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타쌍피 스토리노믹스
2024.12.30 07:00 입력 2024.12.30 15:03 수정 박병률 기자
※소설, 영화, 연극, 뮤지컬, 웹툰 등 재미있는 이야기가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이야기만 소비하기에는 뭔가 부족함을 느낄 때가 없던가요? 이야기 속에 숨어있는 다양한 경제적, 사회적 읽을거리가 더해진다면 훨씬 더 재밌을 지 모릅니다. ‘일타쌍피 스토리노믹스’는 이야기에 플러스 알파를 더하는 경향신문 칸업(KHANUP) 콘텐츠입니다. 더 많은 내용을 읽고 싶으시면 로그인 해주세요!

애플 tv 오리지널 <파친코>와 신뢰게임

솔로몬 “자비를 구하러 왔습니다. 제가 뭘하면 될까요?”

아베 “널 처음봤을 때 내 발목을 잡을꺼란걸 알았어. 내가 널 실패하게 한거야. 그러니까 자비를 베풀 수 없지. 난 널 본보기 삼아 이 업계에 경고했거든. 날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는다는 걸 말야”

사실상 투항(?)하려던 솔로몬을 아베는 냉정하게 내친다. 자본시장의 큰 손, 아베는 자이니치(일본에 거주하는 재일교포)에게 조금의 틈도 주지 않았다. 예일대를 나온 솔로몬은 열심히 하면 보상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2년 연속 동기 중에서 최고의 성과도 냈다. 하지만 그는 재일교포 3세. 일본사회의 유리천장은 견고했다. 승진 누락을 납득할 수 없었던 솔로몬은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 보겠다며 도쿄 지사로 왔지만 주변의 시샘과 경계의 눈빛은 더 노골적이다.

제공=애플 tv

애플 tv 오리지널 ‘파친코’

제공=애플 tv

솔로몬에게는 도쿄 시내 호텔 재개발 지역에 있는 작은 단독주택을 매입하라는 특명이 떨어진다. 하지만 딜을 성사시키지 못하고, 그는 가차없이 해고된다. 이대로 물러날 수 없는 솔로몬. 그는 사모펀드를 만들어 그 단독주택을 직접 사들이고, 재개발하려는 투자자에게 되팔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왠일인지 투자를 약속했던 사람들이 하나둘 발을 뺀다. 알고보니 자본시장의 큰 손인 아베가 의도적으로 방해하고 있다. 아베와 협상하려 갔다 내쳐진 솔로몬은 여자친구 미도리에게 말한다. “나 계속 이렇진 않을꺼야. 이젠 게임의 규칙도 알아”

애플 tv 에는 ‘파친코가 있다

넷플릭스에 ‘오징어게임’있다면 애플tv에는 ‘파친코’가 있다. 애플tv 오리지널 드라마 ‘파친코’는 일제 강점기 일본으로 이주했던 선자네 4대에 걸친 삶을 다룬다. 일제식민지, 간도대지진, 광복, 한국전쟁 등 굵직한 현대사를 지나는 동안 한인 이민자들은 차별과 멸시, 정체성혼란, 가난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원작은 재미교포 이민진이 2017년 쓴 동명 소설이다. 영어로 쓴 이 소설은 발간과 함께 베스트셀러가 됐고, 국내에서는 한글로 번역돼 출판됐다. 그리고 애플tv를 통해 ‘미드’로 재탄생됐다.

재일동포들의 삶은 쉽지 않았다. 재일동포들은 조국의 말과 글, 풍습, 먹거리를 지키려했고, 그럴 수록 일본사회의 차별과 냉대, 멸시는 심해졌다. 학교폭력과 따돌림을 당하기 일쑤였고, 직장잡기도 어려웠다. “일본 사람들은 우리를 바퀴벌레라고 불렀지. 땅속에 다시 처박아야 한다며”. 드라마속 노부인은 과거를 회상하며 분노한다. 재일교포가 파친코를 많이 운영한 것은 정상적인 직장을 잡을 수 없었던 차별의 결과이기도 했다. 드라마 속 선자의 두아들, 노아와 모자수도 결국 파친코에서 일한다. 와세다를 나왔거나 중도에 공부를포기했거나 차이가 없었다.

솔로몬이 톰을 찾은 이유는

아베를 일대일로 대적할 수 없던 솔로몬은 시슬리 은행의 상관이었던 톰을 찾는다. 함께 협력해 아배를 파산시키자는 것이다. 깜짝 놀라며 손사래치는 톰에게 솔로몬이 말한다.

“내년 이맘 때 미국에 있을 수 있다면 어때요? 이 회사를 나와서 다음 일을 시작할 충분한 자금도 마련하고. 톰이 건재다는 걸 세상에 보여줄 수 있다면요?”

미국 본사에서 희생양이 돼 도쿄로 유배당했다고 생각하는 톰의 귀가 솔깃해진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솔로몬이 또 한마디를 던진다. “나 그럴 수 있어요. 물론 조건이 따르지만요”

자료=애플 tv

자료=애플 tv

솔로몬은 아베가 호텔 재개발을 추진하는 땅에 유골이 묻혀 있을 수 있다는 정보를 갖고 있다. 이런 땅은 재개발이 어렵다. 솔로몬은 아베가 시슬리은행으로부터 거액을 빌려 재개발지역의 단독주택을 매입하도록 한 뒤, 소문을 퍼트려 호텔 재개발을 막을 심산이다. 시간이 흐를 수록 아베는 자금압박을 받게 되고 이때 시슬리 은행 임원인 톰이 나서 상환을 독촉하면 아베를 파산시킬 수 있다는 게 솔로몬의 전략이었다.

유신(有信)천국, 불신(不信)지옥

솔로몬과 톰의 협력은 게임이론 중 ‘신뢰게임(Trust Game)으로 설명할 수 있다. 신뢰게임은 한 쪽이 다른 쪽에게 신뢰를 보내고, 그 신뢰가 상대를 보답할 지 여부에 따라 양측의 결과가 달라지는 상황을 다룬다.

솔로몬은 먼저 신뢰를 보내는 사람이다. 행위자가 A가 된다. 솔로몬은 자신의 생각이 톰을 통해 새어나갈 경우 큰 위험을 빠질 수 있지만, 이를 감수하고 톰과 협력하기로 한다.

만약 톰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솔로몬은 톰에게 제안을 하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현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면 아베에게 복수할 수 없고, 돈을 벌 수도 없어 재기하기 어려워 진다. 톰을 신뢰해야만 더 큰목표를 추구할 수 있다.

솔로몬의 신뢰에 응답하는 사람은 톰이다. 행위자 B다. 톰이 솔로몬의 신뢰에 협력하지 않고 솔로몬의 계획을 아베에게 흘려 최대 이득을 취할 수 있다. 즉 톰은 큰 손인 아베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만약 솔로몬의 신뢰에 협력한다면 자신과 솔로몬, 두사람이 함께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솔로몬은 아베를 파산시키고, 톰은 큰 돈을 갖고 미국으로 돌아가 가족과 함께 있을 수 있다.

신뢰게임에서는 두 사람이 서로 신뢰해 협력하는 것이 양측이 함께 큰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이다. 하지만 신뢰를 준 사람을 배신했을 때 받는 유인도 크기 떄문에 배신을 당할 리스크도 크다.

자료=yes24

소설 ‘파친코’ 원작

자료=yes24

신뢰게임을 표로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다.

A가 신뢰하고 B도 협력하면 양측은 각각 5의 이득을 얻는다. 신뢰와 협력의 결과 양측 모두 높은 수준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

A가 신뢰하고 B가 협력하지 않으면 A는 모든 걸 잃고(0), B는 최대 이득(6)을 얻는다.

A가 신뢰하지 않는다면 B가 협력하거나 협력하지 않거나 양측은 각각 2의 이득 얻는데 그친다.

제공=챗GPT4.o

제공=챗GPT4.o

에어비앤비, 우버, 당근마켓을 관통하는 게임이론은?

신뢰게임은 공유경제 플랫폼에서 중요한 게임이론이다. 에어비앤비나 우버는 호스트와 게스트, 운전자와 승객간 신뢰가 있어야 양측 모두 큰 보답을 받을 수 있다. 당근마켓 거래도 마찬가지다. 판매자가 제대로된 물건을 올렸을 것이라는 신뢰가 있어야 판매자와 구매자, 양측 모두 윈윈이 가능하다. 크라우딩 펀드도 신뢰게임으로 설명할 수 있다. 향후 적절히 투자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펀딩 참여가 가능하다. 구매자와 판매자간 신뢰가 없다면 공유숙박도 중고거래도, 크라우드 펀딩도 불가능하다.

아베는 마침내 단독주택을 매입하는데 성공한다. 무려 14억엔을 줬다. 하지만 땅밑에 유골이 묻혀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개발이 중단된다. 톰은 계획했던 데로 아베에게 대출금 회수를 압박한다. 아베가 대출금을 은행에 내지 못한다면 땅은 시슬리 은행에 넘어가고 그는 파산한다.

그런데 예기치 않게 솔로몬의 연인인 나오미가 “우량고객인 아베에게 기회를 줘야한다”며 대출금 회수를 극구반대한다. 당황한 톰은 솔로몬에게 “무슨 꿍꿍이냐”며 강력히 항의한다. 솔로몬은 과연 톰을 속였던 것일까. 연인과 사업, 두 사이에서 솔로몬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많이 본 기사

이런 기사 어떠세요?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