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하나. 가족이 옹기종기 TV 앞으로 모이는 지난 연말의 어느 주말, MBC에서는 드라마 <무빙>(2023)이 방송됐다. 강풀의 동명 웹툰 원작인 20부작으로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디즈니플러스 최고 히트작이다. 지상파 방송사가 흔히 경쟁 관계로 알려진 OTT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그것도 주목도 높은 주말 밤 시간대에 고정 편성한 것이다.
장면 둘. 지난달 10일 토종 OTT 티빙에 ‘애플티비플러스(애플티비) 브랜드관’이 열렸다. 티빙 앱 안에서 <파친코>, <세브란스: 단절> 등 애플티비의 인기 오리지널 콘텐츠를 즐길 수 있게 됐다. 조건은 티빙의 프리미엄 요금제 가입이다.
방송·OTT 업계의 생존 전략이 달라지고 있다. 각자도생은 옛말, ‘적과의 동침’에도 적극적이다. 국내 OTT 산업이 올해로 10주년을 맞는 가운데 이러한 전략이 업계 지각변동으로 이어질 지 주목된다.
2025년 현재 방송·OTT 서비스의 전략은 ‘경계를 넘는 합종연횡’으로 요약된다. 지상파가 OTT에 콘텐츠를 제공하던 기존 방식을 뛰어넘는 손 잡기가 활발하다. 먼저 <무빙>의 사례가 그렇다. MBC는 그동안 <피지컬: 100>, <수사반장 1958> 등 자체 콘텐츠를 각각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에 제공해왔지만 반대의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협업의 목적은 분명하다. MBC는 검증된 품질의 콘텐츠를 선보일 수 있고, 디즈니플러스는 공개 2년이 넘어 신규 가입자 유입이 적은 인기작을 TV 시청자층에 보이면서 구독을 유도할 수 있다. 업계가 성숙기에 접어들어 신규 확장이 쉽지 않은 만큼 기존 IP의 생명력 연장이 하나의 방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지상파 TV 시청자와 디즈니플러스 구독자 간 교집합이 상대적으로 작다는 판단도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독자적으로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던 티빙과 애플티비의 협업 역시 이전에는 없던 형태다. 티빙은 2022년 파라마운트+ 브랜드관을 론칭하고 2년간 오리지널 콘텐츠를 독점 제공해왔다. 국내 콘텐츠 중심인 티빙이 파라마운트+의 색다른 콘텐츠를 제공하는 대신 파라마운트+는 티빙 플랫폼을 빌려 국내에 안착하는 전략이었다. 파라마운트+와 달리 애플티비는 이미 2021년 국내 서비스를 시작했다. 티빙이 애플티비 고품질 콘텐츠로 프리미엄 멤버십을 차별화 한다면, 애플티비는 토종 OTT 1위와 제휴로 영토를 넓히려는 시도로 분석된다.
이 같은 움직임은 해외 시장에서 먼저 활발하게 이뤄져왔다. 미국에선 1~2년 전부터 ‘번들(묶음) 상품’이 등장했다. 지난해 7월 출시된 디즈니플러스·훌루·맥스의 묶음 상품이 대표적이다. 별도 결제시 가격에서 35% 할인된 16.99달러로 서비스 3개를 한꺼번에 이용할 수 있다. 스트리밍 업계를 뛰어넘는 협업도 이뤄지고 있다. 파라마운트+는 미국 최대 유통 체인인 월마트+와의 번들 상품을 내놨다. 넷플릭스가 꾸준한 구독자 증가율을 보이며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상황에서 힘을 합쳐 시너지를 낸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경계를 넘는 손잡기는 넷플릭스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11월 넷플릭스와 네이버는 네이버플러스 멤버십 회원이 추가 비용 없이 5500원짜리 넷플릭스 광고요금제를 볼 수 있도록 했다. 지난달에는 SBS와 콘텐츠 공급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내년 1월부터 6년간 SBS의 신작 드라마·예능·교양 등을 넷플릭스에 공급하는 것으로, 또다른 토종 OTT 웨이브와 지상파 3사간 콘텐츠 독점 계약이 만료된 데 따른 변화다. 넷플릭스가 지상파 방송과 협업을 확대할 경우 나머지 서비스의 설 자리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특히 웨이브와 티빙이 합병을 통한 ‘체급 키우기’에 나서는 중이어서 넷플릭스의 협업 시도는 더욱 눈길을 끈다.
업계에서는 이런 합종연횡이 앞으로 더 활발해질 것으로 내다본다. 한 OTT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해외 플랫폼과 국내 플랫폼, 지상파 방송 등의 경계가 명확했지만 이제는 그 구분이 허물어지고 있고 이는 더 가속화할 것 같다”며 “독점보다 다양한 형식의 파트너십이 유효한 생존 전략으로 주목받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