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해제한 다음날인 지난 5일 서울 은평구 중학교 세 곳에 한 신문의 호외가 뿌려졌다. A4용지로 제작된 신문의 1면 머릿기사로 ‘윤석열 대통령 비상계엄 선포…6시간 만에 종결’이, 하단 기사에 ‘계엄이 뭔가요?’가 실렸다. 2면 전면에 사설 ‘우리가 물려받고 싶은 나라’가 실렸다.
이 사설은 “우리 청소년은 민주주의가 사라진 나라, 경제가 망한 나라, 국제적으로 망신만 되는 나라를 물려받고 싶지 않다”고 했다. “정치에 몸담은 사람들은 국가를 최대한 빠르게 정상화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하야도 괜찮고 탄핵도 상관없다”고 썼다.
기성언론이 특별판으로 만든 것이 아니었다. 이 호외는 은평구 소재 중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제작했다. 학생 언론 ‘토끼풀’ 창설 멤버인 문성호 편집장(14·중2)은 8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기자와 만나 “불안정한 상황을 국회와 정부가 빠르게 해결하라는 마음에서 (사설을) 썼다”고 말했다.
토끼풀은 지난 3월 은평구의 한 중학교 자율동아리로 시작했다. 지금은 중학교 세 곳 약 40명이 활동하는 지역 청소년 신문으로 성장했다. 토끼풀이란 이름은 한 게임에 나오는 가상의 신문 이름을 본따 지어졌다. 토끼풀은 정치·사회 이슈와 더불어 지역·교육·학교 현안에 대해 다룬다. 원거리 통학으로 인한 교통비 문제, 도서관 수 부족 문제,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 전면 도입 비판 등에 대한 기사를 실어왔다.
문 편집장은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난 3일 밤 실시간으로 뉴스를 지켜봤다. 토끼풀 내에서도 호외를 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가짜뉴스, 여론조작, 허위선동을 금한다’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는 포고령 1호가 마음에 걸렸다. 비상계엄이 해제되기 전까지 호외 발행을 미루자고 했다. 지난 4일 새벽 비상계엄이 해제된 뒤 학교에 가니 온통 비상계엄 이야기뿐이었다. 친구들은 비상계엄이 무엇인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것인지 물었다. 윤 대통령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더러 나왔다. 한 역사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현 시국에 문제가 있다. 너희들 보기 부끄럽다”고 말했다.
문 편집장은 청소년들에게 비상계엄 선포부터 해제까지의 과정, 비상계엄의 정의와 파장에 대해 알리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토끼풀은 이날 밤 호외를 만들었다. 비상계엄을 바라보는 청소년의 입장은 사설로 다루기로 했다. 문 편집장은 그 다음날 아침 자신이 다니는 학교에 호외 120부를 배포했다. 호외를 받아든 친구들은 ‘이 사태에 대해 알게 돼서 좋았다’고 했다. 선생님들도 칭찬했다.
문 편집장은 전날 국회에서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투표 불성립으로 폐기된 데 대해 “혼란이 가중됐다”고 했다. 그는 탄핵 정국이 장기화해 불안정한 상황이 지속되면 당장 학생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고 우려했다. 문 편집장은 “AI 디지털교과서도 당장 내년에 도입이 되는데 정부 리더십이 없는 상황이면 실제 교육현장에선 써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라며 “의과대학 정원도 다음 정부가 들어선다면 (당초 증원 계획보다) 줄일 가능성이 높지 않나. 3~4년 뒤 대입에 뛰어드는 입장에서 혼란스럽다”고 했다. 그는 “(대통령이) 질질 끌면서 버티기를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