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벌어진 무안국제공항 활주로 연장사업에 대해 2022년 환경 전문 정부기관이 “계획 단계에서 조류의 집단 서식지를 제외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의견은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고, 무안공항 활주로 연장사업은 올해 중 완료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조류 충돌 방지 대책이 공항 인근 조류 퇴치에서 한발 더 나아가 생물과 공존하면서도 사고를 막는 근본적인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립생태원 “무안공항 활주로 연장, 조류 서식지 제외해야” 의견
경향신문은 12일 이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무안공항 활주로 연장사업 환경영향평가서 보완서’에 대해 2022년 전문기관들이 낸 검토의견을 확보했다. 국립생태원은 검토의견에서 “조류 충돌 가능성을 최소화해야 한다”면서 “입지 및 배치 계획 시 조류의 집단 서식지를 제외해야 한다”고 지적헸다.
환경부는 국책연구기관인 한국환경연구원(KEI), 환경부 산하 국립생태원 등 전문기관의 의견을 기반으로 각종 개발 사업에 대한 환경영향평가 협의 의견을 낸다. 환경부의 보완 요청에도 불구하고 환경적 위험, 영향이 심각한 경우 평가서를 반려해 협의 절차를 멈출 수 있다.
국립생태원은 무안공항을 확장할 경우 갯벌과의 거리가 감소하고 조류 충돌 위험이 증가할 수 있으니 집단 휴식처 등을 조사해야 한다는 취지의 의견을 냈다. 국립생태원은 “활주로 남북측 지역의 경우 이착륙 빈도가 증가하고 비행체 유형이 변화하는 것에 대한 영향을 저감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무안공항 활주로 연장사업 환경영향평가서가 조류충돌 위험을 과소평가했다는 문제점도 지적했다. 활주로가 연장되면 항공기 이착륙이 늘어나므로 이를 반영한 조류충돌 가능성을 평가해야 하는데 평가 당시의 조류충돌 현황만으로 위험을 가늠했다는 것이다.
국립생태원의 이런 의견에도 불구하고 환경부는 2022년 4월 조류충돌 저감 방안을 마련하라는 포괄적인 의견을 달아 무안공항 활주로 연장사업에 대해 ‘조건부 협의’를 내줬다.
개발사업 ‘입지 타당성’ 따지기 어렵게 설계된 환경영향평가
무안공항 활주로 연장사업에 관한 환경영향평가 과정은 이 제도가 공항 같은 대규모 사업에서 ‘입지의 타당성’까지 검증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오랜 비판을 소환한다. 사업 입지가 상당 부분 정해진 뒤에 진행되는 전략환경영향평가에서 입지 타당성을 따지기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뜻의 비판이다. 공항 입지는 5년마다 수립되는 공항개발종합계획에서 결정되는데 이 계획은 전략환경영향평가 대상이 아니다.
환경영향평가는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계획·사업을 수립·시행할 때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예측해 환경보전 방안 등을 마련하도록 하는 제도다. 전략환경영향평가에서 환경적 측면에서 ‘계획의 적정성’ ‘입지의 타당성’ 등을 검토한다. 이후 환경영향평가 단계에서 사업이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영향을 예측·평가해 환경 영향을 피하거나 감소시킬 방안을 마련한다.
환경부는 2023년 3월 제주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에 대해서도 한국환경연구원과 국립생태원, 국립환경과학원 등 전문기관이 부정적 의견을 냈음에도 ‘조건부 협의’를 내줬다.
KEI는 2023년 말 낸 ‘전략환경영향평가 추진 절차 및 검토체계 개선방안’ 연구에서 “전략환경영향평가의 적용 시기는 사업 계획의 기본적인 내용이 수립된 이후”라며 “계획 수립이 완료된 이후에 전략환경영향평가 적용은 형식적·임의적 작성 및 협의 의견 반영의 한계로 실효성을 저해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연구원은 사업이 제안될 때부터 환경 영향을 평가하고 반영하는 체계를 갖춘 스코틀랜드, 독일 등의 사례를 들었다.
강은주 생태지평연구소 연구실장은 “갈등 관리·환경 영향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정책·사업 계획 단계부터 환경 영향이 평가돼야 한다”며 “환경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면 입지 도입 자체를 검토할 수 있는 제도로 자리 잡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 “‘야생생물과 공존’ 꾀하는 대책 필요”
환경부는 무안공항 활주로 연장 사업에 관해 사업자에게 협의 의견으로 “조류충돌이 최소화되도록 폭음기, 육식조류 모형, 조류 음파 퇴치 시스템 구축 등 구체적인 저감 대책을 수립, 이행하라”는 의견을 냈다. 환경부는 이 의원에게 “조류 충돌 방지 대책 관련 시설물은 활주로 연장 사업이 마무리되는 오는 7월쯤 설치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무안공항의 조류 충돌 대응팀은 주중 2명, 주말 1명 규모로 공항 내 조류를 쫓는 수준에 그친다.
전문가들은 조류충돌 방지 대책이 단순히 ‘공항 내부에서 조류를 쫓는다’는 대책을 넘어 ‘야생생물과의 공존’을 꾀하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유엔 산하 전문기관인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2020년 개정한 ‘공항 야생동물 위험관리 매뉴얼’은 공항 내부뿐 아니라 주변에서 야생동물 활동이 많은 지역을 주기적으로 조사하도록 했다. 항공기에 미칠 위험도를 평가하기 위해 생물의 정확한 종까지 알아야 하므로 ‘야생동물 전문가’도 필수라고 지적했다. 공항 반경 3㎞ 인근에는 야생동물을 유인할 수 있는 과수원, 쓰레기 매립장 등도 제한하도록 했다.
이후승 KEI 자연환경연구실 연구위원은 “캐나다 밴쿠버 국제공항의 경우 64명의 조류 전문가를 두고 매를 교육해서 조류를 원하는 곳으로 유도하기도 하고, 생태 조사를 통해 파악한 조류의 이동 패턴을 공항 안전 계획에 반영하는 ‘공존 중심 저감 전략’을 편다”며 “특히 월동하러 온 조류는 서식지가 안정적이면 이동 시간대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서식지 안정화를 하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