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의 대가
티모시 브룩 지음 | 박찬근 옮김
너머북스 | 336쪽 | 2만6500원
중국 명나라(1368~1644)는 숭정제의 정치적 실패 속에서 청나라의 침략과 농민 반란으로 멸망했다는 것이 통설이다. 하지만 영국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중국사 교수인 티모시 브룩은 명나라 멸망의 핵심 원인을 ‘기후위기’라고 주장한다. 당시 지구적으로 평균기온이 2~3도 낮아지는 ‘소빙하기’가 찾아왔다.
브룩의 <몰락의 대가>는 ‘기후의 역사’와 ‘물가의 역사’를 결합해 역사적으로 환경 충격이 시장과 사회를 어떻게 붕괴시켰는지 추적한다. 명나라 말기 숭정제 재임 시기에는 전례 없이 심각한 한파, 가뭄, 전염병, 돌풍, 지진, 메뚜기 떼가 발생했다. 엄청난 인플레이션, 특히 곡물 가격의 극단적 상승이 시장 기능을 무너뜨렸고 식량 부족에 시달리던 백성들은 반란을 일으켰다.
브룩은 특히 ‘기후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다. 당시 명나라가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세계적인 선진국이었지만 기후위기 앞에선 무력했다고 지적한다. 과학자들은 물리적 지표를 통해 기후변화를 추적하지만, 브룩은 물가를 통해 기후변화를 측정한다. 물가야말로 사람들의 실제 생활을 가장 정확하게 복원할 수 있는 도구라고 본다.
브룩의 주장은 방대한 데이터에서 나왔다. 명나라, 청나라, 민국 시대의 지방지, 수필, 일기, 회고록, 장부 등 3000점이 넘는 자료를 모아 분석했다. 쌀, 보리, 밀, 콩 등의 곡물과 72개 생필품 가격을 시기별로 비교했다. 명나라 서민이 가정을 유지하고 자녀를 양육하기 위한 연간 생활비와 소득을 구체적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기후변화가 거대 제국을 멸망시켰다는 주장은 현대 한국인의 관점에서도 무겁게 받아들일 만하다.
브룩은 한국어판 서문에 “한국이 기후변화에 취약하기 때문에 저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기후 문제에 민감하다고 알고 있다”며 “사람들이 생존해야 했던 조건에 (중략) 기후만큼 강력하게 작용하는 요인은 없다”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