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의 화법이 ‘내란’에서 ‘내전’으로 바뀌었다. 윤석열 변호인단이 ‘대통령 체포를 강행하면 내전으로 갈 수 있다’고 국민을 위협한 것이다. 게다가 이것은 “대통령과 변호인들 사이에 흐르는 기류”라고 직접 확인해 줬다. ‘전쟁’이란 단어를 그렇게 쉽게 입에 담을 수 있는지 귀를 의심했다. 지난해 미국에서 대선을 앞두고 개봉돼 화제가 된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가 우리나라에서 현실화하는 불안에 휩싸였다.
이 영화는 <엑스 마키나>와 <서던 리치: 소멸의 땅>을 통해 공포와 환상을 절묘히 결합한 알렉스 가랜드 감독의 또 다른 명작이다. 무엇보다 섬뜩한 건 실전의 공포로 묘사된 대통령발 내전이 한국 상황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한국 개봉일자가 대통령 체포영장이 발부된 12월31일이란 것도 심상찮은 우연이다.
공포 포인트는 영화의 4가지 특징과 관련된다. 첫째, 장면과 배경음악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 둘째, 배경지식을 제공하지 않는 것, 셋째, 무장한 사람의 소속이나 정체성을 쉽게 알 수 없다는 것, 넷째, 자신의 죽음은 두려워하면서 다른 사람의 죽음에는 무감각해진 듯한 카메라 시각이다.
총격전 와중에도 흥겨운 힙합으로 깔린 배경음악이 불쾌감을 준다. 누군가는 학살을 아무 감정 없이 저지르거나 심지어 즐기기까지 한다는 것을 비유한다. 대통령이란 직함을 가진 자와 그 변호인들이 ‘내전’을 함부로 입에 올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상황 설명은 대부분 뉴스나 대사로 처리된다. 하지만 대통령발 내전이란 사실과 대통령 캐릭터는 분명히 한다. 대통령은 마지막까지 숨어서 연방군이 승리하고 있다고 거짓방송을 하며 지지자들을 동원한다. 용산 관저에 숨은 윤석열 대통령의 행태가 오버랩되지 않을 수 없다. 베테랑 기자 새미는 문제의 미국 대통령과 유사한 독재자로 히틀러와 무솔리니, 차우셰스쿠를 소환한다. 특히 파시즘적 만행과 비참한 종말이 유사하다.
대통령은 경호원들과 대변인이 모두 사살될 때까지 백악관 깊숙이 숨어 있다가 질질 끌려 나온다. 보도 기자 조엘이 기사에 뭐라고 쓰면 되겠냐고 묻자, 죽이지 말아 달라고 사정한다. 기세등등하던 대통령의 마지막 말로선 분노를 유발하지만 누구처럼 참 찌질하다.
무장한 사람들의 정체를 쉽게 알 수 없다는 건 더욱 공포스럽다. 붉은 선글라스에 군복 입은 남자가 주인공 일행을 위협하며 ‘어느 쪽 미국인이냐’고 묻는다. 대통령 쪽 자경단이나 낙오병일 가능성이 크지만, 총을 겨눈 그의 정체는 명확히 알 수 없다. 게다가 홍콩에서 왔다고 대답하는 기자를 두말없이 총으로 쏜다. 혼란한 시기에 인종차별과 집단적 혐오까지 난무하는 것이다. 플레먼스의 압도적 연기로 주목받은 이 장면은 김민전 의원이 사달을 일으킨 ‘백골단’을 떠올리게 한다. 붉은 선글라스 위에 하얀 헬멧이 번쩍이는 착각이 든다.
‘백골단’은 ‘반공청년단’의 예하 조직이라고 했다. 작명부터 섬찟하다. ‘반공청년단’은 이승만 정권의 관변 테러 조직인 ‘대한반공청년단’과 유사하며, ‘백골단’은 강경대 열사를 쇠파이프로 살해한 전두환 정권 시기 사복경찰 체포조다. 정말 자발적 청년 조직일까. 비상계엄 충격으로 기억을 상실한 것인가. 물론 ‘백골단’은 윤석열 수호를 밝혔다는 점에서 영화의 붉은 선글라스 남자와 다르다. 하지만 배후가 궁금하다. 히틀러의 친위대나 무솔리니의 검은셔츠단의 전조라는 주장도 있다.
자신의 죽음은 두려워하면서 다른 사람의 죽음에는 무감각해진 듯한 영화의 시각은 이질적 공포감을 자아낸다. 내전으로 사회가 혼란해지면 죽고 죽이는 악순환에 빠져들 수 있다. 이를 막아내야 할 정치가 오히려 그 원인이 된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하지만 저 혼자 살겠다고 국민과 부하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대통령과 달리, 죽음을 무릅쓰고 동료를 지키려는 베테랑 기자 새미와 중년 기자 리와 조엘, 20대의 종군기자 지망생 제시의 모습은 지옥의 공포 속에서도 희망의 빛을 선사한다.
역사를 보더라도 정치·사회적 혼란은 권력을 가진 자가 그 권력을 강화하거나 불법적으로 유지하려 할 때 주로 발생한다. 잘못된 시간, 잘못된 장소에 있어서 불행해진 사람들보다, 중요한 시간, 권력 있는 자리에 잘못된 사람이 앉아 불행해진 역사와 민주주의 문제가 훨씬 더 심각함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노자 <도덕경>에 따르면, 군사가 머문 곳에는 가시덤불이 생기고, 대군이 지나간 후에는 반드시 흉년이 든다. 인권과 민주주의에 가시덤불이 생기고 흉년이 든다는 얘기로 옮길 수 있다. 농담으로라도 ‘전쟁’을 입에 올려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