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대로 뒤덮은 시민들
청년들 형형색색 아이돌 응원봉 들고 “웃으며 싸울 것”
기성세대도 한목소리…“국민의힘은 국민을 배신” 결연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고, 끝내 여당의 외면으로 표결이 무산된 지난 7일 시민들은 국회 앞을 뒤덮고 에워쌌다. 초유의 국기문란으로 불린 사태에 분노해 분연히 나섰지만 싸움은 유쾌했다. 눈물을 흘리던 사람들도 함께 노래를 부르고 촛불을 흔들면서 함께 웃었다.
지난 7일 밤 국회 앞에서 열린 탄핵 집회는 그동안 보지 못한 장면들이 펼쳐졌다. 정치에는 관심이 없다던 20~30대 여성, 10대 학생 등 젊은 세대부터 유아차에 탄 세 살 아이, ‘계엄 n회차’ 80대 노인까지 성별·나이·지역을 불문한 시민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들은 탄핵안 표결 무산 소식에 분노하면서도 “윤석열이 탄핵될 때까지 끝까지 싸우겠다”며 결연한 의지를 다졌다.
지난 6일 아침부터 쭉 국회 앞을 지켰다는 전희연씨(19)는 “차라리 반대표라도 던졌으면 이렇게 비참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이렇게 많은 국민이 국회 앞에서 호소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무책임하게 국회를 뛰쳐나올 수 있나”라고 국회 표결 무산을 비판했다.
‘젠지 세대’로 불리는 20대 시민들은 야광봉을 흔들고 에스파·NCT·여자아이들 등 인기 아이돌 그룹의 음악에 맞춰 “탄핵”을 외쳤다. 국회 앞은 형형색색 불빛으로 물들며 마치 콘서트장을 방불케 했다. 이들은 “분노하며 나왔지만 웃으면서 싸우겠다”고 입을 모았다.
이모씨(22)는 “우리가 즐겨야 탄핵을 반대하는 쪽에서도 기가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등학교 3학년 이한결양(18)은 “팔도 아프고 목도 아프지만 집회는 계속 나올 것”이라며 “분노만으로 시위하면 못 뭉친다”고 말했다.
이들의 뒤에서 응원하는 기성세대들도 눈에 띄었다. 한 노인은 “겨울에 아프면 안 된다”며 응원을 전했고, 젊은 시민들도 “파이팅”이라고 외치며 화답했다. 밤늦게까지 국회 앞을 지킨 사람들에게는 핫팩과 음료수, 김밥과 소시지 등 각종 ‘농성 보급품’이 끊임없이 지원됐다.
국회 본회의 표결 시간이 다가올수록 국회 앞 대로는 인파로 가득찼다. 성별·나이·지역을 불문하고 모여든 시민 100만명(집회 측 추산, 경찰 추산 11만명)이 국회에 ‘탄핵 가결’을 요구했다. 경북 출신인 임현철씨(50)는 “대구·경북에서 자랐지만 국민 요구를 들을 생각이 없는 (여당이) 정말 부끄럽다”며 “시간 끌기에 불과한 임기 단축 개헌을 얘기하는 것에 화가 난다”고 말했다. 유아차에 세 살배기와 다섯 살배기 두 아이를 태우고 집회에 온 김모씨(43)는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나왔다”며 “대통령 담화를 보고 전혀 책임질 생각이 없다는 걸 느꼈다”고 했다.
시민들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탄핵안 표결에 불참해 투표 불성립으로 탄핵안이 폐기되자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11세 자녀와 함께 집회에 참여한 박선영씨(48)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 상황에서 당을 지키겠다고 국민을 배신했다”며 “올해가 가기 전에 반드시 탄핵될 것”이라고 분노했다. 대학생 이재인씨(22)는 “계속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며 “다른 시민들이 나올 때까지 국회 앞이 비어 있지 않도록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계엄만 ‘n회차’인 노인들도 한목소리로 탄핵을 말했다. 최은식씨(88)는 “이 추위에 탄핵·체포·하야를 말하는 시민 목소리를 듣는다면 즉시 국가가 정상화될 수 있게 뭐든 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광섭씨(82)도 “국민 수준이 얼마나 달라졌는데 비상계엄이라니 황당하고 어리석은 대통령”이라고 했다. 시민들은 국회가 제대로 일할 때까지,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때까지, 세상이 다시 올바르게 될 때까지 몇번이고 다시 모이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