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내수 진작 위해 추경 마련을”
12·3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등 정치적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지난해 말 국내 소비가 뒷걸음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통 12월 말은 ‘연말 특수’로 소비가 늘지만 계엄 여파로 이례적으로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은 것이다. 계엄 사태 이전에도 소매판매액지수는 ‘카드대란’ 이후 21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으며, 자동차·가전, 의복, 식료품 등 모든 상품군에서 소비가 줄었다. 내수 부진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12일 통계청이 제공하는 속보성 데이터인 ‘나우캐스트 지표’를 보면, 지난해 12월 넷째 주(21∼27일) 신용카드 사용액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1.5% 줄었다. 연말인데도 소비가 줄어든 건 이례적인 일이다.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21년 이후 12월 넷째 주 신용카드 사용액이 감소한 적은 없다.
탄핵 정국이 본격화한 12월 둘째 주(7~13일) 신용카드 이용액도 전년 대비 3.1% 감소하며 소비 위축이 현실화했다. 셋째 주(14∼20일) 신용카드 사용액은 1년 전보다 2.8% 늘며 소폭 반등했지만, 넷째 주 들어 다시 뒷걸음쳤다.
나우캐스트 지표 중 신용카드 이용금액과 온라인 지출 결제금액은 신한카드 자료를 기초로 국내 소비 동향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는 지표다.
업종별로 보면 숙박서비스업이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12월 한 달간 숙박서비스 신용카드 평균 이용액은 전년 대비 10.3% 감소했다. 오락·스포츠 및 문화(-5.4%), 음식 및 음료 서비스(-3.7%) 분야 신용카드 평균 이용액도 줄었다. 12·3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정국으로 사람들이 연말 분위기를 내지 못하고 지갑을 닫은 탓에 타격이 컸다는 의미다.
온라인 지출 결제금액 역시 12월 넷째 주에는 0.3% 증가하는 데 그쳤다. 12월 첫째 주(11월30일∼12월6일)만 해도 10% 증가한 온라인 지출 결제금액은 둘째 주와 셋째 주에 각각 2.4%, 1.1% 줄었다.
12·3 비상계엄 이전부터 소비 침체의 골은 깊었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을 보면 지난해 1∼11월 소매판매액지수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2.1% 감소했다. 이는 2003년(-3.1%) 이후 같은 기간 기준으로 21년 만에 최대 하락폭이다. 2003년의 경우 ‘카드대란’으로 벌어진 소비 부진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하면, 최근이 더 심각하다.
특히 소비 ‘절벽’은 자동차·가전 등 내구재와 의복 등 준내구재, 음식료품 등 비내구재 등 모든 상품군에서 나타났다. 지난해 1∼11월 내구재 소비는 1년 전보다 2.8%, 준내구재는 3.7%, 비내구재는 1.3% 각각 줄었다. 2023년에 이어 2년째 모든 상품군에서 소비가 줄었다.
전문가들은 복잡한 정국에도 추가경정예산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주병기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 8일 국회에서 열린 ‘불확실성 시대, 한국 경제 위기 진단과 대안’ 간담회에서 “정부는 입법부와의 협의로 민생경제 회복과 내수 진작 대책을 마련하고 복잡한 정국 속에서도 추경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