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체제로 소환되어 온 ‘시대 지체자들’

2024.11.29 08:30 입력 2024.11.29 09:56 수정

공법 체계가 붕괴된 2027년의 한국사회

‘스마트보디’가 아니면 생존 힘든 공동체에

통렬하게 던지는 질문…우린 어디로 가는 건가

소설집 <스위트 솔티>를 출간한 소설가 황모과. ⓒ정혜란

소설집 <스위트 솔티>를 출간한 소설가 황모과. ⓒ정혜란

스위트 솔티

황모과 지음 |문학과지성사 |304쪽 |1만7000원

2030년 한국. ‘나’는 ‘스마트보디’ 갱신센터에서 일한다. ‘시대 지체자’들에게 인간 신체를 뛰어넘는 다양한 기능이 탑재된 ‘스마트보디’를 제공하고 이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시대 지체자’들은 마치 냉동인간처럼 몸의 시간이 정지한 상태로 과거에서 미래로 건너 온 사람들이다. 이들은 인간 고유의 신체인 ‘플랫보디’를 지니고 있어 지극히 제한적으로 세상을 감각하고 정보량 또한 현저히 적다. 또한 수십 년의 시간 공백으로 시대 감각 또한 정체돼 있어 국가는 이들에게 치료와 재활, 돌봄 등을 전액 국비로 제공해 이들의 사회 복귀를 지원한다. 그런데 이 ‘시대 지체자’들은 어쩌다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미래의 체제로 소환되어 온 것일까. 게다가 왜 국가는 이들의 복귀를 전폭 지원하고 있는 것일까.

소설가 황모과의 소설집 <스위트 솔티>에 수록된 ‘시대 지체자와 시대 공백’은 2027년 공법 체계가 붕괴되면서 법과 치안이 작동하지 않는 근미래 한국 사회의 모습을 그려낸 작품이다. 미래라는 렌즈를 우회해 오늘날의 문제를 보다 통렬히 바라보게 하는 SF의 장르적 속성이 도드라지는 이 작품은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나’라는 질문을 던지며 현재의 선택이 미래에 미칠 영향을 상기시킨다.

2030년 한국은 기술의 진보로 인간의 신체적 제약을 어느 정도 뛰어넘을 수 있게 됐지만, ‘스마트보디’는 그저 최소한의 생존 조건일 뿐이다. 그 이면에는 무너진 공교육과 공공 의료, 주 120시간의 노동 시간, ‘스마트보디’가 아니면 생존할 수 없는 오염된 환경 등 폐허가 된 공동체의 모습이 있다.

미래복지부의 협력기관인 ‘갱신센터’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과거로부터 온 ‘시대 지체자’들에게 3일 안에 ‘스마트보디’ 시술을 받고 ‘시대의 일원’이 되도록 설득하는 일이다. 시술에 동의한 사람들은 시술을 받은 뒤 미래에 남았고, 시술을 거부한 사람들은 3일 후에 자신의 시대로 돌아갔다. 무엇보다 가장 좋은 설득 방법은 이들에게 있는 그대로 미래 사회를 보여주는 일이었다. 그들이 그려왔던 미래는 이미 사라졌다는 것을 보여주고 그들이 가지고 있던 미래에 대한 어떤 기획이나 전망도 체념하게 만들면 그들은 미래에 남기를 선택했다.

이는 사실 미래복지부의 거대한 역사 전복 사업이었다. 미래복지부가 미래로 데려온 ‘시대 지체자’들은 과거 국가폭력의 한복판에서 이에 저항했던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깊은 절망과 무력감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았던 이들을 공동체가 와해된 미래 세계로 데려와 ‘무엇을 해도 바뀌지 않는다’라는 냉소와 허무를 주입시켜 미래에 머무르게 하는 게 미래복지부의 전략이었다. “시대 지체자들이 이 시대에 남기로 결심하면 원래 살았던 곳에선 그의 존재가 사라지겠지. 그렇다면 그 시대는 어떻게 될까? 한 사람이 사라진 곳에 공백이 생길 것이다. 문득 상상했다. 우리의 과거는 그런 식으로 계속 헐거워진 게 아닐까?” 미래복지부는 ‘시대 지체자’의 마음을 움직여 과거를 바꿔나갔다. 각 개인이 모여 이룩한 시민들의 저항의 기록들에도 조금씩 공백이 생기기 시작했고, 어느덧 이 기록들은 시민항쟁이 아닌 반사회적 활동으로 다시 쓰이게 됐다.

<스위트 솔티>. 문학과지성사

<스위트 솔티>. 문학과지성사

소설은 미래에 대한 상상이 기술 발전으로만 수렴되고 더 나은 공동체에 대한 모색은 막혀 있는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시대 공백’은 무엇인지 숙고하게 한다. ‘시대 지체자’들이 미래 체제에서 느껴야 했던 허무, 냉소, 체념 등의 정서들은 오늘날 우리가 처해 있는 ‘시대 공백’을 상기시킨다. ‘각자 생존’의 법칙만이 지배하는 미래 사회를 살아가는 소설 속 화자의 말은 오늘날의 정서와 그리 다르지 않다. “나는 내가 늘 세상의 파편 같다고 생각했다. 퍼즐의 한 조각도 채 되지 못한 일부. 조각 중에서도 깨진 쪼가리. 조각난 파편도 그림의 일부라 불릴 수 있을까? 나라는 개인이 절대로 알 수 없는 법칙 속에 머물며 살아갈 뿐이었다.”

그러나 그 파편은 스크린 속 풍경의 깨진 픽셀처럼 거짓과 냉소, 허무가 구축한 사회를 무너뜨리는 최초의 균열이 되기도 한다. 시간지체자를 데려와 “과거를 만회”하려는 미래복지부의 기획을 알게 된 소설 속 화자는 더 이상의 허무와 체념이 아닌 시대와의 능동적인 불화를 선택한다. “나는 내 시대에 공백을 만들지 않기로 마음을 정했다. 평생 단 한번도 본 적 없는 깨끗한 스크린 속 강물이 내게 말해주는 듯했다. 이곳의 모든 것과 불화할 때 제대로 살고 있는 거라고.” 소설은 결국, 미래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파편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연결돼 있는 각 개인의 선택으로 매 순간 새롭게 쓰여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지금 여기 우리의 선택을 돌아보게 한다.

이밖에 소설집에서 2차 대전의 희생자들(‘오메라시로 돌아가는 사람들’) 위안부 피해자(‘순애보 준코, 산업위안부 김순자’) 난민(‘스위트 솔티’) 등 국가와 집단으로부터 외면받아온 이들의 이야기가 SF적 장치를 활용해 그려져 있다. 과거의 역사를 돌아보고 오늘날 현실에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이야기들은 기억이 과거를 단순히 돌아보는 행위가 아니라 미래를 형성하며 현재를 결정짓는 투쟁 도구라는 것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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