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이후 40년 가까이 평화적 정권교체를 반복하며 절차적 민주주의가 자리 잡았다고 여겨진 한국에서 어떻게 다시 쿠데타가 일어날 수 있었을까. 12·3 친위쿠데타는 민주주의 역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사건으로 정치학자들이 연구할 만한 과제이다. 한 달여 지켜본 입장에서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말하자면, 이번 사태는 법 제도와 정치 환경의 문제 이전에 망상에 사로잡힌 지도자 개인의 독특한 성격 탓이 크다.
김용현 공소장을 보면 윤석열은 평소 “우리 사회 곳곳에 암약하는 종북주사파” “노동계, 언론계, 이런 반국가세력” 척결이 필요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했고 부정선거론에 대한 확신도 보였다. 김용현 같은 측근들은 객관적 조언을 하기보다 맞장구를 쳤다. 극우 유튜버 외에도 일부 주류언론이 이 견해에 동조하며 ‘종북·반국가세력’ ‘부정선거’ 담론을 만든 것도 오판을 불렀을 것이다. 윤석열은 반대파와의 대화와 타협으로 갈등을 조정하기보다 ‘외부 위협’을 과장하며 검찰과 경찰, 정보기관 등 강권적 국가기구를 동원해 시민적 자유와 인권을 탄압했다. 집권여당은 대통령에 휘둘리며 이번 사태를 막는 데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자의적 법해석을 공유하던 검찰 등이 태세 전환을 했지만 윤석열은 아직 망상 속에 살고 있다.
우여곡절이 있어도 결국 윤석열은 대통령직에서 파면되고 중형이 선고될 것이다. 법치주의란 게 작동한다면 그게 필연적 귀결이다. 윤석열 사법처리가 가닥이 잡히면 제도와 환경 개선을 차차 논의해야 할 것이다.
민주화 열기 속에 만들어진 1987년 개정 헌법의 특징은 강력한 대통령 권력을 유지한 것이다. 5년 단임 임기 조항 정도가 대통령 권력을 제한하는 요소이다. 국회보다 대통령이 민중 권력의 대변자로서 권한을 효과적으로 행사할 것이라는 기대가 반영됐다. 노동계 등 사회의 특수 이익보다 국가나 사회 전체의 이익과 목표를 더 지향한 결과라는 게 정치학자 최장집(<어떤 민주주의인가>)의 해석이다. 그 골간은 박근혜 탄핵 후 집권한 문재인의 4년 연임 개헌안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시민들이 여전히 대통령의 강한 권력을 원한다는 게 문재인 청와대의 얘기였다. 하지만 최근 여론조사들을 보면 시민들의 생각은 대통령 권력 축소로 바뀌고 있는 것 같다.
개헌을 통해 대통령 권력을 제한한다 해도 근본적 문제는 남는다. 제도를 운용하는 사람의 문제이다. 내란 수괴 피의자가 여전히 관저에 숨어 지지자를 선동하고 여당 의원 40여명이 그 앞을 찾아가 응원하는 기막힌 상황이 웅변한다. 이 사람들이 ‘이상한’ 것은 맞지만, 그들과 지지자들을 모두 해외로 추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치인들이 반헌법적이고 뒤틀린 견해를 표출하면서도 일부의 열성적 지지를 받는 연원을 들여다봐야 한다. 그것은 양극단화된 정치 환경에서 최적화된 생존 방식이다. ‘나만 옳고 상대는 그르다’며 상대를 죽이기 위해 절제하지 않고 권한을 행사해온 여야 정치권에 책임이 있다.
분단체제에도 주목해야 한다. 김용현 공소장에는 군 지휘부가 계엄 직전 장병들에게 있지도 않은 “북한 도발 가능성” “대규모 탈북 징후”를 언급하며 비상대기를 지시한 사실이 적시돼 있다. 무인기 도발 등으로 국지전을 일으켜 계엄의 구실로 삼으려 했다는 외환죄(일반이적) 수사도 진행되고 있다. 북한의 무대응으로 내란 세력이 뜻을 이루지 못한 듯하지만, 위험한 상황이었다. 자유민주주의를 참칭한 ‘냉전 보수’의 위선적 실체가 드러났다. 문제는 남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로 있는 한 이런 음험한 시도가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핵무장한 북한과 국경을 마주하는 것은 불안하다. 하지만 북한이 핵무기를 쉽게 쓸 수 없는 여건이라는 점도 명백하다. 트럼프 미 행정부하에서도 그 여건을 유지하면서, 남북한의 상호 체제 인정과 무력충돌 방지 합의를 통해 ‘외부 위협’ 수준을 낮추는 데 주력해야 한다.
강조할 것은 한국이 쿠데타가 성공하기 어려운 사회가 됐다는 점이다. 장갑차와 총부리에 맞선 시민의 용기와 민주적 성숙함이 있었고, 결과적으로 군대와 경찰이 쿠데타 세력의 바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기성세대뿐만 아니라 이번 사태 후 광장에서 평화적으로 다양한 열망을 표출한 ‘민주주의 세대’가 또다시 후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12·3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 나아지느냐, 나빠지느냐는 지금 여기서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 지체된 내란 수괴 피의자 체포가 그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