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방송되던 12월3일 늦은 밤, 나는 이 칼럼을 쓰는 중이었다. 내용은 국회의 예산권을 따져보고 바람직한 방향을 제안하는 것이었다. 헌법이 규정한 국회의 예산 확정 기한인 12월2일을 넘겼음에도, 여전히 예산을 두고 여야가 대치 중이었기 때문이다. 법정 기일 내 예산 통과가 안 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이참에 작정하고 국회의 예산 심의 행태를 질타하면서 개선안을 제안하려 했다. 한창 글 쓰는 중에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화급한 목소리로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는 뉴스가 떴다고 했다. 나는 가짜뉴스일 것이라고 답했다. 아내는 아니라고 반박했고, 나는 급히 인터넷을 켰다. 사실임에 경악했고, 바로 TV를 켜고 상황을 주시했다.
12월4일 새벽 1시경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안이 가결되었을 때는, 안도감을 넘어서서 환희의 감정마저 느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가결을 선포하면서 “국회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임을 확인했다. 국민과 함께 민주주의 헌정질서를 반드시 지켜내겠다”고 말하는 모습에는 울컥했다. 그 순간을 지켜본 대다수 시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아침에 진정된 마음으로 상황을 복기하니, 이번처럼 국회에 대한 효능감을 느낀 적이 또 있었나 싶었다. 국회의 주요 역할이 행정부 견제임은 어릴 적 학교에서 착실히 배운 덕분에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현실 국회는 (특히 행정학자인 나한테는) 주로 공무원 일하는 데 딴지 걸거나 여야가 이전투구 하는 모습만 보였다. 그러다가 이번 일로 국회의 존재 의의를 명징하게 확인한 것이다.
해프닝 치부하기에는 엄청난 사건
만일 그때 국회 본회의장에 재적 과반수 의원이 들어가지 못하고, 그래서 계엄 해제 요구안을 가결하지 못했다면 어찌 되었을까.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 활동을 금한다”는 1항부터 “이상의 포고령 위반자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계엄법 제9조에 의하여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을 할 수 있으며, 계엄법 제14조(벌칙)에 의하여 처단한다”로 끝맺은, 공포와 절망을 자아낸 포고령. 유리창을 깨고 국회 본관으로 진입하는 특전사 무장군인들. 1980년을 기억하는 장년층 이상은 물론이고 영화 <서울의 봄>으로 계엄 치하를 간접 체험한 청년층을 망연자실하게 한 비현실적 상황이었다. 그때 계엄 해제 요구안 투표에 참여한 국회의원 본인들도 모처럼 순수하게 국민의 대표로서 제 역할을 했다는 자긍심을 느꼈을 것 같다.
비상계엄은 선포된 지 몇 시간 만에 해제되었다. 그러나 누구의 말처럼 해프닝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사건이었고 아찔한 시간이었으며 후과(後果)가 너무나 크다. 얼마나 비상식적인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는지는 익히 알려졌으니 여기서 재론할 필요는 없겠다. 이제 걱정하고 고민해야 할 것은 뒷수습이다.
이제 정치의 공간이 활짝 펼쳐졌고 국회의 시간이 도래했다. 대통령 탄핵이 어떻게 귀결되든, 이미 국정운영 능력은 상실했다. 아무리 국무총리 등이 대신한다 해도, 국회가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다. 진상 규명과 문책, 재발 방지 대책 논의에 더하여 향후 정치 일정이 확 앞당겨질 테니 여야의 셈법은 복잡할 것이다. 위기든 기회든, 각자가 처한 여건에서 자신의 이익 혹은 당리당략을 고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이러한 사익 추구가 너무 과하지 않고 공익과 같은 방향을 향했으면 좋겠다. 무도한 계엄을 무산시키는 모습에 보낸 시민의 갈채를 기억했으면 한다.
정치인뿐만 아니다. 시민사회단체도 정치의 공간에 적극 뛰어들 것이다. 물론 필요한 일이다. 다만, 다양한 조직이 함께하면, 자칫 합리적 대안보다는 강경한 대안, 성급한 대안이 채택될 수 있음에 유의하면서 신중히 행동하면 좋겠다. 존재감을 잃어가던 정통 언론은 이번 사태를 맞아 왕년의 성세를 상당 부분 복구했고, 향후 정치의 공간에서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온갖 매체가 난무한 탓에 선정적인 기사와 논쟁의 유혹이 크겠지만, 정통 언론 본연의 사명감을 제대로 발휘하면 좋겠다.
정치가 믿음 주면 행정은 적극적
국회의 시간은 투 트랙이어야 한다. 하나는 전술한 정치 공간에서의 시간이다. 또 하나는 행정 공간에서의 시간이다. 가뜩이나 늦어진 예산 의결이, 계엄 사태로 인해 더욱 지체될 판국이다. 설령 통과되더라도 다른 데 정신이 팔려 있는 탓에 부실해질 공산이 크다. 혹은 관심이 소홀한 틈을 타서 쪽지 예산이 더욱 기승을 부릴 수도 있겠다. 예산뿐만 아니다. 각종 민생법안도 밀려 있고, 국회가 풀어야 할 정책 현안도 그득하다. 의제의 느닷없음과 표현의 극악함으로 이번 계엄 사태의 부조리를 극명하게 보여준 포고령 5항의 전공의 복귀 문제도, 이제는 국회가 풀어야 할 과제가 되었다. 애초 예산과 민생법안 처리가 지연된 것은 대통령과 야당의 대립 때문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이지만 어쨌든 야당 입장에서는 바라던 대로 문제가 풀렸다. 그러니 열린 마음으로 입법, 예산, 사회적 갈등 해결이라는 국회 본연의 임무에도 정성을 기울였으면 한다.
행정 공간에선 공무원의 역할도 중요하다. 행정 수장의 직무 수행력이 유명무실해진 상황에서, 다음 대통령이 정해지기 전까지는 과도정부처럼 행정이 운영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여건은 녹록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등 불확실한 외교 환경, 반도체 경쟁력 상실 등 암울한 경제 환경, 인공지능(AI) 혁명 등 급변하는 기술 환경. 단단히 준비하고 총력으로 대응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이들은 잠시만 손 놓고 있어도 영 회복하기 힘들어진다.
정치인과 공무원 입장에서는, 과도기 행정이니 기본적인 기능만 소극적으로 수행하는 게 정당하게(혹은 안전하게)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져야 한다. 행정학자인 나로서는 이게 가장 큰 걱정이다. 쉽지 않겠지만, 공무원들은 이전과 다름없이 담당 분야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업무에 매진하면 좋겠다. 정치인들이 이를 적극 지원하고 밀어주면 금상첨화겠다. 정치가 믿음을 줘야 행정이 적극적일 수 있다. 술판을 즐기든 싸움판에 뛰어들든 소는 키워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