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의 원인을 찾기 위한 정부 조사가 본격화하고 있지만 아직 뚜렷한 원인 규명은 되지 않은 채 다양한 추측들이 쏟아지면서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가장 직접적인 해답은 기체에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경향신문이 30일 항공 관련 전문가들에게 물은 결과, 이번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선 먼저 기체 자체에 대한 분석이 완벽히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최인찬 신라대 항공운항학과 교수, 안영태 극동대 항공운항학과 교수, 김규왕 한서대 비행교육원장, 이근영 국립한국교통대 항공운항학과장 등 전문가들은 그 중에서도 4가지 부분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엔진 외부 충돌의 영향, 유압계 작동 여부, 역추진장치 등 제동을 위한 상황들, 블랙박스 분석 결과 등이다.
①엔진 외부 충돌의 흔적 있나
지난 29일 오전 8시54분 사고가 난 제주항공 여객기는 관제탑에 조류 충돌로 인한 비상 선언(메이데이)을 전했다. 조류 충돌은 항공기 엔진 손상 유형 중 대표적인 외부 이물질에 의한 손상(FOD·Foreign Object Damage)으로 꼽힌다. 내부 물품 탈락으로 인한 손상(IOD·Internal Object Damage)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IOD는 항공기 내부 볼트, 나사 등이 풀리면서 이탈해 생기는 사고다.
전문가들은 가장 먼저 FOD가 있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사고에선 엔진 쪽에서 화염이 나오고 ‘뻥뻥’하는 소음을 들었다는 목격자들의 증언이 나왔다. 이 정황만 보면 조류 충돌 가능성이 크다. 이근영 학과장은 “조류 충돌 이후에는 새 뼈 등이 항공기 안쪽에 빨려 들어가면서 엔진을 훼손하고, 손상된 부품으로 2차 손상이 일어나면서 정상적인 공기 흐름이 불가능해진다”며 “공기 흐름이 막혔다 뚫렸다 하면서 ‘뻥뻥’하는 공기 흐름의 충격파가 발생하는 게 대표적 현상”이라고 말했다. 조류충돌 FOD가 이번 사고의 가장 직접적인 1차 원인으로 지목되는 상황에서 향후 조사에선 이 충돌로 정확히 어떤 일이 항공기 안팎에서 벌어졌는지를 추적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②유압계 작동했나
비행기의 각 부품을 움직이게 하는 유압계의 손상 여부를 봐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사고 당시 ‘랜딩기어(항공기 바퀴)’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는데, 이 때문에 유압계 손상이 있었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부품 파손으로 유압액이 유실되거나, 엔진 동력으로 작동하는 유압계가 엔진 파손으로 작동하지 않아 랜딩기어도 움직이지 않았을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대표적인 감속장치인 고양력장치(날개 뒷부분을 아래로 내려 면적을 늘리는 장치)와 스피드 브레이크(날개 위편에서 판이 올라와 저항을 만들어 속도를 줄이는 장치)도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최인찬 교수는 “확률이 높지는 않지만 조류 충돌로 엔진이 부서지면서 랜딩기어를 오르내리는 라인을 파손시켰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엔진을 동력으로 하는 유압계는 양쪽 날개 각 1개씩 총 2개가 있고, 둘 중 하나만 정상적으로 작동해도 랜딩기어는 작동하게 돼 있다. 양쪽 엔진이 모두 파손된다고 하더라도 예비용 유압 시스템도 있다. 완전히 파손되기는 어려운 구조다.
여객기가 땅에 닿는 모습을 보면 한쪽으로 완전히 치우친 상태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은 유압계 기능이 상실되지 않았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이 학과장은 “비행기의 균형을 맞추는 기능도 유압계가 작동해야 한다”며 “최소한의 시스템은 작동된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③역추진장치 등 제동 위한 조치는?
이번 사고는 제동만 제대로 됐어도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가 많다. 랜딩기어가 작동하지 않았어도 일단 동체로 지면에 착륙하는 데는 성공했기 때문에 제동거리가 확보되고 제동속도만 잡았다면 사고가 크지 않았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사고 영상에 나타난 엔진 모습을 보고 ‘역추진장치(Thrust Reverser)’가 기능했다고 추정하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속도가 줄지는 않아 이 역시 제대로 기능을 한 것으로 보기는 힘들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학과장은 “랜딩기어가 작동하지 않은 상태에서 역추진장치가 작동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어렵다”며 “엔진이 땅에 닿으면서 파손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감속장치 기능과 함께, 어느 지점에서 비행기가 땅과 마찰하기 시작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고와 같이 동체착륙을 하면 제동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땅과의 마찰이다. 하지만 국토교통부의 이날 브리핑에 따르면 사고 여객기는 활주로 시작점을 1200m나 지나서 떨어졌고, 1600m를 달려 콘크리트 외벽에 부딪혀 폭발했다. 김 원장은 “랜딩기어가 기능하지 않으면서 제동거리 확보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도 “속력이 충분히 줄 수 있는 거리가 확보되지 않은 곳에 착지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④결국 ‘블랙박스’가 해답 줄 듯
결국 기체와 관련된 해답은 비행기에서 블랙박스 기능을 하는 비행자료기록장치(FDR)와 조종실음성기록장치(CVR) 기록 검증을 통해 나올 것으로 보인다. FDR에는 고도, 방향, 조종사의 조작, 엔진의 출력 등 1000여개의 지표가 기록된다.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사고 당시를 재현할 수도 있다. CVR에는 관제사와의 교신, 기장과 부기장이 소통하는 내용, 조종석 내 소음 등이 기록된다. 랜딩기어 등 정비가 제대로 돼 있는지 문제 등도 블랙박스를 통해 파악될 수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기체 관련 사안뿐 아니라 당시 외부상황 전반 역시 살펴봐야 한다고도 했다. 전문가들은 “한가지 원인에 매몰되지 않고 총체적으로 접근해야 사건의 본질에 가깝게 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