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친형인 고 이한빛 PD가 방송업계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며 세상을 떠난 후, 업계 노동환경의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하지만 이후에도 과로사를 비롯한 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지난 8월에는 유명 예능 프로그램의 연출자가 야근 후 심야 택시를 타고 귀가하다 안타깝게 목숨을 잃는 비극이 발생했다. 단순 교통사고로 볼 수도 있지만, 교통량 대비 사고와 사망 비율이 심야 시간대에 압도적으로 높다는 점, 자정 이후 퇴근이 일상화된 업무환경을 고려하면 단순히 개인의 불운으로 치부하기 어렵다. 이는 시스템의 문제를 방치한 결과로, 업계의 누구든 책임을 회피할 수 없는 구조적 과제다.
지난해마저 대형 참사를 겪으며 한 해를 마무리하게 되었다. 제주항공 참사로 179명의 생명을 잃은 충격은 온 국민에게 깊은 슬픔을 안겼다. “잊지 않겠다,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음에도 참사는 또다시 되풀이됐다. 정부는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했지만, 이태원 참사 때 처음 등장해 정쟁의 심화를 비롯해 사회적 추모, 유가족 보호,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이 부정당했던 당시 기억이 떠오르는 건 우연이 아니다.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을 갖춘 사회라면, 무엇보다 유가족 보호와 재발 방지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내란범 대통령을 지키려는 모습에 비하면 성의조차 없어 보인다.
‘우연한 사고’란 존재하지 않는다. 일부는 통제할 수 없는 요소에서 비롯될 수 있지만, 다수의 원인은 예측 가능한 위험을 외면하거나 방치한 결과다. 해외 사례, 다른 공항 및 항공기의 안전 수준과 비교하며 정당화하려는 시도는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과도한 이윤 추구, 고강도 노동과 안전 인력 부족, 위험한 구조물 설계 등 참사와 관련된 시스템과 제도 전반을 면밀히 돌아봐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단순히 잘못이 제일 심각한 사람을 찾아내는 데 급급하기보다 재발 방지를 위한 각자의 역할을 적극 모색하는 분위기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2016년, 고 이한빛 PD의 비극을 밝히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직접적인 가해자 엄벌보다는, 사람을 지키기 위한 기업과 정부의 역할을 찾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는 반복되는 슬픔을 막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이번 참사가 발생한 지 1주일도 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여전히 미디어의 자극적 보도, 유가족의 신상 추적 및 비난 방치, 공공기관의 책임 회피와 같은 우려스러운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피해자와 유가족의 고통을 가중시킬 뿐 아니라 사회적 신뢰를 훼손하는 것이다.
수년 주기로 반복되는 참사의 고리를 이제라도 끊어야 한다. 이를 위해 각자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 정부는 정상적인 역할을 하루빨리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국가 차원에서 희생자를 진정으로 애도하며,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는 최소한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