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위증교사 사건’ 판결 읽기

2024.12.01 20:37 입력 2024.12.01 20:41 수정

증인 김진성씨의 법정 진술이
기억에 반한다는 점에 대한
이 대표의 고의는 없었다고 봐

위증 인정, 위증교사 불인정
법리상 수긍하기 어렵지 않아

변협이 매년 시행하는 변호사시험합격자 연수과정에는 증인신문기법이라는 제목의 강의가 있다. 나는 10년 남짓 그 강의를 맡아 증언심리학을 기초로 한 증인신문의 기술과 요령을 가르쳐왔다. 강의 첫머리에서는 인간의 기억이 선택적이며 인지-저장-재현의 단계에서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왜곡과 착오가 일어나므로 증언은 필연적으로 오류의 가능성을 가진다는 것, 증언은 질문의 방식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 소송법의 증거방법 중 유일하게 가변적임을 강조한다.

증인신문의 준비는 지난한 작업이다. 당사자가 어렵사리 증인을 구해오면, 그에게 사건의 내용이 어떠하며 그의 증언이 어떤 맥락에서 왜 필요한지 이해시키고 그가 알고 있는 게 뭔지 확인하여 신문사항(법원에 미리 써내야 한다)을 확정해야 한다. 이걸 제대로 하지 않으면 법정에서의 신문이 지리멸렬해지고 자칫 상대방의 반대신문에 걸려 신문을 망친다. 내가 강의하는 증인신문사항 작성요령은 이렇다. 쟁점에 맞추어 쓴 신문사항 초안을 증인에게 보내주거나 보여줘 그중 그가 모르는 사항은 삭제하고 잘못된 것은 수정하고 누락된 것은 추가하게 한다. 신문사항을 함께 검토하는 과정에서 증인이 맥락을 모르거나 기본적 사실관계를 오해하고 있으면 설명하거나 소송서류 등 자료를 보여줘 이해를 돕거나 교정해준다. 증인은 변호사와의 이런 정보교환 과정에서 기억을 수정하거나 보충하는데, 법정에서의 재현과정에서 이를 잘 구분하여 진술하지 못하거나 반대신문에서 뒤죽박죽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아무튼 이 준비과정은 괜한 위증교사의 혐의를 받을 수 있으므로, 쟁점사실 중 증인이 당초 모른다고 한 것은 신문사항에 넣지 않아야 한다.

위증죄는 해석상 자기의 기억에 반하여 진술하는 행위를 말한다고 되어 있다. 한편 위증교사죄는 증인의 위증과 그렇게 위증하도록 증인을 사주하는 행위가 있어야 성립한다는 이중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 기억의 문제를 대입하면, 주관적인 면에서는 교사범 자신에게 ①증인의 진술이 증인의 기억에 반한다는 점에 대한 고의와 ②증인이 기억에 반해 진술하도록 시키겠다는 고의가 모두 있어야 위증교사죄가 성립한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공소사실의 요지는 그가 ‘검사 사칭 사건’ 관련 허위사실공표죄 사건의 재판에서 김병량 성남시장의 비서였던 김진성씨에게 “김 시장과 KBS 사이에 검사를 사칭한 최철호 KBS 피디에 대한 고소를 취하하여 (공범인) 이 대표를 주범으로 몰아가자는 협의가 있었다는 취지의 증언을 해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사건에서는 ①김씨가 협의사실의 존재를 모른다는 점과 ②그런데도 기억에 반해 협의사실이 있었다고 진술하게 한다는 점 모두에 이 대표의 고의가 증명돼야 유죄판결이 나올 수 있다. ①항과 관련해서 미필적 고의가 있어도 된다는 견해는 증언의 증거방법상 특성을 무시하는 것이 되어 옳지 않다.

그런데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30분 넘는 분량의 통화녹음을 들어보면, 이 대표는 김씨가 위의 협의사실 등을 알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여 증언을 부탁했음을 알 수 있다. 고의를 인정하기 어려운 것이다. 김씨는 당초 이 대표의 정적이었던 김 시장의 수행비서였고 고소건에서 김 시장의 고소대리인으로서 고소 제기, 고소인 진술, 고소 취하에 관한 권한을 부여받았었다. 따라서 이 대표의 인식은 무리가 아니었을 것이다. 통화에서 김씨는 처음에는 협의사실 등에 관해 모른다고 하다가 나중에는 일부 사실을 긍정하는 취지로 말한다. 이 대표는 수차 “기억을 되살려서” 또는 “있는 대로” 진술을 해달라고 부탁하고, 또 “김 비서관이 안 본 거, 뭐 그런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고, 그쪽이 어떤 입장이었는지 그런 거나 좀 한번 상기해 봐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일각에서는 재판부가 김씨의 위증을 인정하면서도 이 대표의 위증교사를 인정하지 않은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재판부의 판단은 ‘김씨가 한 증언 중 위증임을 자백한 부분이 있기는 해도, 이 대표에게는 김씨의 그 부분 진술이 기억에 반한다는 점에 대한 고의가 없었다’는 것으로 읽힌다. 법리상 수긍하기 어렵지 않다. 이에 더하여 김씨의 자백이 신빙성을 의심받았을 수도 있다. 이 사건은 고소나 고발로 시작된 게 아니라 김씨의 다른 범죄 수사 과정에서 불거져나온 것임에 주목해야 한다. 물론 그의 증언 중 유죄 부분이 기억 재현 과정에서의 착오와 왜곡, 또는 과장으로 생긴 것일 가능성도 있다. 어느 경우든 재판부는 김씨가 자백하는 마당에 굳이 그에게 무죄를 선고할 일은 아니라고 보았을 것이다.

정인진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정인진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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