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폭설로 무너진 송파 공사장 안전시설, 학교 가는 아이들 머리 위에 있었다

2024.11.29 16:48 입력 2024.11.29 17:17 수정

중학생 최군 “살려달라” 소리에 신고

“무너진 지붕이 눈와서 깔은 판넬인줄”

평소 학생 통학..시민들 “상상도 못한 일”

9월 현장 사진서 기울어진 기둥 등 확인

하중분산 등 없어...“애초에 휘어 있었다”

전문가들 “너무 취약한 구조, 법도 미비”

시공사 측 부실 여부엔 “기관이 조사 중”

서울 송파구 가락동 한 아파트 재건축 공사장 인근에서 지난 27일 안전통행로가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보행자 3명이 아래에 깔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송파소방서 제공

서울 송파구 가락동 한 아파트 재건축 공사장 인근에서 지난 27일 안전통행로가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보행자 3명이 아래에 깔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송파소방서 제공

시민 3명이 지난 27일 서울 송파구 가락동의 한 아파트 재건축 공사장 근처를 지나다 날벼락을 맞았다. 공사장 둘레를 따라 설치된 안전통행로 지붕이 쌓인 폭설로 내린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한순간에 무너져버린 것이다. 밑에 깔린 1명은 심정지 상태에 빠졌다가 회복 중이고 1명은 중상, 1명은 경상을 입었다.

지난 28일 사고 현장을 찾아갔더니 파손된 안전통행로 시설은 완전히 철거된 상태였다. 이 통행로는 지역 주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보행로이자, 학생들의 등하굣길이었다. 안전통행로 시설은 무너진 곳뿐 아니라 공사장 일대에서 모두 철거됐다. 공사장 크레인에서 떨어진 낙하물에도 버텨야 할 안전통행로가 어쩌다가 눈더미를 이기지 못해 무너졌을까. 전문가들은 사고 현장의 안전통행로가 부실하게 설계됐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안전통행로의 ‘안전’ 기준에 관한 제도적 허점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지난 28일 찾아간 서울 송파구 가락동 안전통행로 붕괴 사고 현장에 안전통행로가 모두 철거된 모습. 바닥에 통행로 철골 구조물을 고정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물체가 휘어 있다. 강한들 기자

지난 28일 찾아간 서울 송파구 가락동 안전통행로 붕괴 사고 현장에 안전통행로가 모두 철거된 모습. 바닥에 통행로 철골 구조물을 고정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물체가 휘어 있다. 강한들 기자

“살려달라” 소리 듣고 달려간 중학생 신고자 “다리가 덜덜 떨렸어요”

현장에서 사고의 직접적인 흔적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통행로 시설이 모두 철거됐기 때문이다. 다만 공사장 둘레를 따라 설치된 가림막에는 통행로 지붕이 있던 높이에 흔적이 남았다. 바닥에는 녹아가는 눈과 지붕 역할을 한 샌드위치 패널 안에서 나온 스티로폼 조각이 나뒹굴었다. 통로를 바닥에 지탱했던 철골 구조물은 하중을 이기지 못하고 휘어 있었고, 시멘트 바닥도 깨진 곳이 보였다.

사고 현장에서 만난 최진혁군(15)은 자신이 사고를 최초 신고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하교하던 중이었는데 무너져 땅바닥에 내려앉아 있는 통행로를 보고 “공사 현장 편하라고 깔아둔 것”인줄 알았다고 했다. 어디선가 “살려주세요”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처음에는 공사장 내부에서 나는 소리인 줄 알았다고 했다. 최군은 그 소리가 안전통로 지붕이던 샌드위치 패널 아래서 들려온다는 사실을 깨닫고, 경찰·소방에 신고했다. 신고한 다음 패널을 혼자 들어보려고 했지만 무거워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사건 현장을 보고 경찰에 신고한 최진혁군(15)과 그의 쌍둥이 형제가 지난 28일 사건 현장을 바라보며 이야기하고 있다. 강한들 기자

사건 현장을 보고 경찰에 신고한 최진혁군(15)과 그의 쌍둥이 형제가 지난 28일 사건 현장을 바라보며 이야기하고 있다. 강한들 기자

송파소방서가 제공한 영상을 보면 경찰관, 소방관뿐 아니라 많은 시민이 구조를 도왔다. 최군과 쌍둥이 형제도 그 무리에 속해 있었다. 최군은 “통행로 뼈대가 너무 얇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라며 “(무너진 지붕이 너무 무거워) 다리가 덜덜 떨렸다”라고 말했다.

시민들은 “눈 때문에 통행로가 무너질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역시 하굣길에 구조를 도왔던 이동혁군(14)은 “평소에 다니던 길이 위험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고 했다. 한모씨(45)는 “다른 길은 오르막길이라 항상 안전통로로 출퇴근했다”며 “눈이 온다고 무너져서 사람이 깔릴 정도였으면 이곳으로 어떻게 지나다니겠나.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네이버 지도 거리뷰로 확인한 지난 9월 기준 ‘안전통행로’의 모습.  입구 부분에 세워진 기둥이 기울어진 모습이다.  네이버 지도 갈무리 이미지 크게 보기

네이버 지도 거리뷰로 확인한 지난 9월 기준 ‘안전통행로’의 모습. 입구 부분에 세워진 기둥이 기울어진 모습이다. 네이버 지도 갈무리

서울 강북구 미아동 공사 현장 인근에 설치된 안전통행로. 베이스 플레이트 위에 철골 구조물을 세우고, 지붕에도 철제 발판(비계)을 얹었다. 강한들 기자 이미지 크게 보기

서울 강북구 미아동 공사 현장 인근에 설치된 안전통행로. 베이스 플레이트 위에 철골 구조물을 세우고, 지붕에도 철제 발판(비계)을 얹었다. 강한들 기자

지난 9월 영상에 이미 휘어 있어···전문가 “과도하게 취약한 구조”

경찰이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이지만 이 시설이 애초부터 부실하게 지어졌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에서 확인한 지난 9월 촬영된 현장 사진을 보면 공사현장 입구 쪽 안전통행로 기둥이 기울어져 있다. 철골 구조물의 하중을 분산하고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바닥에 설치하는 ‘베이스 플레이트’도 설치되지 않았다. 베이스 플레이트에 철골 구조물을 올리고, 지붕에도 철로 만든 발판(비계)을 얹는 다른 공사 현장의 안전통로와는 차이가 있었다.

전문가들은 안전통로가 제대로 설치되지 않으면 오히려 ‘안전 사각지대’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안전통로는 사업장 밖에 설치되므로 산업안전보건법 적용 대상이 아니다. 보행안전법이 ‘공사 중 보행자를 위한 안전조치 의무’를 정하고 있는데, 주로 ‘보행자 불편을 줄일 수 있도록 가장 짧고 안전한 경로로 설치될 것’ ‘2m 이상의 폭을 확보할 것’ ‘투수성·배수성을 갖출 것’ 등 보행자 편의에 집중돼 있다.

강태선 서울사이버대 안전관리학과 교수는 “사고 현장의 안전통행로는 너무 취약한 구조”라며 “공사장 인근 도로의 시민 위험이 충분히 측정되지 않고 있다. 법 체계도 미비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강 교수는 “시민 보호 관점에서 지방자치단체부터 나서서 조례로 법적인 공백을 보완하는 등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재건축 시공사인 포스코이앤씨 측은 경향신문과 통화하면서 “눈이 많이 내려서 사고가 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면서 “다치신 분들을 지원할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통행로 설계가 부실했던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관련 기관에서 조사 중”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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