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무상교육 국고 지원’ 재의요구에 교육청 반발···“재정여건 악화”

2025.01.14 16:45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시작하기 전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시작하기 전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정부가 고등학교 무상교육 비용을 국비로 지원하는 기한을 3년 더 연장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자 시·도교육청은 “정부의 책임 방기”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정부는 ‘교육청이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등으로 고교 무상교육 비용을 충당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교육청들은 ‘세수 결손으로 세입이 감소해 교육청 재정여건이 악화됐다’면서 시·도교육청 예산만으로 고교 무상교육 비용을 책임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맞서고 있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은 14일 입장문을 내고 “고교 무상교육 비용을 온전히 지방교육재정에 전가하는 것은 정부의 교육에 대한 책임 방기”라고 밝혔다.

정 교육감의 입장문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고교 무상교육 국비 지원을 연장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개정안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데 따른 것이다.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였던 고교 무상교육은 입학금, 수업료, 학교운영지원비, 교과용 도서 구입비를 국가 및 지자체가 부담하는 것이다. 고교 무상교육에 필요한 비용을 시·도교육청 47.5%, 국가 47.5%, 지자체 5%씩 분담해왔다. 지난해 말 해당 법 조항 일몰(효력 만료)을 앞두고 야당 주도로 국비 지원 기한을 3년 더 연장하는 교부금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최 권한대행이 이날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연간 1조원의 재정 부담을 중앙정부가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고교 무상교육은 기본적으로 시·도교육청이 책임져야 한다고 본다.

정부는 내국세의 20.79%를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시·도교육청에 배정한다. 올해 교부금은 지난해보다 3조4062억원 늘어난 72조2794억원이다. 반면 학령인구는 2022년 750만명에서 지난해 715만명으로 줄었다. 예산은 늘어가는데 예산을 쓸 학생 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시·도교육청에 여유가 있을 것이라고 정부는 주장한다.

시·도교육청은 세입은 줄어드는데 세출 부담은 점점 늘어나 재정 여건이 좋지 않다고 반박한다. 정부는 2023년부터 세수 결손으로 재추계해 당초 편성했던 예산 대비 교부금을 감액해 교육청에 내려보냈다. 2024년에는 4조3000억원이 감액됐다. 교육청 입장에선 교부금이 감액된 만큼 교육청 본예산도 감액해 편성할 수밖에 없다. 한국교육개발원도 ‘2024년 지방교육재정분석 종합보고서’에서 재정 건전성 판별 기준인 통합재정수지가 2023년 적자(-2.45%)로 전환됐다고 분석했다.

학령인구가 줄어도 늘봄교실, 유보통합 등 유치원과 학교가 책임져야 할 범위가 넓어지고, AI(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 같은 중앙정부 역점사업 비용도 시·도교육청 예산에서 지출해야 해 일선 교육청 부담이 커졌다. 교부금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최종 부결될 경우 시·도교육청은 1조원가량을 고교 무상교육 경비로 추가 부담해야 할 것으로 추산된다.

정 교육감은 “개정안이 시행되지 않을 경우 국가 및 지자체에서 고교 무상교육 경비로 부담하던 연간 약 1850억원을 매년 추가 부담하게 되어 서울교육재정의 어려움은 더욱 가중될 것”이라고 했다.

최교진 세종시교육감도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최근 2년간 정부의 세수 결손으로 그간 지원되던 교부금이 상당히 줄었고 각 시·도교육청에서는 적립한 기금으로 위기를 타개하고 있었다”며 “고교 무상교육이라는 중요한 정책을 대통령 권한대행이 거부함으로써 세종시교육청뿐만 아니라 전국 시도교육청의 주요 교육사업 추진에 큰 어려움을 마주하게 됐다”고 했다.

교육청마다 재정 여건 악화에 대비해 조성한 통합재정안정화기금 규모를 두고도 정부와 교육청 입장이 엇갈린다. 교육부는 올해 통합재정안정화기금 및 교육시설환경개선기금이 6조원 있으니 충분히 여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교육청은 시·도교육청별로 조성한 기금 규모가 다를 뿐 아니라 기금에서 고교 무상교육 비용을 충당하다간 빠르게 고갈될 것이라고 반대한다. 기금 조성 규모는 2022년 21조4000억원 → 2023년 18조7000억원 → 2024년 11조2000억원 → 2025년 6조원으로 감소하는 추세다.

서울시교육청은 2023년 통합재정안정화기금 6657억원을 적립했으나 지난해 세수 결손으로 기금에서 3300억원을 끌어다 사용했다. 서울시교육청은 “(고교 무상교육 비용으로) 1850억원을 교육청이 매년 추가로 부담한다면 2년 안에 재정안정화기금이 고갈되고 예전과 같은 지방채 발행 사태가 반복될 우려가 크다”고 했다.

기재부는 야당이 예비비로 고교 무상교육 지원을 하도록 한 점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정부는 올해 고교 무상교육 국비 지원 예산을 지난해보다 99.4% 줄여 52억6700만원만 편성했다. 야당은 올해 예산안을 단독으로 국회에서 처리하면서 목적예비비 1조6000억원 중 9500억원을 고교 무상교육에 쓸 수 있도록 조건을 달았다. 기재부 관계자는 “목적예비비를 고교무상교육 지원에 쓰면 신속하게 재해재난에 대응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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