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성 불면의 밤을 지나며

2025.01.13 21:22 입력 2025.01.13 21:27 수정

잡혀갔나? 잠 못 드는 밤이 이어졌다. 눈 뜨고 못 볼 일은 늘어났다. 윤석열 체포를 막겠다며 ‘방탄의원단’이 관저로 모이고 경호처는 철조망, 쇠사슬로 저지선을 만들었다. ‘반공청년단’과 ‘백골단’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인권위원회는 ‘윤석열 방어권 보장 촉구’를 긴급 안건으로 상정했다. 내란범 체포가 지지부진하자 내전이 번지는 모양새다. 내란의 수괴는 윤석열이라면 내전의 야전사령관은 전광훈이라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이들은 갑자기 등장하지 않았다. 광화문 사거리 ‘윤석열 대통령 지키기 국민대회’는 계엄 사태 전 10월부터 열렸다. 2000년대 중반부터 ‘뉴라이트’ ‘태극기 부대’ 등으로 불리며 이어진 세력은 박근혜 탄핵 이후 ‘문재인 퇴진 국민대회’를 거치며 더욱 성장했다. ‘보수 개신교’는 이들의 진지다. ‘종북세력 척결’을 주장하는 이들과 ‘동성애 반대’ ‘학생인권조례 폐지’ ‘성평등 도서 퇴출’을 외치는 이들 사이엔 아무 장벽이 없다. 한국에만 있지도 않다.

일주일 후면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1기 트럼프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국회의사당 난입 폭동이다. 트럼프가 선거결과에 불복하며 부정선거 음모론을 제기하고 지지자들은 국회의사당을 무력으로 점거했다. 결국 진압되었지만 세계는 충격을 거둘 수 없었다. 그가 다시 돌아온다. 트럼프에 훨씬 더 충성하는 이들로 2기 행정부를 채우고.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굉음은 세계 곳곳에서 들려온다. 유럽 각국에서도 극우 정당 약진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두드러졌다. 많은 학자들이 이런 현상을 신자유주의가 심화시킨 불평등의 결과로 진단한다.

이들의 정치적 구호는 조금씩 다르다. 반이민, 반난민, 반무슬림, 반젠더, 반낙태, 반페미니즘, 반공산주의(트럼프는 해리스를 공산주의자라고 공격했다)…. 하지만 공통점을 찾기 어렵지 않다. 전통을 지키며 성실히 살던 애국자들이 ‘적’으로 인해 억압당하고 고난을 겪고 있다는 정동이 흐른다. 종교, 민족, 가족은 이들에게 매우 중요한 질서다. 유튜브를 매개로 한 확증편향이 강하며 정치를 신뢰하지 않아 자신들이 직접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여긴다. 말이 통하지 않고 상식을 무너뜨리는 이들을 대면하노라면 암담하다.

민주주의 위기에 관해서라면 나는 낙관하지 않는다. 윤석열의 계엄 시도보다 훨씬 심층적인, 체제의 위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에 관해서라면 나는 비관하지 않는다. 말이 안 되는 말, 정치가 못 되는 정치라면,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을 하며 익히 겪었다. 하지만 윤석열 퇴진을 요구하는 광장에서 평등은 기본값이 되어 있다. 답이 없어 보이는 현실에서도 전망을 밝히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무엇이 더 나은 미래를 향한 길인지 알아차리게 된다.

윤석열은 주권을 찬탈하려 했지만 우리는 빼앗기지 않았다. 평등과 연대가 자유롭게 흐르는 민주주의는 정권교체를 초과하여 미래로 가고 있다. 민주주의를 위한 싸움이 이미 시작되었던 덕분이리라. 불평등의 구조를 따라 번져나간 민주주의의 위기는 윤석열이 계엄을 선포하기 전부터 일상을 잠식하고 있었다. 두렵지만 포기할 수 없는 존엄과 평등을 지켜온 힘들이 지금 광장에서 만나고 있다. 혼자 남겨진 것만 같았던 그때, 우리의 주권자 되기는 시작되었던 것이다.

극우 세력은 끊임없이 새로운 숙주를 찾아내겠지만 그들은 무너뜨리기만 할 뿐 세우는 일은 할 수 없다. ‘탄핵 찬반’을 보도하는 언론을 보노라면 ‘동성애 찬반’을 토론하던 과거의 언론이 떠오른다. ‘탄핵 찬반’은 헌법에 대한 찬반을 묻는 것과 같다. 언론은 지금 광장에서 세우는 민주주의를 조명해야 한다. 윤석열에게 허락된 공간은 도로에서 관저까지 300m 남짓한 거리가 전부다. 우리가 세우기 시작한 민주주의는 그것을 능히 넘을 것이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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