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기적’. 인터넷에서 맨 처음 접했던 헤드라인이었다. 순간 새마을운동 시절 구호가 떠올랐다. 다행히 지명이 아니라 인명이었다. 이런 경사가 또 어디 있을까. 물론 노벨상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수도 없거니와 전 세계인이 대한민국을 우러러보지도 않는다. 하지만 정국이 점점 수렁에 빠져드는 시점에 노벨상, 그것도 문학상이라니. 잠깐이나마 눈이 번쩍 뜨이고, 괜히 어깨가 으쓱해졌다. 우리는 노벨보다 ‘노벨상’에 대한 관심이 더 크다. 그간 노벨상은 먼 나라 이야기처럼 별 감동 없다가, 갑자기 가깝게 느껴졌다. 참으로 얄궂은 심사다. 노벨상위원회 홈페이지를 뒤적여본 것도 이런 연유였는데, 노벨의 마지막 여정과 노벨상 연회에 관한 것이 특히 흥미로웠다.
생애 마지막 5년을 노벨은 지중해가 내려다보이는 이탈리아 산레모에서 보냈다. 이전에 살던 프랑스에서 간첩 혐의 등으로 더 이상 실험이 어려워지자, 이탈리아로 자리를 옮겼다. 춥고 음습했던 파리에서 만성 감기를 달고 살던 그에게 청명하고 온화한 산레모 기후는 지친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는 휴양지였다.
야자수와 오렌지 숲으로 둘러싸인 산레모의 자택 ‘빌라 노벨’에서 그는 새로운 실험에 힘을 쏟았다. 또한 죽음을 앞두고서도 <네메시스>라는 희곡 작품까지 남겼으니, 평소 문학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보여준다. 노벨상에 문학상이 포함된 것은 구색을 갖추자는 것이 아니라 생전에 그 스스로 이루고 싶은 꿈 중 하나였다.
노벨이 여생을 보냈던 산레모 시는 화훼단지로 유명하여 매년 카네이션, 백합, 장미, 난초, 글라디올러스 등 약 2만3000개 이상의 각종 꽃을 노벨상 연회에 보내며 노벨을 기린다. 이 꽃들은 노벨상 시상식과 저녁 만찬의 꽃장식에 사용된다. 올해도 산레모의 노벨 빌라에 피던 지중해의 화사한 꽃이 시상식과 연회장을 수놓을 것이다. 한편 노벨상 홈페이지에는 1901년부터 2023년까지의 만찬 메뉴가 상세히 나와 있다. 한 세기가 넘는 식단에서 음식의 역사와 문화도 알 수 있다. 거북이 수프, 뇌조 가슴살 요리 등 색다른 메뉴가 눈에 띈다. 1, 2차 세계대전 중에는 연회를 열지 않고 그 비용을 적십자사에 후원했다.
이제 시골 동네 책방에서도 노벨 문학상 작품을 손쉽게 접하고, 번역 없이 원문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노벨 문학상 수상을 통해 문화란 무엇인가를 되새겨 본다. 왜곡된 자긍심과 애국심은 경계해야 할 일이지만, 아무튼 감개무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