자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한국으로 왔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자바섬 재활용업체에 서 있는 니나. 니나 제공

인도네시아 자바섬 재활용업체에 서 있는 니나. 니나 제공

니나는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에 쓰레기를 수출하는 일을 근본적으로 막으려면 생산량 감축에 합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생산 감축 없이 재활용 이야기만 하는 것은 마치 물이 넘치는데 수도꼭지를 잠그지 않고 대걸레질만 하는 것”이라면서 “결국 규제안이 만들어져야 기업이 플라스틱을 덜 만들고, 덜 만들어져야 쓰레기 수출도 줄 것”이라고 말했다.

플라스틱 원재료에 해당하는 1차 플라스틱 폴리머 감축은 이번 INC5의 핵심 의제다. 각국은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한국, 유럽연합(EU) 등 국제플라스틱협약 우호국 연합(HAC)은 1차 폴리머 생산량을 감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사우디아라비아 주도로 출범한 ‘플라스틱 지속 가능성을 위한 국제연합(GCPS)’은 생산 규제보다 폐기물 관리와 재활용이 협상의 주가 되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각국은 25일 오후 늦게야 루이스 바야스 발비디에소 INC 의장이 중재안으로 내놓은 ‘논페이퍼’(비공식 문서)를 논의의 시작점으로 정하는 데 합의했다.

지난 26일 부산 벡스코에서 니나가 인도네시아의 플라스틱 오염 실태를 설명하고 있다. 이홍근 기자

지난 26일 부산 벡스코에서 니나가 인도네시아의 플라스틱 오염 실태를 설명하고 있다. 이홍근 기자

니나는 “각국 정부들은 그저 말 잔치를 늘어놓는다”면서 “구체적인 협상안을 내놓지 않고 항상 협의를 내년으로 미룬다”고 말했다. 이번 회의는 1992년 체결된 유엔 기후변화협약처럼 구체적 목표치가 없는 ‘선언적 합의’ 수준에서 마무리될 가능성이 커 이를 비판한 것이다. 그는 “그들에겐 당장 문제가 아닐지 몰라도 우리에겐 현재의 위험”이라면서 “이미 쓰레기는 우리 땅, 강, 공기, 달걀을 더럽히고 가장 안전한 엄마의 자궁까지도 오염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니나는 한국이 개최국으로서 충분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 정부가 재활용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 같아 매우 실망스럽다”면서 “(한국)정부의 압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앞서 김완섭 환경부 장관은 25일 기자들과 만나 “구체적인 감축 목표치를 갖고 협상에 임하고 있지는 않다”면서 “(수치를 논의한다면) 현실적으로 합의가 어렵지 않겠냐”고 말했다.

그는 “이런 상황이 생길 때마다 ‘또 졌다’는 생각이 들어 힘들지만 압박을 멈출 순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인도네시아는 자연경관으로 많이 알려져 있으나 역설적이게도 많은 아이들이 우리나라를 더러운 나라라고 생각하고 있다”면서 “아름다움을 되찾기 위해 계속 싸우겠다”고 말했다

▼ 이홍근 기자 redroot@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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