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올 1월 “임기 중 자본시장 규제 혁파를 통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고 했다. 그런 윤 대통령의 지난 3일 비상계엄 선포 이후 사흘 만에 국내 증시에선 70조원 넘게 증발했고, 원·달러 환율은 2년여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 무산으로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이번주 금융시장 변동성은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지난 3일 미국발 훈풍에 힘입어 반등을 도모했던 국내 증시는 같은 날 밤 비상계엄 선포 이후 3거래일 연속 하락해 시가총액 기준 71조8020억원이 사라졌다. 그나마 금융당국의 빠른 대응으로 지난 8월5일 ‘블랙먼데이’ 때 만큼의 충격은 피했지만, 코스피는 계엄 이후 2.88% 내린 2428.16, 코스닥은 4.27% 급락한 661.33까지 밀렸다. 전체 상장기업의 3분의 1에 달하는 953개(36%)가 장중 52주 신저가를 기록했다.
원화 가치 역시 가파르게 절하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7일 새벽 야간거래에서 달러당 1423원에 마감하며 계엄 이전인 3일 주간 종가(1402.9원) 대비 4일만에 20.1원이나 올랐다. 계엄 직후엔 달러당 1442원까지 뛰며 한 주간 환율 변동 폭은 41.5원에 달했다.
정치적 불확실성에 위험회피 성향이 커진 영향과 함께, 현 정부에서 추진 중인 정책들이 모두 중단되고 한국 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하방리스크가 가속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시장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지난주 증시를 끌어내린 것은 반도체주가 아닌 정부 ‘밸류업 프로그램’의 수혜주로 꼽히는 금융·자동차주, 현 정부가 드라이브를 걸어온 산업인 원전·방산주 등이었다.
특히 국정 공백으로 경기침체 가능성과 미국 신 행정부의 무역 정책에 대응하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인 피치는 지난 6일 보고서에서 “한국 경제는 이미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증가와 국내 부동산 약세로 대외 무역 위험에 직면해 있다”며 “지속적인 정치적 분열로 인해 정책 결정의 효율성, 경제 성과, 재정이 약화된다면 하방 위험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미 8월부터 국내 증시 순매도에 나서고 있는 외국인은 비상계엄 이후 3거래일 동안 국내 증시에서 1조2430억원어치를 팔아치우며 빠르게 이탈하고 있다.
문제는 블랙먼데이 당일에도 1조원 넘게 순매수 하는 등 증시를 방어해온 개인투자자도 이탈 기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6일 개인들은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매도세(2450억원)를 웃도는 7560억원을 순매도하며 지수를 끌어내렸다. 개인투자자 비중이 높은 코스닥은 코스피보다 더 큰 폭으로 떨어졌다. 3분기 이후 국내증시와 해외증시의 수익률 격차 확대로 개인투자자의 순매수액이 점차 감소해왔는데, 정치 리스크로 이탈이 빨라질 수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