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지는 한파와 장시간 계속되는 야외활동으로 추위에 민감한 항문 혈관 조직에 무리가 가면 흔히 치질이라 부르는 항문질환이 발병할 위험이 높아진다. 특히 치질 중에서 가장 많은 환자들이 고생하는 치핵은 방치했다간 수술이 필요할 정도로 진행되기도 쉬우므로 예방과 관리가 중요하다.
치질은 치핵·치루·치열 등을 아울러 부르는 용어다. 치질 환자 중 약 70%를 차지할 정도로 가장 흔한 치핵은 배변의 충격을 완화하는 혈관 조직에 문제가 생겨 발병하는 대표적인 항문질환이다. 항문관 내에는 여러 혈관들이 그물망처럼 엮여서 뭉쳐 있는데, 대변을 내보낼 때 완충 작용을 하는 이곳에 반복해서 힘을 주는 배변 습관 때문에 다량의 혈액이 고이면서 이상이 생긴다.
이렇게 혈관이 커지고 늘어난 덩어리는 위치가 항문 안쪽인지 바깥인지에 따라 외치핵과 내치핵으로 나뉜다. 외치핵은 항문 밖 피부로 덮인 부위에서 발생하며 통증이 심하고 피부가 늘어진다. 내치핵은 진행된 정도에 따라 가끔 출혈이 동반되는 1도 치핵, 배변 시 항문 밖으로 내려왔다가 이후 원래의 위치로 돌아가는 2도 치핵, 빠져나온 뒤 안으로 밀어 넣어야 들어가는 3도 치핵이 있으며, 밀어 넣어도 들어가지 않을 땐 4도 치핵으로 분류한다.
치핵처럼 항문에 생긴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치열과 치루는 증상과 원인이 다르다. 치열은 딱딱한 변을 배변할 때 항문 입구가 찢어지면서 발생한다. 배변을 할 때 날카롭고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이 있으며 배변 후 휴지에 밝은 선홍색의 피가 묻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치루는 항문 주변의 만성적인 농양이나 염증으로 시작해 고름이 배출되고 난 뒤 항문선의 안쪽과 항문 바깥쪽 피부 사이에 터널 같은 통로가 만들어지면서 이곳으로 분비물이 나오는 질환이다. 피부 쪽으로 난 구멍을 통해 지속적으로 고름 같은 분비물이 속옷에 묻어 나오며 항문 주위의 피부 자극과 불편감, 통증을 동반하기도 한다.
치질 환자는 특히 겨울에 급증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를 보면 지난 동절기엔 2023년 12월부터 환자 수가 급증하기 시작해 지난해 1월 정점을 찍고 2~3월까지 평균을 웃도는 환자 수가 유지되다 봄철로 접어들며 점차 줄어드는 추세를 보였다. 이처럼 겨울에 치질 환자가 늘어나는 배경으로는 항문 혈관이 추위에 민감해 수축되면서 생기는 혈액순환장애를 비롯해, 스키나 눈썰매 등을 즐기며 차가운 눈밭 위에 앉거나 구부린 자세를 오래 유지하는 경우, 연말 늘어나는 술자리에서의 음주 이후 배변활동에 이상이 생기는 현상 등을 꼽을 수 있다.
가벼운 정도의 치핵과 치열은 수술 없이 보존적 요법으로도 완화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치루와 3~4도까지 진행된 치핵은 원칙적으로 수술 치료를 받아야 한다. 항문질환은 수술을 해도 재발하는 비율이 비교적 높은 편이어서 재발 방지와 예방을 위해 일상생활에서 기본수칙을 지키는 것이 좋다. 심한 변비가 생기지 않도록 섬유질이 많은 음식을 섭취하고 화장실에 오래 앉아있는 습관을 개선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고윤송 세란병원 복부센터장은 “항문질환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고 흔히 발생하지만 증상이 심해지기 전까지 병원 방문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며 “경미한 증상이라도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증상의 악화를 막을 수 있으며 치료 후에도 관리를 잘해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