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령을 넘어(1)-⑴

농부가 농촌을 떠난다

2025.01.07 06:01 입력 2025.01.23 12:44 수정

농촌은 초고령화, 기후변화 등 복합 위기를 겪는다. 농사지어 수익을 내기 힘들다. 농민 김영우씨가 지난해 11월3일 전북 익산 오산면 들녘에서 가을걷이를 하고 있다.  | 서성일 선임기자 이미지 크게 보기

농촌은 초고령화, 기후변화 등 복합 위기를 겪는다. 농사지어 수익을 내기 힘들다. 농민 김영우씨가 지난해 11월3일 전북 익산 오산면 들녘에서 가을걷이를 하고 있다. | 서성일 선임기자

지난해 가을, 전남 신안 농민들은 수확한 벼를 농협에 40㎏당 4만9000원(벼 3등급)~5만5000원(1등급)에 팔았다. 전국쌀생산자협회가 광주·전남 지역의 콤바인·트랙터·이앙기·거름·제초제·임차 비용 등을 계산한 생산비가 40㎏당 5만2386원. 쌀 팔아 거의 수익을 내지 못한 셈이다. 대농들은 농사 면적만큼 주는 직불금으로 먹고살고, 소농들은 밭농사를 같이하거나 농사 아닌 다른 일로 생계를 유지한다.

전남만의 문제가 아니다. 6일 농림축산식품부 자료를 보면, 지난해 수확기(10~12월) 전국 산지 벼(1등급) 평균 가격은 40㎏당 6만3510원으로, 전년 대비 6610원 떨어졌다. 이 금액을 백미 기준으로 환산하면 쌀 20㎏ 한 포대에 4만6175원이 나온다. 한 공기(쌀 100g)에 230원꼴이다.

농부가 농촌을 떠난다 [남태령을 넘어①-⑴]

쌀 가격이 한 공기 300원도 안 되는 건 쌀 생산량도 줄지만, 수요는 더 큰 폭으로 감소했기 때문이다. 매년 중국·미국·베트남·태국·호주에서 쌀 40만8700t을 의무적으로 들여와야 하는 것도 쌀값 하락을 부추긴다.

와중에 생산비는 매년 오른다. 지난해는 고온과 폭우, 벼멸구 피해까지 봤다. 신안의 한 정미소는 “보통 1마지기(200평·661㎡)에서 벼 가마(40㎏) 10개는 나와야 하는데 이번에는 다들 8.5개 정도 나왔다”고 했다. 쌀값은 내려가고, 기후 피해는 커지며, 젊은 농부들은 농촌을 떠난다. 신안에서 만난 청년 농부 박시만씨(36)가 말했다. “쌀 팔면서 엄마한테 짜증을 냈죠. 다시는 쌀농사 안 짓는다고. 너무 허망하니까… 수지타산이 안 맞아요. 동생한테도 도시 가서 살라고 얘기해요. 비전이 없잖아요.”

농민 김영우씨가 지난해 11월3일 전북 익산 오산면 들녘에서 가을걷이를 하고 있다. | 서성일 선임기자 이미지 크게 보기

농민 김영우씨가 지난해 11월3일 전북 익산 오산면 들녘에서 가을걷이를 하고 있다. | 서성일 선임기자

농민 김영우씨가 지난해 11월3일 저녁 전북 익산 오산면 들녘에서 가을걷이를 하고 있다. | 서성일 선임기자 이미지 크게 보기

농민 김영우씨가 지난해 11월3일 저녁 전북 익산 오산면 들녘에서 가을걷이를 하고 있다. | 서성일 선임기자

농민 김영우씨가 지난해 11월3일 저녁 전북 익산 오산면 들녘에서 콤바인으로 수확한 쌀을 곡물이동차량에 쏟아붓고 있다. | 서성일 선임기자 이미지 크게 보기

농민 김영우씨가 지난해 11월3일 저녁 전북 익산 오산면 들녘에서 콤바인으로 수확한 쌀을 곡물이동차량에 쏟아붓고 있다. | 서성일 선임기자

농가가 농사로 얻은 농업소득(순이익)은 2023년 1114만원, 1995년 1047만원이다. 30여년간 67만원 올랐다. 소득이 줄면서 농업을 포기하고 농촌을 떠나는 농민이 늘어난다. 먹거리 해외 의존도는 높아진다. 밀 자급률은 1.3%, 옥수수 4.3%, 콩 28.6%다. 수입 물량이 없다면 구하기 힘든 작물이다. 그간 식량 위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남아도는 쌀’ 덕분이다.

쌀도 10년 뒤면 생산량과 소비량이 역전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지난해 펴낸 ‘농업 전망’에서 2025~2034년 쌀 생산량은 재배면적 축소로 359만t에서 327만t으로, 같은 기간 소비량은 347만t에서 327만t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농사짓겠다는 이들이 사라지고 농지가 산업단지 등으로 전용되면, 10년 뒤에는 쌀도 상당 부분 해외시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농부가 농촌을 떠난다 [남태령을 넘어①-⑴]

1995년 농산물 시장 개방 이후 30년간 한국 농업 해법이라고 생각했던 기계화·규모화는 더는 ‘정답’이 아니다. 모든 농사에 일률적으로 적용하기 어려운 데다 기후위기 시대에도 맞지 않는다. 대규모 단작으로 병충해 피해가 커졌다. 더 많은 에너지와 화학 비료, 농약 등이 투입된다. 탄소 배출도 늘었다. 축산은 규모화한 이후 구제역 등 가축 전염병 리스크가 배가됐다. 코로나19 기간에는 사람 구하기도 힘들었다. 농촌과 농업의 지속 가능성에 ‘경고등’이 켜졌다.

농민들은 먹거리 위기 해결을 촉구하려 지난달 22일 서울 남태령을 넘었다. 이 위기를 도시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농촌을 고향으로 두거나, 친인척이 농민인 이들도 찾아보기 힘들다. 아는 농부가 있으면 농촌과 먹거리 문제가 다르게 보인다. 경향신문은 농촌을 지키고 먹거리를 만드는 이들 이야기를 8회에 걸쳐 다룬다. ‘남태령’을 넘어온 농촌의 사라진 30년에 관한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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