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트럼프가 돌아왔다. 더 극적이고, 더 강력하게. 트럼프 2기의 막무가내를 어떻게 견제할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경험하지 못한 제왕적 대통령의 출현에 대한 우려가 팽배하다. 이런 우려를 우리나라의 정치문화에 대입해 보면 어떤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까.

우리나라였다면, 틀림없이 개헌론이 먼저 등장하지 않았을까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받아들이기 힘든 선거 결과를 두고 대통령제 자체를 탓하지 않았을까? 세상에 완전무결한 제도는 없다는 명백한 진실은 200년이 넘는 낡은 제도를 탓하는 선동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미국에선 시대에 뒤처진 선거제도나 정부형태의 개혁을 요구하는 주장은 일부 현학적 지식인들의 손끝에 머물 뿐이다. ‘제도는 제도일 뿐, 헌정은 제도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평범한 진실이 아직은 경험론에 기초한 실용적 가치관이 살아 있는 미국을 지배한다. 제도로만 본다면, 사실 미국의 헌정만큼 치밀한 철학적 숙고와 치열한 논쟁 끝에 만들어진 사례도 드물다. 공화적 민주주의를 향한 헌법제정자들의 올곧은 집념의 결실이 미국 헌정의 현재다. 트럼프의 귀환이 제왕적 대통령의 출현을 예고하는 것은 신의 짓궂은 장난처럼 예외적 현상이다. 헌법제정자들이 가장 경계한 것이 바로 독재였고, 모든 지혜를 동원하여 식민모국의 입헌군주정이 채택한 의회제 정부형태의 한계를 벗어나려 했기 때문이다. 숙고와 논쟁의 결과가 로마 공화정 모델에 기반한 미국식 공화정이다. 로마 공화정에서 원로원-민회-집정관으로 구성된 혼합정부는 상원-하원-대통령의 구도로 변형되었다.

미국식 공화정은 민주적 법치를 위해 의회제를 유지하고, 효율적 행정권을 위해 대통령제를 채택했다. 그러면서도, 의회든 대통령이든 독주하지 못하도록 다양한 견제장치를 마련했다. 핵심은 권력의 다차원적 분할과 분권된 국가권력의 임기교차제였다.

분권은 연방과 개별 주의 권한 배분, 의회구성상 양원제, 의회와 대통령에 대한 별도선거, 사법권의 독립 등을 통해 관철되었다. 분권체제는 개별 권력의 임기교차제를 통해 견제와 균형을 모색하도록 했다. 하원의원은 인구비례에 따라 선출하되 2년이라는 짧은 임기를 부여했다. 상원의원은 인구비례를 무시하고 주별로 2명을 균등하게 배정하면서 안정성을 위해 임기를 6년으로 하되 민심도 수용할 수 있도록 2년마다 3분의 1씩 교체하게 했다. 대통령은 4년 중임으로 의회와의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의회선거에 의한 중간평가가 가능하도록 하였다. 결정적으로 헌정의 안정성을 담보해줄 최후 보루로 연방대법관의 종신제를 채택하였다. 또한 이런 분권적 헌정체계를 허물 수 있는 정당의 월권을 경계하여 매우 느슨한 정당 기율과 정당 간 교차투표를 독려하는 정당제도를 기획하였다.

그러나 민주성, 효율성, 안정성을 모두 고려하는 정밀한 권력구조를 통해 독재만은 막으려는 헌법제정자들의 지혜가 무색하게 트럼프 2기는 1인 독재의 호기를 맞았다. 정치 양극화로 정당들의 당파성이 강화되면서 정당 기율이 강해지는 한편 의원들의 독자성이 트럼프주의에 압도되면서 공화당의 1인지배체제가 강화되었다. 버팀목이어야 할 상하 양원이 모두 공화당에 장악됐다. 더욱 우려스럽게도 연방대법원마저 트럼프의 영향권 안에 있다. 그가 직접 임명한 대법관 3명을 포함하여 보수성향 대법관이 절대다수다. 50년이나 지켜온 낙태권 인정 판결을 번복할 정도로 대법원 또한 공화적 헌정질서의 토대를 허무는 데 동조할 위험성을 안고 있다.

미국 헌정의 위기로부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 헌정은 단순히 제도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제도를 움직이는 사람이 누구이고 어떤 역량과 품성을 가졌는지도 중요하다. 더 중요하게는 제도와 사람을 규정하는 문화의 영향력이다. 모두가 공존·공생·공영하는 민주공화국의 토대는 서로를 평등하게 대우하고 스스로 정당한 사익을 추구하면서도 공적 현안에 대하여는 합리적으로 공공복리를 우선하는 절제력인데, 이런 문화적 토대 없이는 그 어떤 제도, 그 어떤 지도자라도 무망할 것이다.

산적한 국내외 현안에도 불구하고 사법과정에 볼모로 내던져진 정치, 혁신이나 사회적 책임은 고사하고 제로섬게임에 매몰된 경제, 남의 아픔은 아랑곳없이 각자도생에만 급급한 사회, 휘황찬란한 무대에 도취되어 정작 사회의 소금이기보다는 자기만족의 족쇄에 갇혀버린 문화.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다시 자문해야 할 엄중한 상황이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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