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노인(3)

정년 연장하면 청년 손해?···“노인 부양 부담 완화”

2025.01.14 19:00 입력 2025.01.14 19:45 수정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조합원들이 지난해 12월 3일 국회 본청 앞에서 65세 정년연장 법제화 국회입법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조합원들이 지난해 12월 3일 국회 본청 앞에서 65세 정년연장 법제화 국회입법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한국은 지난해 말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지만, 정년 연장 논의는 아직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계속고용 관련 사회적 대화의 첫걸음을 뗐을 뿐이다. 당장 국민 5명 중 4명은 소득 공백을 알면서도 노후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2차 베이비 부머 세대 954만명이 곧 은퇴 연령에 도달하는 시점이 다가오는 가운데 경제에 미치는 타격도 클 것으로 예상된다. 정년 연장 논의가 시급한 이유다.

정년 연장이냐, 퇴직 후 재고용이냐

일단, 현재 연금 수급 연령과 법정 은퇴 연령은 일치하지 않는다. 기형적인 현 제도를 그냥 둘 수 없다고 지적하는 목소리가 크다. 2033년부터 전 국민의 국민연금 수급 연령이 65세가 된다. 지금의 60세 정년 체제로는 퇴직 후 5년간 ‘소득 공백’(소득 크레바스)이 생긴다. 특히 은퇴 시점이 다가오는 이들 가운데 80%는 소득 공백을 예견하고도 노후를 제대로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 보험연구원이 지난해 4월 발간한 ‘소득 크레바스에 대한 인식과 주관적 대비’ 보고서에서 60세 미만 150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비은퇴자 중 81.3%가 ‘은퇴 후 소득 공백 기간이 걱정되지만 아직 준비는 못 하고 있다’고 답했다.

더 큰 문제는 2차 베이비부머(1964~1974년생) 954만명이 앞으로 10년간 법정 은퇴 연령인 60세에 도달한다는 점이다. 전체 인구의 18.6%를 차지하는 2차 베이비부머가 노동시장을 이탈하면 경제적 충격도 커진다. 한국은행은 2차 베이비부머 세대가 은퇴하면 경제성장률을 최대 0.38%포인트씩 끌어내리는 요인이 된다고 분석했다. 반면 65세까지 고용을 의무화한다면 경제성장률 하락 폭을 0.14%포인트 줄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초고령사회에 대비하려면 사회 체계를 재설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년 연장, 임금체계 개편, 복지 재조정이라는 삼박자가 맞아야 하는 문제다. 각각의 쟁점을 살펴봤다.

노동계와 경영계 모두 정년 연장 논의를 더는 미룰 수 없다는 데는 동의한다. 각론에선 차이가 있다. 노동계는 법정 정년 65세 연장을 요구한다. 경영계는 60세에 퇴직한 후 1~2년 단위 계약직 형태로 재고용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사용자단체는 정년 연장의 혜택이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에게만 집중될 수 있다고 반대한다. 대기업일수록 정년제 도입 비율이 높다. 고용노동부의 ‘2023년 사업체노동력조사 부가조사’ 결과를 보면, 100인 이상 사업장의 91.1%가 정년제를 도입했지만 100인 미만 사업장은 20.6%만 도입했다. 중소기업의 약 80%는 정년제가 이미 없다.

다만 대기업에서도 노동조합이 없다면 정년 제도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도 있다. 대다수 사업장에서는 법정 정년 60세조차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한국경제인협회의 ‘2023년 중장년 구직활동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임금노동자의 ‘주된 직장’ 퇴직 연령은 평균 50.5세였다. 권고사직·명예퇴직·정리해고 등 비자발적 퇴직 비율이 56.5%로 정년퇴직의 5.8배에 달했다.

노동계는 중소기업·불안정 노동자에게 고용안정 혜택을 주기 위해서라도 정년 연장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반박한다.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년 연장은 고용안정을 우리 사회의 표준으로 인정할 것인가의 문제”라며 “불안정 노동자들에게 보편적으로 적용하기 위해서라도 정년을 연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하는 노인③] 정년 연장하면 청년 손해?···“노인 부양 부담 완화”

정년 연장하면 청년고용 위축된다?

정년연장이 청년 고용을 위축시키는지도 논쟁거리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20년 고령자 1명의 정년을 연장하면 청년(15~29세) 고용이 0.2명 감소한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반면 2006년부터 고령자 계속고용제도를 시행한 일본에서는 고령층과 청년층의 경제활동참가율이 전반적으로 유사한 패턴으로 움직인 것으로 조사됐다. 경제가 활황이면 고령자와 청년 고용이 함께 늘고 불황이면 함께 줄었다는 것이다.

정년이 연장되면 청년 일자리가 부족해질 것이라는 오해를 경제학에서는 ‘노동총량 불변의 오류’(lump of labour fallacy)라고 부른다. 과거에는 이에 근거해 생계부양자인 남성의 일자리를 빼앗지 않기 위해 여성은 직업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는 한 국가의 노동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잘못된 전제에 기초한다. 스콧 울라 미국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경제적 파이는 고정된 크기가 아니고, 파이의 각 조각이 모이면 더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령자·여성 노동시장 진출 →소비 여력 증가→경제 규모 확대의 선순환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정년 연장 논의는 미래 세대의 노인 부양 부담 절감 차원에서도 거론되고 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2024 재정포럼 12월호’ 보고서를 보면 한국은 10년 후 국내총생산(GDP) 대비 사회복지지출 비중이 28%를 넘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에 달한다. 통계청은 약 50년 뒤 한국 인구 2명 중 1명은 65세 이상 노인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제활동인구가 부양해야 하는 노인·유소년 인구 비율은 2022년 0.4명에서 50년 뒤 1.2명으로 3배 치솟는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은 “한국의 고령화 속도가 너무 빨라서 미래엔 사회가 복지 증세 속도를 감당하기 어려워진다”며 “노인이 일해서 세금을 내야 미래세대의 부양비 부담이 줄기 때문에 청년층과 노인층이 상생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정년 연장하면 임금피크제는?

정년을 연장하면 연공서열식 임금체계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두고도 노사의 의견이 엇갈린다. 경영계는 고령자의 임금을 대폭 삭감해야 한다고 본다. 고령자에게 초과근무시 가산임금 1.5배 적용을 제외하거나, 재고용 시점부터 근속연수를 재산정해야 한다고 본다. 노동계도 정년을 연장하면 임금피크제 도입 등 임금 조정 필요성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다. 다만 노동계는 임금 조정 여부를 노사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본다.

박 연구위원은 “노동계는 고령자들의 고임금을 주장하지 않는 대신 청년 고용을 요구하는 등 상생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며 “사용자도 임금이 경직적으로 올라서 부담된다면 고령자의 노동시간을 단축해 임금을 조정하는 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노인 연령 “75세 상향” vs “시기 상조”

노인 연령 상향도 주요 쟁점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0일 ‘2025년 주요업무 추진계획’을 통해 노인 기준 연령을 높이는 사회적 논의를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이중근 대한노인회장은 지난해 노인 연령을 현행 65세에서 75세로 매년 1년씩 단계적으로 올리자고 정부에 제안한 바 있다.

노인 연령 상한은 복지 구조조정과 관련이 있다. 현재 시행 중인 49개 주요 복지사업 중 기초연금 등 24개(49%) 사업이 65세 이상의 연령 기준을 적용한다. 시장형 노인일자리 등 14개(29%) 사업은 60세 이상의 연령 기준을 적용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22년 ‘노인연령 상향 조정의 가능성과 기대효과’ 보고서에서 올해부터 10년당 1세 정도의 속도로 노인 연령을 지속적으로 올리자고 제안했다. 그러면 2100년 노인 연령이 73세로 한국의 생산연령인구 대비 노인 인구 비율(60%)이 현행 65세 기준으로 할 때에 비해 36%포인트 낮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노인 연령 상향이 시기상조라는 반론도 있다. 노인 일자리·복지 정책이 뒷받침되지 않는 노인 연령 상향은 빈곤 노인만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고령자들의 경제활동참여에 대한 제도적 기반 없이 바로 노인 연령을 법률적으로 올리면 노인들이 기존 복지 수혜에서 배제된다”며 “일단 65세 이상으로 고용 연령을 올리고, 2단계로 70세까지 계속 고용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된다면, 노인 연령 70세 상향을 그때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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