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法癡), 법맹(法盲) 내란 우두머리 피의자

2025.01.09 21:14 입력 2025.01.09 21:19 수정

손바닥에 ‘王(왕)’자를 그렸을 때 알아차렸어야 했다. 그가 전제군주를 꿈꾸던 자였음을 말이다. 그랬으니 헌법적 요건과 절차를 지키지 않은 비상계엄이 비상대권이라는 해괴한 논리를 펴고 있다. 법치국가 헌법에 없는 비상대권이란 낡은 개념을 끄집어내 고도의 통치행위라고 사법부도 건드릴 수 없단다. 헌법이 보장한 국회 의결권을 봉쇄하고 헌법기관인 선거관리위원회를 장악하려고 시도한 것은 ‘짐이 곧 국가’였던 왕권 시대에나 있을 법한 일이다. 부정선거 음모론에 젖어 마뜩잖은 의회도 갈아엎으려 했다. 법관이 발부한 영장의 정당한 집행도 거부했다. 이렇게 입법부와 사법부를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다고 여기는 까닭은 누구에게라도 칼을 들이댈 수 있었던 검찰권력의 기억이 남아서 그런 것 같다. 공천권 개입쯤이야 짐이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었는지, 야당이 공천 개입 의혹을 제기했다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라고 했다고도 한다. 마치 초헌법적 전제군주처럼 모든 권력이 대통령에게서 나온다고 착각해야 할 수 있는 말이다.

12·3 계엄 선포와 대국민 사과, 그리고 그 이후 보인 그의 말과 태도에 법치(法治)는 온데간데없고 그가 지독한 법치(法癡)라는 사실만 증명했다. 비상계엄을 정당한 목적을 가지고 불가피한 최후 수단으로 발동한 것도 아니다. 야당 겁주기라고 스스로 위헌성을 자백했다. 계엄법에 따르면 특별 조치는 군사상 필요한 때에 할 수 있는데도 그가 검토했다는 포고령은 광범위하게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고 있다. 계엄 시에는 현행범이 아니면 국회의원을 체포·구금할 수 없는데도 야당 대표 등 국회의원을 체포하기 위해 군병력을 투입했다고 한다. 이처럼 헌법과 계엄법을 위반한 계엄선포와 포고령만 보더라도 대통령의 헌법수호 책무 위반은 절대 가볍지 않다. 그것이 내란 행위에 해당하는지 형법적으로 살펴보지 않아도 중대한 헌법위반임은 명백하다. 한 번 의무를 위반하면 그 후에 의무를 충실히 이행한다고 해도 그 의무 위반이 없던 일이 될 수 없다. 그럴진대 아직도 권력에 취해, 평온을 되찾기 위해 작동하고 있는 민주주의와 사법 시스템을 부정하면서, 오히려 극우 지지자와 유튜버를 부추겨 내전을 선동하는 그는 헌법수호 의지조차 없는 자임이 드러났다.

헌법수호 책무 위반의 또 한 장면은 체포영장 집행 무력화다. 피의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발부된 영장의 집행을 거부할 수 없다. 집행에 따르되 이의가 있다면 법에 따른 이의제기를 하면 된다. 체포가 부적합하다면 체포적부심도 청구할 수 있다. 수사할 때 단 한 번도 영장 판사가 발부한 영장이 부적법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을 전직 검사인 그가 피의자가 되어 영장의 부적법성을 따진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법맹(法盲)도 그런 법맹이 없다. 한번 통 크게 헌법을 무시해봐서 그런지 법이 눈에 들어오질 않는 모양이다.

2025년 새해가 밝았지만, 희망의 언어는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내란은 진행 중이다. ‘절대 국민 앞에 숨지 않겠다’던 호언장담이 무색하고, 집무실 책상에 전시한 ‘모든 건 내 책임’(the BUCK STOPS here!)이란 명패도 간곳없다. 경호처 완력과 극우 유튜버의 선동, 그리고 두 겹 세 겹의 철조망이 철옹성처럼 보인다. 사법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어서 다행이다. 잠시 짓밟혔던 헌법이 힘을 발휘할 것이다. 빨라진 헌법재판소 재판정의 시계가 퇴행했던 민주주의를 되돌려 놓을 것이다. 이미 경험했듯 헌법은 아무리 무소불위 권력자라도 봐주지를 않는다. 아직 한겨울이지만 겨울 가면 봄이 오듯이 정의도 자연법칙처럼 슬며시 다가오리라는 희망으로 버티고 있다. 다만 지연된 정의가 아니기를 기대하면서. 온 국민이 염원하는 2025년의 봄은 공평의 저울에 놓여 있는 위정자를 정의의 칼로 단죄하는 그날이 될 것이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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