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을 획책하는 괴물

2024.12.08 20:30 입력 2024.12.08 20:31 수정

숨막히는 나흘이었다. 지난 3일 비상계엄 선포를 보고 막혔던 숨이 국회와 시민의 발빠른 대응으로 계엄 해제가 가결된 후에야 터져 나왔다. 하지만 7일 밤 국민의힘이 탄핵소추안 표결을 보이콧하면서 다시 막혔다. 추위에 떨면서 표결을 지켜봤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할 때 가슴이 무너져내렸다. 10명이 남았다고 할 때 고개를 들었지만, 안철수 의원만 남았다고 할 때 오한이 스며들었다. 44년 전 광주로 플래시백되면서 밤하늘이 하얘졌다. 다음 토요일에 탄핵을 재추진한다는 뉴스를 보고나서야 잠들 수 있었다.

긴박한 일주일이 남았다. 탄핵소추안이 폐기돼 국정은 혼란하고 국민은 불안하다. 거취를 당과 정부에 일임하겠다는 대통령의 구두 약속에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조기 퇴진 주장을 냉큼 취소했다. 장전된 총은 여전히 술 취한 아이가 쥐고 있다.

석 달 전 계엄설을 망상이라 했던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비상계엄을 건의했고, 대통령은 계엄군을 몸소 지휘하며 쿠데타를 주도했다. 지난해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로서 더불어민주당의 표결 불참 논의에 대해 “반헌법적으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던 주호영 국회부의장도 거침없이 본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국회법을 어겨가며 본회의 개회 중에 의원총회를 열어 표결을 방해했다. 계엄군의 국회 난입 때도 추 원내대표는 의원총회를 빌미로 국민의힘 의원들을 국회가 아닌 당사로 모이라고 했다. 추 원내대표는 내란의 공범이 됐고, 탄핵을 거부한 국민의힘 의원들은 내란의 부역자가 됐다.

“국민의 삶은 안중에도 없고 자유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짓밟고 내란을 획책하는 괴물이 된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문의 일부다. 이 영상을 보고 국민들은 과연 누구를 ‘괴물’로 떠올렸을까.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가장 큰 적은 윤석열 대통령임을 이제 전 세계 시민들이 모두 안다. 다음 토요일에는 괴물을 반드시 퇴치해야 한다.

하지만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더라도 헌법재판소가 인용하기 전까지 탄핵은 끝난 것이 아니다. 만에 하나 헌법재판소가 인용하지 않는다고 해도 끝난 게 아니다. 국민의 탄핵이 있다. 그리고 국민의 탄핵은 이미 시작됐다. 국회 가결 때까지, 헌법재판소 인용 때까지, 괴물이 물러나 단죄를 받을 때까지 국민의 탄핵은 지속될 것이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탄핵된다고 이런 사태가 재발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제왕적 대통령은 국회를 무시하고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를 수 있음을 우리는 직접 경험했다. 정부 구조 개혁도 심각히 논의해야 할 때다. 현행 헌법이 대통령에게 국회해산권을 부여하고 있지 않아 간신히 비상계엄을 해제하긴 했다. 하지만 원시나리오대로 계엄군이 국회를 장악하는 데 성공하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해 선거 관련 서류를 폐기·조작해 야당 의원들 다수를 선거법 위반이나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했다면 어찌 됐을까. 국회 난입은 ‘반국가단체 소탕을 위한 불가피한 작전’으로, 비상계엄은 ‘국가 안보를 위한 고도의 정치 행위’로 유권 해석을 내려 정당화했을 것이다. 이어 선관위를 제압해 부정선거를 치른 뒤 여당이 과반수 의석을 획득하면 비상계엄을 지속하거나 적어도 거침없는 독재를 구축했을 것이다.

망상이 현실이 되는 것을 우리는 목도했다. 제도적 위험 요소를 없애야 한다. 미국 언론도 트럼프 재임 시기의 계엄 선포 가능성을 타진해 봤다고 한다. 미국 대통령은 제왕적 존재가 아님에도 한국의 이번 사태를 타산지석으로 삼고 있다. 하물며 제왕적 대통령제를 가진 한국은 위헌적 비상계엄의 위험이 상존한다. 당장에도 2차 비상계엄을 염려하고 있지 않은가. 대통령제를 폐지하고 내각제 도입을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손바닥에 임금 왕(王)자를 쓰고 당선돼 친위 쿠데타를 통해 말 그대로 제왕이 되려던 윤석열을 대통령제 한국의 마지막 대통령으로 만들어야 한다.

내란 공범 용의자 추경호 원내대표는 사퇴 뜻을 고수 중이라지만, 한동훈 대표는 불법 소지가 있는 국정 참여를 고집하고 있어 다음 탄핵소추에도 여전히 빨간불이다. 여당 의원들이 내란의 부역자가 안 되길 기대할 뿐이다.

나는 경산시민이고 영남대 교수다. 비록 윤석열 대통령의 도움으로 당선됐다지만, 제자인 조지연 의원의 당선 소식을 듣고 골리앗을 이긴 다윗이라고 기뻐했다. 하지만 조지연 의원, 나는 당신을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다. 조 의원이 의리를 지키는 당찬 정치인임을 잘 안다. 대통령·윤석열과 국민의힘에 대한 의리보다 역사·국민에 대한 의리를 지키길 바란다.

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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