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할배! 왜?

2024.12.05 20:34 입력 2024.12.05 20:35 수정

[정지아의 할매 열전]이번에는 할배! 왜?

할매 얘기나 할 때가 아니다(젠장. 머릿속으로 다 써놨는데!).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오래(오래는 아니다. 고작 12월3일 밤 10시59분부터 현재까지. 그런데 무지막지하게 길게 느껴졌다. 한 45년쯤으로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고민했으나 할 말이 없었다. 우리 동네에서는 이런 상황을 이렇게 표현한다. 하도 얼척이 없응게 헐 말이 없네이. 내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우리 집 손님을 태우러 오신 기사님께서 한마디 보탰다. 먼 일이대요? 취했응게 그랬겄지라? 순간 생각했다. 이번에는 할배 이야기나 해야겠다.

어떤 할배가 있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소학교도 마치지 못한. 그래서 낫 놓고 기역 자도 몰랐던.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늘 친절하게 인사를 받아주었고 때로는 머리도 쓰다듬어 주었으며, 코 찔찔 흘리는 동네 아이들을 불러세워 따신 갱엿을 손에 쥐여주기도 했다. 집안에서는, 폭군이었다. 할배는 타고나기를 청결한 사람이었다. 옷에 붙은 작은 티끌 하나도 용서하지 못했다. 나는 할배가 일하는 모습을 본 기억이 거의 없다. 할배를 마주치는 곳은 주로 개울이었다. 할배는 언제나 낫이나 괭이 같은 농기구를 흐르는 냇물에 씻고 있었다. 할배는 손으로 날을 더듬으며 흙 한 톨 남기지 않고 여러 번 씻은 뒤 늘 사용할 용도로 개울가에 만들어놓은 숫돌에 몇 번이고 날을 갈았다. 오래 갈고 닦은 날을 머리 위로 치켜들고는 한쪽 눈을 찡그린 채 햇빛에 비춰보곤 했는데, 어느 땐가는 숫돌에 비친 햇살이 낫으로 튕겨졌다가 할배 눈으로 되쏘아졌다. 강한 빛에 찡그린 할배의 입이 환하게 웃고 있는 모양이 참으로 기이해서 나는 다슬기를 줍다 말고 팬티 속으로 구겨 넣은 치맛자락이 휘리릭 풀려 물에 젖는 줄도 모른 채 오래도록 지켜보았더랬다.

깔끔한 할배가 자기처럼 깔끔한 아내를 만났더라면 인생이 달라졌을까? 불행히도 할매는 털털했다. 털털할 수밖에 없기도 했다. 언젠가 할배가 모를 심다 말고 바짓가랑이에 흙이 묻었다며 집으로 달려갔다. 찝찝해서 참을 수가 없다나 뭐라나. 할배는 뭘 하는지 해가 저물도록 나타나지 않았고, 별수 없이 할매 혼자 모내기를 마무리했다. 해가 뉘엿뉘엿해서야 집에 돌아온 할매는 엉덩이 붙일 짬도 없이 저녁을 지었다. 텃밭에서 어린 상추를 뽑아 대충 씻어 버무려 올려놓으면 야속한 할배는 눈치 없이 끼어든 잡초 한 가닥을 야무지게도 젓가락으로 뽑아냈다. 시방 나보고 풀이나 묵으라는 것이여! 할배는 고함을 지르며 야멸차게 밥상을 마당으로 집어던졌다. 그 집 아이들은 노상 그런 꼴을 보고 자랐다.

가부장의 시대에, 못 배워 누구보다 가부장다운 가부장이고 싶었던 할배는 21세기 들어 찌그러져서 산다. 다 자란 자식들이 엄마만 치켜세우는 걸 보면서 무언가 깨달은 모양이다. 요새 할배는 할매가 하란 대로 한다. 지난 설에는 할매가 예전의 할배처럼 소리쳤다. 걸거쳐서 귀찮아 죽겄응게 지발 암 디나 쫌 댕겨오씨요이! 동년배가 세상을 다 떠난 터라 할배는 추운 겨울날 담벼락 밑에 처연히 쭈그려 앉아 해가 저물도록 담배를 피우고 또 피웠다. 할매와 자식의 원망을 듣고 또 들으며 할배는 배운 것이다. 자신의 한생이 그들에게는 폭력이었다는 것을. 소학교 못 나온 할배도 살며 배운다. 좋은 집에서 태어나 좋은 대학 나와 좋은 직업 갖고 평생 떵떵거리며 살아봤자 배울 줄 모르는 사람들은 저 할배만도 못하다고, 감히 말하겠다.

사람들은 이번 계엄이 위헌인가 아닌가를 따지고, 계엄 선포로 얻는 것이 무엇인가를 따진다. 나도 따져봤다. 암만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상식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유 없는 살인을 한 자는 잡기 어렵다. 상식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살인자라면 잡히지 않아 다행이라 또 죽일 수 있을 테지. 그러나 정치는 다르다. 이유가 있든 없든 옳지 않다면, 그 옳지 않음이 도를 넘는다면, 민중(대중이라 해도 다르지 않다)은 참지 않는다. 절대권력자 황제도 단두대에 세우는 것이 민중이며, 그것이 역사의 진보다. 옛사람들은 말했다.

미친개에게는 몽둥이가 약이다.

왜? 말이 통하지 않으니까. 부디 해학을 이해하시라. 몽둥이를 쓰고 싶다는 말이 아니다. 말이 통하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말이다.

정지아 소설가

정지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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