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우린 제6공화국에서 벌어질 두 번째 조기 대선을 앞두고 있다. 현직 대통령의 친위 쿠데타라는 반헌법적 행위를 처벌하지 않고 견딜 민주공화국이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며칠 후 윤석열이 관저를 떠날지, 몇달 후 그가 파면될지 주술사 점치듯 무당 굿하듯 기다리지 말자. 차분히 또박또박 절차를 밟아 유린당한 헌정질서를 회복하면서 탄핵 이후의 질서는 어떠해야 할지 생각해보자.
박근혜 탄핵 이후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과거와 달리 대통령직 인수위 없이 출범했다는 이유로 정권 초반의 정책적 모호함을 정당화할 수 있었다. 문 정부는 적폐청산과 균형외교로 시민적 지지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건만, 정작 야당 시절부터 준비해온 개혁정책들을 입법의제로 제시하는 데 게을렀다. 2016년 이후 대선, 지선, 총선에서 연승했던 민주당은 개혁의제를 주도하지 못했고, 심지어 촛불정신을 반영한다던 정부의 개헌안마저 외면받고 말았다. 이른바 ‘개혁적’이라던 정부는 제도화라는 개혁성과도 없이 속절없이, 위태롭게 정권을 내주고 말았다.
이대로 가면 정책적으로 뭐가 달라질지 염려스럽다. 누가 언제 집권한다 해도 걱정된다. 분야별 개혁안을 의제로 내세우고, 개혁의 우선순위를 토론하고, 의제별로 동원 가능한 자원과 비용요인을 검토하는 모습 자체가 실종된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말 많은 개헌안부터 외교안보정책, 의료개혁정책, 부동산정책, 대학정책에 이르기까지 뭐 하나 차분하게 의제를 꺼내놓고 정치인과 정책 전문가들이 토론해서 합의하지 못한다. 다른 정책 분야는 몰라도 언론매체 분야를 보면 알 수 있다. 이대로 가면 이미 망한 거나 다름없다.
확실하게 가라앉기 전, 다시 소리쳐 본다. 다른 분야 개혁 정책들도 각자 사정들이 있겠지만, 언론매체 분야의 의제들이야말로 오래된 구원과 상충하는 이해관계, 정파적 왜곡과 정무적 간섭으로 누더기 상태로 방치돼 있다. 이미 망한 공영방송 제도를 보라. 디지털 혁신에서 일탈해서 천덕꾸러기가 된 신문 산업을 보라. 성장이 멈춘 인터넷 플랫폼 매체를 보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방송통신심의 제도는 이미 기괴한 언론탄압의 무기로 전락했고, 역사성을 자랑해온 언론중재 제도마저 발언의 자유를 통제하는 진지로 만들려 한다.
언론매체 사안 중에서도 최악으로 치닫는 의제가 있다. 명예훼손죄와 모욕죄 개혁입법이다. 이 사안이 개혁의제에 속한다는 사실마저 잊은 자칭 개혁가들이 있다. 잊지 말자. 윤석열 정권에서 이뤄진 가장 간특한 종류의 언론탄압은 모두 명예훼손 형사처벌 조항을 남용한 검경의 압수수색으로 시작했다. 미디어오늘이 지난달 25일 보도했듯 뉴스타파부터 서울의소리까지, 언론사에 대해서나 시민에 대해서나, 윤 정권의 악행은 공직자 비리부패를 고발하는 시민 목소리를 ‘입틀막’하는 명예훼손죄를 남용한 형사고발로 유지됐다. 법원은 언론·시민 편을 들어 일관되게 무죄판결을 내리고 있지만, 이 사정을 들어 부패 정권이 제3자 형사고발, 경찰수사, 검사의 형사소추를 동원해 시민의 발언 자유를 폭넓게, 깊숙이 유린한 엄혹한 사태를 외면하면 안 된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와 모욕죄를 형법에서 폐지해야 한다. 허위사실 명예훼손죄에 적용하는 반의사불벌 규정을 개정해 친고죄로 개혁해야 한다. 정윤회 문건, 최순실 국정농단, 김건희 뇌물 등은 물론 역대 정권비리를 폭로한 사례들이 반복해 입증하고 있다. 권력의 부정부패를 폭로하고 규탄하는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일이야말로 우리 공화국의 위기를 가중해 왔다. 우리는 또한 제6공화국을 건설한 원동력과 그간 어처구니없는 헌정질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역량이 정치적 발언의 자유를 실천한 시민적 실천에 뿌리 뒀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이 뿌리 자체를 뽑으려는 반개혁 세력에 놀아나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