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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럽다고 귀 닫는 게 답?…‘불편한 소리’와 공존하려는 노력 해야죠

2024.12.02 20:02 입력 2024.12.02 20:59 수정

소음공해 시대 사는 법

외부 소음을 차단하는 노이즈캔슬링 기술을 적용한 애플 에어팟 광고의 한 장면. 여성이 귀에 에어팟을 꽂자 거리에 시끄럽게 돌아다니던 차량과 행진 행렬, 노점상 등이 거리에서 사라져 하늘에 떠있다. 애플

외부 소음을 차단하는 노이즈캔슬링 기술을 적용한 애플 에어팟 광고의 한 장면. 여성이 귀에 에어팟을 꽂자 거리에 시끄럽게 돌아다니던 차량과 행진 행렬, 노점상 등이 거리에서 사라져 하늘에 떠있다. 애플

예부터 고유의 소리풍경 속 살아와…산업화·도시화로 부자연스러운 소리 급증
소음 낸 주체와의 ‘관계’ 따라 감당 가능한 소음이 되기도, 극도의 갈등 낳기도

수많은 소리 가운데 ‘의미 있는 신호’와 ‘의미 없는 소음’ 명확한 구분은 어려워
소음 못 견뎌 도피해도 ‘사려 깊고 풍부하게 듣고 연결되기’는 멈추지 말아야

독자님은 ‘노이즈캔슬링’을 아시나요? 노이즈캔슬링(noise-canceling)은 외부 소음을 차단하는 기술인데요, 1980년대에 군사 기술로 발명됐지만 오늘날엔 저렴한 이어폰에도 적용될 정도로 대중화되고 있습니다. 최근 MZ세대 사이 특히 인기를 얻고 있으며, 2031년엔 무려 451억달러(약 57조7000억원) 규모의 시장을 이룰 것으로 예측됩니다.

아무리 주변이 시끄러워도 노이즈캔슬링 이어폰만 끼면, 소음으로부터 자유로운 ‘나만의 공간’에 들어온 기분이랄까요. 피로감에 시끄러운 노래 대신 잔잔한 장작 소리나 시냇물 소리 등 자율감각쾌락반응(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을 듣는 사람들도 늘고 있습니다. ASMR이란 주로 청각을 중심으로 하는, 정신적 안정감을 주는 풍경음, 배경음 등의 소리를 뜻합니다. ASMR을 들으며 각종 소음으로 가득한 도시에서 사람들은 조금이나마 ‘청각의 여유’를 느낄 수 있게 되었죠. 마치 캡슐 안에 홀로 앉아 있는 것처럼요.

한편, 이런 ‘해결책’을 보며 곰곰 생각하게 됩니다. 귀를 막아도 소음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과연 무엇이 ‘없애야 마땅한 소음’이고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판단도 알쏭달쏭한 일입니다. 예를 들면 거리를 걷다가 차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하면 위험해지기도 하니까요. 어떤 이들은 여전히 ‘노이즈’를 완벽히 ‘캔슬’할 수 없고요.

분명 오늘날 소음은 문제입니다. 하지만 과연 소음을 개인적으로 막는 것만으로 모든 문제는 해결이 될까요? 우리는 중요한 것들 역시 덜 듣게 되는 게 아닐까요? 우리가 소음을 조금 다른 차원에서 살펴볼 수는 없을까요?

소음에서 탈출 : 도시와 사운드스케이프

오늘날 소음에 짜증과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들 사이 ASMR이 유행입니다. 연구자님들 가운데서도 일을 할 때 장작 소리나 빗소리, 잔잔한 카페 소음 같은 것을 배경음으로 틀어놓는 분들도 계실 텐데요. 이런 ASMR은 몇년 전만 해도 독특한 ‘뉴트렌드’로 여겨졌지만, 아예 유튜브에도 별도의 카테고리가 생길 정도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죠.

이를 포괄하는 더 큰 단어가 있습니다.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라는 건데요. 사운드스케이프는 풍경(Landscape)과 소리(Sound)가 합쳐진 단어로, 우리 말로는 ‘소리풍경’이라고도 적어볼 수 있을 텐데요. 우리가 일상에서 내는 모든 소리와 자연의 소리 등을 합친 개념입니다. 새가 짹짹거리는 소리부터 빗소리, 기차 소리, 사람들이 떠드는 말소리, 음악, 오토바이 소리 등이 모두 포함되죠.

[인스피아]시끄럽다고 귀 닫는 게 답?…‘불편한 소리’와 공존하려는 노력 해야죠

캐나다 작곡가 머레이 쉐이퍼가 쓴 음향학의 고전 <사운드스케이프>(1977)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소리’의 측면에서 곰곰 뜯어본 책인데요. 이 책의 메시지를 간단히 이렇게 요약해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고유의 소리 풍경(사운드스케이프) 속에 살아왔다. 하지만 오늘날 산업화, 도시화로 인해 소음이 지나치게 많아지면서 아주 혼란스러워졌다! 우리는 소리 풍경을 개선, 유지해가야 할 것이다.”

요는 엉망진창 속에서도 우리가 일상적으로 더 쾌적하고 즐겁게 ‘들으며’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거죠. 역시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눈에 들어온 부분은 ‘도시와 소음’과 관련된 내용이었는데요.

우선, ‘도시화는 곧 소음의 시대의 시작’을 뜻합니다. 이 책에 따르면, 과거 농경사회 마을에서 사람들은 대체로 적당한 크기의 공동체 안에서 필요한 소리를 들으며 살아왔습니다. 아예 한 동네는 ‘웅변가 한 사람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규모’만큼만 조성되기도 했죠. 만약 갑자기 큰 소리가 들린다면(“늑대가 나타났다!”), 그건 재빨리 대처해야 할 위험이나 손님의 방문 등 특별한 ‘이벤트’를 알리는 것이었죠. 즉, 어떤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기의 ‘쓸모’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도시 사람들이 일일이 큰 소리에 깜짝 놀라면 하루 종일 깜짝 놀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산업화,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깜짝 놀라기만 하고 나에게 아무런 의미나 신호를 주지 않고, 자연스럽지 않은 ‘쓸데없는 소리’들이 급격하게 늘어납니다. 과거엔 기껏해야 사람이 낼 수 있는 가장 큰 소리가 “망치질하는 소리” 정도였지만, 기차 소리, 공장의 무자비한 기계 소리, 마차 소리 등 훨씬 큰 소리들이 일상화되기 시작하죠. 도시 속 ‘소음공해’의 탄생입니다.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마차 소리에 대해 “삐걱대는 마차 바퀴 소리는 말로 다 하기 어렵다”며 “당신의 피를 일순간에 얼어붙게 만드는 소리”이자 지옥의 소리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분노를 보고 있자면, 오늘날 층간 소음이나 거리 소음으로 화를 내는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는데요. 아무리 더불어 사는 세상이라지만, 인간의 섬세한 귀는 맥락 없는 요란한 소음에는 도무지 익숙해질 수 없는 것입니다.

북적이는 거리 소음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도 치명적인 것은 철도가 오가는 지역 주민들이나 엄청난 소음 속에서 일해야 하는 공장 노동자들의 경우였습니다. 당시 부자들은 교외에 살았지만, 대도시에는 일자리를 위해 주로 비좁고 불쾌한 소음, 악취 환경에서 빈곤층이 모여 살았습니다.

소음에 괴로워하던 이들은, 이후 테이프레코더, 축음기 등의 기술이 발전되자 어떻게 해서든 소음을 피하기 위해 노력하는데요. 그 일환으로 저자는 20세기 초에 나타난 ‘무자크(Moozak)’라는 상업 배경음 서비스를 언급합니다. 무자크란 단지 소음을 그럴듯하게 얼기설기 뒤덮기 위해 대충 연주되는 ‘소리 벽(Sound wall)’ ‘배경 음악’ 같은 것인데요. 딱히 연주자나 연주곡이 전혀 중요하지 않고, 그냥 멍하니 들을 수 있는 음악이요.

이런 음악은 통상 ‘엘리베이터 음악’ ‘쇼핑몰 배경 음악’ 등으로 불리기도 하면서 1930년대 이래 수십년간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저는 이런 대목을 읽으며, 오늘날 유튜브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배경 음악’ ‘8시간 작업용 음악’ 앰비언스 플레이리스트가 무려 100년 전부터 이미 있었던 굉장히 커다란 수요, 시장이라는 것에 깜짝 놀랐는데요. 하지만 머레이 쉐이퍼는 이런 시도에 그렇게까지 긍정적이진 않습니다. 이는 “듣지 않기 위해 듣는” “귀 기울이지 않기 위해 듣는” 음악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런 개인적인 시도는, 오물을 치우기보단 그 위로 향수를 뿌려 코를 속이는 행위라고 고개를 젓죠.

보다 근본적인, 모두를 위한 방책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이를 위해선 ‘귀를 닫는 것’으론 불가능하다는 거고요.

‘소음’과 ‘신호’의 차이는 뭘까?

머레이 쉐이퍼는 비록 ‘무자크’ 같은 것에 얼굴을 찡그리긴 하지만, 도시의 ‘소음공해’ 자체가 문제적이며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엔 동의합니다.

이제, 불필요한 소음만 ‘싹’ 없애버리면 될까요? 그런데 치명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대체 그 많은 소리들 가운데 ‘무엇’이 의미 있는 신호이고, 의미 없는 소음에 불과한지 명확히 구분하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우선, <사운드스케이프>에 따르면 실제 어떤 것을 소음으로 느끼는가는 문화권에 따라 다르기도 하고, 소음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지역의 핵심 정체성을 보여주는 시대문화적 상징이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저자는 이 책에서 뉴질랜드, 스위스, 자메이카 등 다양한 곳 사람들에게 ‘어떤 소음이 제일 싫어요?’라고 물어봤다는데요. 흥미롭게도 자메이카 사람들은 기계음엔 무관심했지만 대신 동물, 곤충 소리가 ‘지긋지긋한 소음’이라며 화를 낸 비율이 높았다고 합니다. 이는 다른 나라 사람들과는 정반대의 응답이었죠. 또한 ‘문 여는 소리’를 대부분 싫어했지만, 좋아한 나라(캐나다)도 있었습니다. 반가운 손님이 오는 신호라서일까요?

또한 어떤 도시의 특징적인 ‘소음’은 당대의,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겐 불쾌감을 줄 수 있지만 이후 그 소리가 ‘향수, 추억’의 핵심이 되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우리나라의 경우 뻥튀기 뻥 소리나 학교 종소리, 소독차 쫓아가는 소리, 노점상, 고등어 트럭 아저씨 소리 등을 들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당시엔 이런 소리에 깜짝 놀라고 화가 나고 낮잠을 깨우기도 했겠죠. 만약 이런 소리들을 ‘소음’이라고 모두 귀를 막거나 규제했다면, 그 장소에만 얽힌 독특한 경험, 기억은 남을 수 있을까요?

저는 이런 대목을 보며 지난 4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젤라토 파는 것을 ‘시끄럽다’는 이유로 심야시간대에 금지하기로 했다는 뉴스가 떠오르기도 했는데요.

‘소리(소음)’는 인간이 있다면 반드시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정도를 지키는 건 필요하겠지만, 모든 소음을 없앤다는 건 곧 모든 사람을 없앤다는 의미나 마찬가지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류는 귀로 중요한 ‘신호’를 듣고 위험을 피하거나, 정보를 얻으며 살아왔습니다. 대표적으론 차가 다가오는 소리, 사이렌 소리, 심상찮은 수군거림, 누군가가 도와달라고 외치는 소리 등이죠. 이 때문에 모든 소리를 없애고 각자가 최신 기술로 각자의 귀를 완전히 막고 다닌다는 것은 애초에 해답이 될 수가 없습니다.

연결을 놓치지 않기 위하여: 고래의 노래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무작정 모든 소음을 참고 귀를 열고 살아라”는 것은 아닙니다.

‘귀를 닫는 게’ 해답이 아니라, 우리가 ‘사운드스케이프’를 쾌적하고 의미 있게 가꿔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거죠. 모두를 위해서요. 인간은 역사적으로 나쁜 것을 만들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는 더 나은 것들을 만들어왔습니다. 소리도 그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제대로 듣는 건, 풍요를 넘어서 우리 사회에 필요한 신호들에 주목하고 연결을 회복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죠.

[인스피아]시끄럽다고 귀 닫는 게 답?…‘불편한 소리’와 공존하려는 노력 해야죠

마지막으로 간단히 펼쳐보고자 하는 <야생의 치유하는 소리>는, 소리풍경을 ‘인간’뿐 아니라 ‘생물’의 세계까지로 넓혀 바라본 책인데요. 이 책에서 저자는 우리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소음은 누구에게나 평등한 것이 아니며, 모든 소음이 ‘소음’은 아니라는 것이죠.

우선 소음은 평등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코로나19 기간을 겪으며 공간이 누구에게나 평등하지 않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하게 됐습니다. 같은 격리 기간이라도 누군가는 개인 소유의 드넓은 정원에서 피크닉을 즐겼지만, 누군가는 5평 공간에 종일 갇혀 있어야 했죠.

공간과 마찬가지로 소음 역시 평등하지 않습니다. 삶의 공간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취약계층이 일상적으로 소음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죠.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도 도심지역의 거리 소음을 크게 줄이는 효과가 있는 ‘도시숲’ 면적엔 지역별로 빈부격차가 크고요. 최근의 고급 아파트 단지들은 아예 ‘빗장’ 안에 널찍한 정원, 녹지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풍력발전소, 고속도로 등 인근의 주민들은 막대한 소음에 고통받아왔고요. ‘쪼개기’ 방식의 불법 건축 고시원은 사실상 ‘벽간 소음’이 일상입니다.

이는 꼭 ‘사람 사회’만의 문제는 아닌데요. 저자는 이 책에서 흥미롭고 엉뚱하게도 도시 소음에 시달리는 약자들을 바다 소음에 시달리는 돌고래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돌고래 등은 물속에서 온몸으로 다양한 신호를 보내고 또 받으며 교류하는데요. 인간의 난개발로 인해 바다 생태계에 악영향이 일어나고 있다는 거죠. 돌고래 등 수중생물들 역시 소음에서 벗어날 수 없고 오롯이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 거리 소음에 시달리는 약자들처럼요.

이어, 모든 소음이 반드시 ‘소음’은 아닙니다. 머레이 쉐이퍼는 <사운드스케이프> 서문에서 “소음이란 듣지 않도록 배운 소리”라는 유명한 정의를 내놓는데요.

실제 소음이 발생하더라도 소음을 낸 주체와의 ‘관계’에 따라 이것이 감당 가능한 소음이 되기도, 때론 극도의 갈등을 낳기도 합니다. 저자는 우리가 모든 종류의 소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다고 강조하며 말하죠. “이웃 간의 관계가 건강한 동네에서는 소리가 집과 집의 경계를 넘어 흘러도 대개는 별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며 “어느 장소에서든 달라진 것은 동네의 소리가 아니라 그 소리를 듣는 사람의 욕망과 요구”라고요.

실제로 다수의 학자들은 도시 주거지역 소음 문제는 당연하게도 건축의 문제인 동시에, 관계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오랫동안 강조해왔습니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소음 문제’가 이토록 큰 이슈가 되고 있다는 건, ‘소음’이 엉망진창으로 많다는 현실과 별개로도, 오늘날 지나치게 우리가 “듣지 않기로 결정한 소리”가 많다는 것과 수많은 연결이 죄다 끊겨 있는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SF작가 휴고 건즈백이 1925년에 고안한 집중용 헬멧 ‘아이솔레이터(isolator)’의 모습. 그는 외부 소음으로부터 자유로운 환경에서 집중하기 위해 얼굴을 뒤덮는 헬멧을 발명했고, 부족한 산소는 산소호흡기를 연결하는 것을 통해 해결했다. 위키피디아

SF작가 휴고 건즈백이 1925년에 고안한 집중용 헬멧 ‘아이솔레이터(isolator)’의 모습. 그는 외부 소음으로부터 자유로운 환경에서 집중하기 위해 얼굴을 뒤덮는 헬멧을 발명했고, 부족한 산소는 산소호흡기를 연결하는 것을 통해 해결했다. 위키피디아

맺음말

오늘 살펴본 책에서 저자들은 당장 이어폰을 빼고 모든 사람, 생명과 연결되고 모든 소리를 곧이곧대로 들으라고 꾸중하진 않습니다.

다만 저자들은 도시에서의 소음이 우리가 차마 받아들이긴 어려울 정도로 심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우리가 ‘진짜 현실’을 외면해선 안 된다고 강조하죠. 그것은 우리가 때론 소음을 견딜 수 없을 땐 ‘도피’하더라도, 결국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사려 깊고 풍부하게 듣고, 연결되기’를 멈추지 않는 것을 통해 가능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소음을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존재들이 있으니까요.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은 <야생의 치유하는 소리>의 종장에서 말합니다. “나머지 존재들과 달리 우리 인간에게는 통제 수단이 있다. 우리는 다른 소리 미래를 선택할 수 있다. 고래는, 숲은, 새들은 그럴 수 없다.”

앞으로는 어떤 소리가 ‘소음’으로 여겨져 당장 귀를 막고 싶어질 때, 주위를 막고 예상 가능하고 편안한 소리에만 머무르고 싶어질 때 한 번쯤 곰곰 생각해보려 합니다. 과연 내가 지금 듣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 ‘듣기’를 통해 내가 연결되는 곳은 어딘지에 대해서요.

이 글은 인문교양 뉴스레터 <인스피아>에 실린 내용을 수정한 것입니다. 더 많은 글을 보고 싶으시다면 아래쪽 QR코드를 촬영하거나, 포털에 ‘인스피아’를 검색해서 구독해주세요.

[인스피아]시끄럽다고 귀 닫는 게 답?…‘불편한 소리’와 공존하려는 노력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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