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까지 하락세를 보이던 주택 가격은 하반기 들어 뚜렷한 양극화를 보였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 일부지역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급등세를 보인 반면, 같은 기간 지방의 주택가격은 낙폭을 키우며 하락세를 이어갔다. 정부는 집 값을 잡기 위해 ‘돈 줄을 틀어쥐는’ 방식을 택했다. 대출금리를 높이고,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적용해 대출 한도를 줄였다. 수도권 아파트에 대해선 정책대출인 디딤돌 대출도 축소했다. 대출을 끼고 집을 사려 계획했던 사람들이 매수를 포기했다. 몇 달새 급등한 집값 상승세에 피로감을 느낀 시장도 관망세로 돌아섰다. 언뜻 보기엔 정부의 대출규제가 먹히는 듯 하다.
그러나 이 기조가 2025년까지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 내 집을 마련하고자 하는 ‘매수욕구’와 금리인하에 대한 기대감, 내년 하반기부터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되는 공급부족(입주물량 부족) 문제 등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장기화되고 있는 정국 불안도 부동산 시장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하반기 공급 부족에 따른 상승 불가피
전문가들은 내년에도 건설·부동산 경기침체와 불확실성에 따른 여파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내년 상반기까지는 올해의 연장선에서 관망세를 보이겠지만 하반기 들어 입주물량 감소로 상승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만약 내년 7월부터 스트레스DSR 3단계가 적용될 경우 ‘공급부족’과 ‘강력한 대출규제’ 사이에서 상승세가 박스권에 머물 가능성도 있다.
우병탁 신한은행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전문위원은 29일 “대출을 포함한 자금유동성 측면에서 내년 상반기까지는 올해 4분기와 같은 매수수요 감소 효과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서울·수도권 역시 평이한 거래량 수준에서 가격은 약보합 이내의 양상을 보이며 시장의 매물은 증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강남권 선호지역에서는 대출규제와 관계없이 신축을 중심으로 신고가 거래가 이어지며 상승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고, 그 여파는 서울 및 수도권 전역에 확대될 것으로 예측했다.
우 전문위원은 주택가격의 하방경직성 때문에 큰 폭의 하락세도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 현재 주택시장의 매물은 계속 쌓이고 있지만 대부분 매도호가를 낮추지 않은 매물로, 이 상태가 2025년에도 계속 될 경우 ‘매물이 쌓이면 가격이 낮아진다’는 공식 자체가 들어맞지 않고 공급부족과 맞물려 안정적 하락세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도 “전세 가격 상승압력이 커지는 내년 상반기보다 하반기에 거래량이나 가격움직임 면에서 더 활기가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서울 등 주요지역을 중심으로 내년 1분기에서 2분기로 넘어가면서 완만한 상승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대출규제 등을 강화하더라도 그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고, 거래량은 상당 부분 감소해도 거래가격 자체는 상승세가 지속될 여지가 있다”고 예측했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서울은 내년 ‘상저하고(경기가 상반기에는 저조하지만 하반기에는 고조되는 현상)’ 형태를 보일 가능성이 있고, 상승률은 3~5% 수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서울처럼 장기간 공급이 부족한 지역은 정책적 불확실성으로 인한 관망세, 입주예정 물량 감소, 금리인하 등 영향으로 가격이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울퉁불퉁한 ‘양극화’ 확대
전문가들은 내년 주택시장에서의 핵심 키워드로 ‘양극화’를 꼽았다. 비단 수도권과 지방 간의 상승·하락 뿐만 아니라 동일 지역 내에서도 선호지역과 비선호지역 간에 뚜렷한 가격 격차를 보이는 ‘울퉁불퉁’한 모양새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미 5만호 이상의 미분양 적체가 있는 지방은 수도권 쏠림현상과 맞물려 내년에도 가격하락이 이어질 수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내년에는 집값이 지역별로 완전히 다르게 움직이는 ‘지역분화’ 현상이 두드러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같은 시·도 단위 내에서도 생활권역별로 상승지역과 하락지역의 양극화가 두드러질 수 있다는 말이다.
실제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올해 3분기까지 경기도의 아파트 실거래가지수는 3.35%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지역별로 보면 안성과 평택은 각각 4.7%, 3.8%씩 하락한 반면 과천은 10.2%, 성남 수정구는 7.9%씩 상승했다. 용인시도 수지구(3.3%)와 기흥구(1.0%)는 오르고, 처인구(-0.8%)는 하락했다.
박 수석전문위원은 “통상 인기지역의 주택가격이 오르면 비인기지역도 시차를 두고 온기가 퍼지는 경향성이 있지만, 이는 부동산 시장 내에 유동성이 넘치는 호황기에 주로 발생하는 현상”이라며 “내년에는 경기불황과 1%대 성장률 등의 영향으로 유동성 자금이 넉넉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함 랩장은 “경기 저성장 및 시장 불확실성이 강할 때는 비교적 대기수요가 풍부하고, 고급 유효수요가 많은 곳으로 자산 포트폴리오를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며 “내년에도 지방보다는 수도권, 수도권 내에서도 서울, 서울 내에서도 강남권과 한강변 일대로 주택수요가 집중되면서 가격 양극화가 지속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우 전문위원도 “내년 주택시장은 제한적 상승 속에서 지역별 양극화와 세분화로 정의할 수 있다”며 “서울·수도권은 상승기조를 이어갈 것이고, 서울·경기도 아파트 중심으로 임차가격 상승을 일으킬 수 있다”고 밝혔다.
내 집 마련 적기는
함영진 랩장은 내년 상반기는 투자자보다는 실수요 위주의 시장 접근이 유효할 것으로 전망했다. 정국 불안이 이어지고 경기둔화 등 거래소강 상황에서 이전보다는 실수요자의 매입 교섭력이 다소 높아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함 랩장은 “분양, 경매, 신축급매 등 가격만족도를 따져 매입경로를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효선 수석전문위원은 “전국을 동일하게 전망하기 어려울 만큼 지역에 따른 온도차가 크게 벌어져 있는 상황으로, 적어도 서울 아파트에 한해서는 지금부터 거래량이나 주택가격 추세 등을 살피면서 내년 내 집 마련 전략을 세워도 좋다”면서 “경매보다는 기존 주택을 매입하는 방식을 추천한다”고 밝혔다.
이은형 연구위원은 “같은 지역 내에서도 학군지·역세권 등 선호도에 따라 가격 차이가 발생하고 있다”며 “수요자가 선호하는 강점이 있는 곳이라면 내년에 내 집 마련을 미룰 이유가 없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