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들여 연습한 <마타하리> 개막을 이틀 앞두고 12·3 비상계엄 사태 소식을 접했을 때, 20년 차 베테랑 뮤지컬 배우 옥주현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무섭다기보다는…. 이 업계 있는 사람으로서 메르스, 코로나를 겪었어요. 모든 국민이 흔들릴 때 가장 많이 타격받는 게 예술이거든요. 어떻게 보면 당연하죠. 여유를 가질 수 없으니까. 그런데 기자님은 언제 죽을 거라 생각하세요? 내일 무사할 거라고 생각하세요? 전 그런 마음을 가져요. ‘집을 나섰다 무사히 돌아오는 건 당연하지 않다.’ 주변 사람 떠나가는 걸 많이 봤어요. 떠나는데 어떤 순서도 정해져 있지 않아요. 세상에 일어나지 못할 일은 없어요. 그저 매 순간 열심히 잘 살아야지, 그런 생각밖에 없어요.”
6일 <마타하리>가 공연 중인 LG아트센터 서울에서 옥주현이 기자들과 만났다. 이 작품을 비롯해 이번 겨울 작품 4편이 한국에서 공연되는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도 함께 했다.
창작 뮤지컬 <마타하리>는 2016년 초연해 이번이 4연째다. <지킬앤하이드> 등으로 한국에서 인기 많은 와일드혼은 EMK뮤지컬컴퍼니의 소개로 옥주현의 목소리를 들었고, 영감을 얻었다. 와일드혼과 EMK는 여성 서사 뮤지컬을 만들자는데 의기투합해 <마타하리>를 선보였다. 와일드혼은 “<마타하리>는 ‘옥주현의 공연’이라 해도 된다”며 “특정 인물을 위해 공연을 만드는 것이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극 중 마타하리는 프랑스와 독일의 전쟁, 첩보전 와중에서도 오직 사랑 하나만 믿고 전진한다. 그 와중에 사형 선고를 받지만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고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인다. 2년 만에 다시 마타하리로 무대에 오르는 옥주현은 “다시 마타하리를 연기하기까지 너무나 기다렸다. 오랜 롱디(장거리 연애)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곧 만나는 마음”이라며 “첫 연습 때부터 완벽했고, 소름 끼치도록 좋았다”고 말했다.
올해 옥주현은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에도 출연했다. 모두 ‘여성 서사’ 뮤지컬로 분류할 수 있다. 여성 서사 뮤지컬이 많아지는 데 대해 옥주현은 “훌륭한 여성 배우가 많다는 것이 세상에 드러나 크게 기쁘다”며 “그런 작품이 더 많이 알려지도록 도구로 쓰이고 싶다”고 말했다.
2005년 <아이다>로 뮤지컬 데뷔한 옥주현은 최고의 티켓 파워를 가진 배우로 성장했다. 아이돌 그룹 ‘핑클’ 시절이 희미할 정도다. 옥주현은 “‘최고 티켓 파워’라는 말은 너무 무섭다. 난 어떤 작품이든 솔드아웃되는 조승우 같은 배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뮤지컬 배우로 ‘어떤 고지에 갈 거야’라는 목표를 가진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매번 제 무대의 부족함, 부끄러움을 해소하려다가 여기까지 왔어요. 그 사이 여러 일이 있었고, 어느덧 큰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이 됐네요. 예전엔 행복할 때 더 불안해했어요. 뮤지컬 상을 받으면 ‘왜 지금 주지?’ 하고 불안해했거든요. 지금은 그냥 무대에 살아요.”
옥주현은 “작품 선택이 내 출발이다. 관객에게 ‘저 사람이 선택했다면 이유가 있을 거다. 고민하지 않고 지갑 열어도 된다’는 마음을 주고 싶다”며 “선택하고 나면 의심 없이 영혼을 갈아 작품을 한다”고 말했다.
<마타하리>는 내년 3월2일까지 공연한다. 마타하리 역에는 옥주현과 솔라가 함께 캐스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