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3일 밤 갑작스레 불법적인 계엄이 선포되어 온 국민이 불안에 떨어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국회를 지켜준 사람들, 장갑차를 맨몸으로 막아선 의인들, 발 빠르게 대처한 국회의원들, 불합리한 명령에 미온한 반응을 보인 군인들 덕분에 계엄은 해제됐다. 밤새 창밖의 헬기 소리를 들으며, 서슴없이 ‘처단’을 운운하는 포고령을 보면서 나는 극심한 공포를 느꼈다. ‘저번 주에 송고한 5·18 민주화운동에 관한 글은 출간되지 않겠구나, 어쩌면 이전에 썼던 글이 문제가 되어서 변고가 생길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숨죽여 뉴스만 보았다. 용기를 내어 국회로 달려나가준 이들에게 오래도록 죄스러웠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이분들께 빚을 졌다며,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했다.
이후 국회 앞에서 열리는 탄핵 집회에는 거의 매일 참여했다. 1차 탄핵소추안 표결 당시, 국회의원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채 퇴장하는 105명의 국민의힘 의원들을 향해 국회 앞에 모인 사람들과 “투표해, 투표해!”라고 부르짖어야 했을 때, 허망하고 참담했다. 국민의 투표를 통해 당선된 국회의원들이 국민의 뜻에 반하는 대통령 탄핵안 부결에 의견을 모은 것도 모자라 이탈자가 생길까 두려워 표결에 참여하지도 않았다. 2차 탄핵소추안이 가결될 때도, 일부를 제외한 국민의힘 의원들은 탄핵 반대가 당론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비상식적이고 위법한 계엄령 선포 앞에서도 고수되는 기이한 당론. 논리적으로 설명하지도 못해서 더욱 우스운 그 당론이란 국민의 권리 위에 있는 것인가 보다. 고압적인 태도로 일관하던 그들은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그 와중에 윤석열은 계엄 시에도 보장되는 국회의 활동까지 무력으로 막아놓고 반국가세력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둥, 2시간짜리 내란이라는 것이 있냐는 둥 자기 잘못을 부정하는 말만 늘어놓았다. 군인들이 자국민에게 총구를 겨누게 만들고도 조금의 미안한 기색도 없는 후안무치한 태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혼잡한 집회 현장에서 교통 정리 역할을 자청한 스무 살 남짓해 보이는 두 여성은 “사람들이 다치지 않게 더 앞으로 이동하지 말아주세요!”라고 목청껏 외치고 있었다. 강의실에서 보던 학생들 얼굴이 생각나 왈칵 눈물이 나왔다. 시험기간일 텐데, 해야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많을 텐데, 이 추위에 거리로 나와 소리치게 만든 일 자체가 미안하기만 했다. 지하철역에서 마주친 한 어르신은 지나는 청년들에게 연신 사과를 하고 있었다. 우리가 잘못한 거라고, 이런 사회를 물려줘 미안하다고. 시국 선언에 참여한 대학생들은, 부당한 예산 삭감에 항의하거나 오염수 투기에 반대하던 학생들이 입이 막히고 피켓을 빼앗긴 채 끌려나갈 때 침묵했던 것에 대해 사죄하기도 했다.
누군가에게는 없는 죄책감이 누군가에게는 부적절하다 싶을 만큼 과도하게 부여되어 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죄책감은 복잡한 인지능력을 필요로 하는 이차 정서다. 이는 기쁨이나 분노처럼 즉각적으로 경험하는 감정이 아니라 자기 행동을 객관화된 시선으로 평가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느낄 수 있는 복합적인 정서다. 자기 이익에만 골몰하느라 사고가 아주 단순해져버린 이들은 지닐 수 없는 고차원적인 정서일지도 모르겠다. 서울 국제도서전에서 송경동 시인이 팔이 꺾인 채 끌려나가고, 구명조끼도 없이 실종자 수색 작업에 투입되었던 채 상병이 순직하고, 10·29 이태원 참사로 사람들이 죽고 다쳤을 때 함께 맞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가지고서 사람들은 거리로 나선다. 죄가 없음에도 죄의식을 느끼며 불의에 항거하는 이들이 지키려 하는 것은, 죄가 있어도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이들이 필사적으로 지키려 드는 제 밥그릇 따위가 아니다. 범죄자들은 자기 죄가 무엇인지 깨닫지도 못할 때, 누군가는 타자의 고통까지 모두 자기 죄로 떠안아 책임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