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한덕수 공동담화서도 “정국안정 당에 일임”
헌법상 권한대행 조항 있어도 ‘정당’ 일임 규정 없어
민변 “헌법파괴자 소속 정당 국정 운영은 헌법파괴”
“저의 임기 문제를 포함하여 앞으로의 정국 안정 방안은 우리 당에 일임하겠습니다. 향후 국정 운영은 우리 당과 정부가 함께 책임지고 해나가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일 국회 탄핵소추안 표결을 5시간 앞두고 발표한 대국민 담화의 핵심 내용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도 8일 한덕수 국무총리와 회동한 뒤 공동담화에서 “윤 대통령이 정국 안정 방안을 당에 일임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밝혔다. 대통령 권한을 자신이 속한 정당에 일임한다는 것을 두고 법조계에서는 “위헌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헌법 71조는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로 인해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국무총리, 법률이 정한 국무위원 순서로 그 권한을 대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금처럼 스스로 물러나지 않거나 탄핵으로 이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권한을 위임한다는 발언은 헌법에 어긋난다고 헌법학자들은 지적한다. 헌법연구관 출신 노희범 변호사는 이날 기자와 통화하면서 “대통령 권한을 일임하는 건 법에 규정된 게 없다”며 “대통령 담화 자체가 위헌적이고, 국정 운영 자체를 정당에 위임한다는 것도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윤 대통령의 담화는 헌법의 범위를 넘어섰다는 의미에서 위헌으로 볼 수 있다”며 “굳이 ‘우리 당’이라고 말한 것도 국회의 존재를 부정한 것이나 다름없고, 직무유기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치적인 합의로서는 의미를 가질지 몰라도 헌법적으로는 아무 근거가 없다”며 “헌법이 인정하지 않는 편법이 성공할 수 있나”라고 말했다.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금 한 대표가 마치 대통령인 것처럼 한 총리를 만나고 지시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 자체가 월권행위”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담화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발언과도 차이가 있다는 게 헌법학자들의 설명이다. 박 전 대통령은 2016년 11월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을 앞두고 3차 대국민담화에서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고 말했다. 노 변호사는 “국회가 결정해주면 따르겠다는 것과 국정운영을 ‘우리 당’에 일임한다는 건 차이가 있다”며 “특히 현재 국회 상황은 여당이 소수당이고 오히려 민주적 정당성이 있는 건 야당이다”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박 전 대통령은 임기 단축이라는 말이라도 포함했는데 윤 대통령은 그런 표현도 없다”며 “사실상 어떠한 권한도 내려놓은 건 없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이 단체로 탄핵소추안에 표결하지 않은 것을 놓고도 위헌성이 제기된다. 강압적인 방법으로 국회 기능을 정지하려 했다는 점에서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내란행위에 해당하고, 이를 막기 위한 탄핵소추안 표결에 국민의힘 의원 다수가 투표에 나서지 았았기 때문에 위헌성이 있다는 내용의 문제제기다. 비상계엄 상황에서 추경호 국민의힘 전 원내대표가 국민의힘 의원들을 국회가 아닌 당사에 모이도록 한 것도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한 명 한 명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 개인의 계엄해제 요구안 표결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이날 성명을 내고 “헌법파괴 행위를 한 자가 소속돼 있는 정당이 국정에 관여하는 것 자체가 또 다른 헌법파괴 행위이다”라며 “국민의 권력을 사유화하지 말고 국민의 명령에 따라 신속히 탄핵소추에 동참하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