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 동해로 떠나요
논골담길 건너편 덕장길에서
물들어가는 하늘·땅 한눈에
도깨비 ‘다찌’도 미소 활짝
까만 바다 위 출렁다리를 지나
어둠 물들이는 조명의 숲까지
서늘한 밤공기에 숨이 트이네
밤이 긴 겨울. 오후 5시만 되어도 빛은 힘을 잃어간다. 겨울 여행에서 추위보다 야속한 게 어둠이다. 그러나 동해라면 어둠이 와도 반갑다. 밤을 기다렸다는 듯, 낮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여행지가 많기 때문이다. ‘선라이즈 시티’로 유명한 강원 동해시지만 해 뜨는 모습만 기대하면 서운하다. 낮에 눈이 반짝였다면, 밤에는 마음이 울렁인다. 1인 다역을 맡은 베테랑 연기자 같다.
별빛처럼 반짝이는 논골담길, 새까만 밤 물길을 가르는 고깃배, 형형색색의 도째비골스카이밸리, 은은한 빛의 향연을 볼 수 있는 추암, 다정한 밤 산책을 즐길 수 있는 한섬까지, 동해의 밤은 팔색조다. 동해의 반전 매력을 보고 싶다면, 저녁을 놓치지 말자. 겨울밤이 짧게 느껴질 테니까.
한 편의 시 같은 밤 풍경, 논골담길
이글이글 떠오르는 태양은 희망을 안겨준다. 산 뒤로 지는 석양은 마음을 안아준다. 일출이 희망의 일이라면, 일몰은 다정의 일이다. 강원도 동해시는 희망과 위로를 함께 주는 여행지다.
해 질 무렵, 고민은 시작된다. 일몰이 아름다운 장소가 여럿이기 때문이다. 한 곳만 선택하라면, 논골담길 건너편에 있는 덕장길을 꼽겠다. 겨울이 되면 해풍에 명태를 널어 독특한 풍광을 보여주는 묵호 덕장. 덕장이 이어진 이 길에 서면 서정미 넘치는 동해의 야경을 만날 수 있다.
파스텔톤으로 변한 하늘과 출렁이는 바다 왼쪽으로 논골담길의 빨간색 파란색 지붕 아래 노란 불빛이 하나 둘 셋 켜진다. 은은한 불빛은 마른 가슴을 촉촉하게 적신다. 흐릿한 빛에서 온기가 뿜어져 나온다. 친구가 차가운 손을 따스하게 잡아주는 것 같다. 누군가는 저녁밥을 짓기 위해, 책을 읽기 위해, 잡아 온 물고기를 손질하기 위해 스위치를 올렸을 것이다. 소박한 조명 아래 가족이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사랑스럽다. 해발고도 67m, 논골담길 언덕 가장 높은 곳에 하얀 등대가 우뚝 서 있다. 1963년 세워진 등대는 논골담길과 바다로 부지런히 빛을 뿌리며, 겨울밤을 지킨다. 논골담길 안으로 들어갈 차례다. 좁은 골목을 걸으며 밤 정취에 취해본다. 전망 좋기로 유명한 ‘바람의언덕’은 밤 풍광도 일품이다. 애잔한 항구와 칠흑 같은 밤바다, 소박한 어촌마을, 화려한 도시의 모습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묵호항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느껴진다. 어둠을 뚫고 묵호항으로 달려오는 고깃배는 전장에서 승전보를 가지고 오는 전사처럼 위풍당당하다. 오징어 배의 눈부신 조명과 항구의 가로등 불빛이 항구를 수놓는다.
도깨비골의 흥미진진한 야경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된 도째비골스카이밸리는 밤에도 분주하다. 높이 59m의 스카이워크와 하늘자전거를 타면서 짜릿함을 느꼈다면, 밤에는 신비로운 분위기가 기다린다. ‘도째비’는 도깨비의 강원도 방언으로, 도째비골이라는 이름은 밤이면 도깨비불이 나타난다고 해서 붙었다. 밤에는 도깨비불이 등장하는 듯한 흥미로운 분위기를 곳곳에서 감지할 수 있다. 기둥 위에 서 있는 슈퍼트리는 시시각각 색이 바뀌어 황홀함을 더한다.
스카이워크 아래에는 수국 모양의 조명 꽃이 화려하게 바닥을 장식한다. 수국을 모티브로 한 이유도 재미있다. 수국은 흙에 따라 여러 색을 보여 제주도에서 도깨비 꽃이라는 뜻의 ‘도체비고장’으로 불린다. 도깨비골이라는 이미지에 맞춰 ‘도깨비 꽃’의 조명을 만들어 놓은 것.
‘바다와 함께’라는 의미를 가진 해랑전망대에도 화사한 조명이 들어온다. ‘도깨비방망이’ 모양의 해랑전망대는 밤이 되면, 가장자리에 조명이 들어와 방망이 모습이 제대로 드러난다. 해랑전망대 옆에는 도째비골을 환하게 밝히는 정령사 역할을 하는 도깨비 ‘다찌’ 조형물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바다를 지킨다.
도째비골스카이밸리에서 멀지 않은 어달항도 놓치지 말자.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자그마한 아침햇살공원에 쉴 수 있는 벤치가 마련되어 있다. 대형 테트라포트가 예술작품처럼 설치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묵호의 옛 모습을 담은 사진이 전시되어 있어 과거를 더듬어보기도 좋다.
빛과 자연과 작품이 어우러진 추암
동해시 남쪽에 있는 추암해변도 밤이면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한국관광공사가 야간 관광 명소를 모은 ‘대한민국 밤밤곡곡 100선’에 선정된 추암해변은 올해 ‘추암의 여명 빛 테마파크’ 사업을 추진해, 밤에도 다채롭게 둘러볼 만한 볼거리를 곳곳에 조성했다. 파도를 상징하는 게이트를 지나 조명이 더해진 촛대바위를 본 후, 바다 위 출렁다리를 거쳐 야외 전시된 조각 작품을 감상하면 밤 여행이 완성된다.
시작은 촛대바위다. 밤이 되면 추암의 간판스타 촛대바위 위로 여러 패턴이 드리운다. 떠오르는 태양을 배경으로 한 촛대바위와 전혀 다른 분위기다. 별과 달 패턴이 어우러져 동화 속 한 장면 같은 기분이 든다.
어둠을 빛으로 가르는 출렁다리를 지나면, 은은한 조명의 숲이 기다린다. 잔잔한 음악도 흘러 환영받는 기분이 든다. 숲 터널을 나오면 야외 작품이 등장한다. 30여점의 작품이 각각 조명을 받아 존재감을 뽐낸다. 밋밋한 표현 위로 이야기가 흐르는 작품, 그림자놀이를 할 수 있는 작품 등 조명의 종류도 다양하다. 야외 전시장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작은 빛무리가 쉼 없이 반짝이는 별빛정원이다. 풀벌레 소리, 새소리도 어디선가 들려온다. 빛과 작품, 자연의 향연에 감동이 밀려든다.
고즈넉한 밤 산책을 원한다면
밤은 눈으로만 즐기기는 아깝다. 천천히 걸어보는 건 어떨까. 동해 현지인들의 밤 산책 일번지는 한섬해변이다. 해변에 데크가 설치되어 있어 밤에도 안전하게 걸을 수 있다. 운이 좋으면 바다를 따라 달리는 기차도 볼 수 있다. 데크에는 반짝이는 리드미컬 게이트와 입소문을 통해 알려진 빛터널이 있어, 사진찍기도 좋다.
전천강 위에 있는 40년 이상 방치한 폐철교를 리모델링한 뜬다리정원마루도 밤 산책지로 사랑받는다. 경관 조명을 보면서 전천강을 걷는 것도 특별한 즐거움이다. 뜬다리정원마루 근처 63층 높이인 172m의 LS전선 ‘VCV(수직 연속압출시스템)’ 타워 야경도 인상적이다.
파도 소리를 들으며 고즈넉한 산책을 원한다면, 망상해변이다. 시계탑부터 한옥마을인 해안까지 약 1.5㎞에 걷기 좋은 데크가 설치되어 있다. 데크 양쪽에 은은한 조명이 있어 분위기 있는 밤 산책을 즐기기 제격이다. 시원한 밤공기를 마시며 드넓은 밤바다가 건네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밤이 되면, 대부분 장소가 호젓하다. 식당도 일찍 문을 닫는다. 오후 7시만 되어도 거리가 고요하다. 저녁식사 계획을 미리 세우는 게 좋다. 묵호 인근에서 늦게까지 영업하는 식당은 까막바위 부근에 모여 있는 까막바위회마을이다. 10여개의 음식점이 모여 있다. 동해 시내인 천곡동에는 24시간 문 여는 식당도 있다. 한섬해변 부근이라면, 동해의 싱싱한 식재료로 음식을 내는 로컬다이닝 한섬이 있다. 동해 토박이 주인장이 동해 대표 식재료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내놓은 로컬다이닝으로, 오후 9시30분까지 운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