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를 지켜야 국민의힘이 산다

2025.01.13 21:21 입력 2025.01.13 21:24 수정

전쟁이 끝났다고 평화가 저절로 오는 건 아니다. 역사는, 하나의 전쟁이 끝나도 다른 전쟁이 시작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평화가 올지는 전쟁을 끝내는 방식에 달렸다. 내란 문제도 그렇다. 내란 사태로 형성된 전환의 골짜기를 어떻게 통과하느냐에 따라 대화정치로 갈지, 또 다른 전쟁정치로 갈지 결정된다.

내란으로 뒤통수를 맞은 국민의힘은 윤석열과의 인연을 끊고, 당을 바로 세우는 혁신의 길을 갈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윤석열 저항을 받아들이는 대신 집권세력의 책임감으로 순조로운 사법적 절차 이행에 협조하고, 야당과 정치일정을 합의, 과도기를 안정적으로 넘길 수 있었다. 전쟁을 끝내는 좋은 방법은 평화협정을 맺고 다시 전쟁하지 않는 관계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윤석열과의 결합 강도를 높여갔다. 그러고는 윤석열-당-극단세력으로 저항의 축을 형성해 대결정치를 시작했다. 위기가 닥치면, 평소 거리를 두던 극단세력에 의존하는 관성을 따른 것이다.

국민의힘에 견딜 수 없는 고통은 국가적 불안의 확산이 아니라, 전환 과정이 완료됐을 때 민주당만 고운 얼굴로 등장하는 것이다. 민주당이 국난 극복의 영웅으로 부상하는 걸 막고, 만에 하나 민주당 집권 시의 정통성도 미리 훼손해 놓아야 한다. 그래야 생존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살리기에 관심 없다. 그는 극단세력을 유인하는 미끼일 뿐이다. 관심은 오로지 하나, 죽은 윤석열로 산 이재명을 잡는 것이다. 전환의 골짜기에서 죽자사자 싸워야 한다. 진흙밭에서 상대 뒷다리를 붙잡고 한바탕 뒹굴면 양당 차이를 구별하기 어려워진다. 내란이 나쁜 건지, 내란 이후 정치가 나쁜 건지도 헷갈리게 된다. 이 과정에 상처가 적지 않겠지만, 상관없다. 민주당에 더 깊은 상처를 남기면 된다.

이런 정치에서 국민의힘은 보수일 필요가 없다. 실제 국민의힘은 자기 이념, 비전이 없다. 그것이 한 조각이라도 있었다면 기존 제도와 질서를 수호한다는 보수가 기존 제도와 질서의 기초인 민주주의를 공격하는 내란을 일으킬 수 없다. 국민의힘을 정의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지향성이 아니라, 무언가에 대한 거부다. 반대하고 싫어하는 것은 분명히 있는데 추구하는 것, 가려는 방향은 없다. 그동안에는 북한, 이제는 야당 지도자를 반대하는 것이 당 정체성의 핵심이다. 김정은과 이재명이 당 정체성을 구성한다는 것은 당 내면이 텅 비어 있다는 뜻이다.

정당은 공공선을 추구한다. 협소한 자기 이익을 추구하느라 공공선과의 충돌을 마다 않는 국민의힘은 파당이지 정당이 아니다. 그것도 자기 이익을 효과적으로 추구하는 능력이 아닌, 남을 망칠 수 있는 능력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파당이다. 어떤 기준으로도 국민의힘은 ‘보수정당’으로 분류될 수 없다.

국민의힘은 그러건 말건 신경 쓰지 않는다. 당 지지율이 급등했다는 사실, 이게 중요하다. 양당은 다시 동등한 지위, 대등한 발언권을 갖게 됐다. 국민의힘 전략이 먹힌 것이다. 내란이 민주주의에 대한 첫번째 충격이라면, 국민의힘 부상은 두번째 충격이다. 내란을 일으킨 건 윤석열이지만, 내란 이후 국가 혼란상을 조성한 건 국민의힘이다. 그런 국민의힘의 부상은 민주주의 위기 신호다.

이런 기괴한 상황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극단세력을 등에 업은 국민의힘과 민주주의는 공존할 수 없다. 국민의힘이 커지면 민주주의가 위험해지고, 민주주의가 튼튼해지면 국민의힘이 무너진다.

건강한 보수정당이 되도록 의원, 당원, 지지자가 힘을 합쳐야 한다. 국민의힘이 민주주의의 중요한 일부가 될 때 국민의힘도 살고, 민주주의도 산다.

어릴 때 일이다. 방바닥을 뛰고 무릎으로 기며 놀던 어느 순간 구들장이 꺼졌다. 무릎 아래 시커멓게 입을 벌린 구멍이 날 삼킬 듯했다. 구들장이 무너질 수 있는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언제나 그렇게 놀았고 그것 때문에 바닥이 꺼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바닥이 꺼지기 전까지는 ‘바닥이 꺼지는 사건’은 나의 세계에 존재하지 않았다.

40년 된 민주주의도 마찬가지다. 민주주의가 강해 보이는 건 그걸 지키려는 의지가 강했기 때문이지,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단단해서가 아니다. 의원 44명이 한남동 관저를 지키면서 민주주의를 지킬 수는 없다. 민주주의는 외부의 힘이 아니라, 민주주의 안에서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의지의 박약함으로 무너진다.

이대근 칼럼니스트

이대근 칼럼니스트

많이 본 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추천 이슈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