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야당·중국 결탁했다는 ‘부정선거론’ 주장
트럼프 시대 대비 균형 외교 움직임에 ‘역행’
“외교적 사안을 국내 정치에 활용” 비판
“중국과 외교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도”
12·3 비상계엄 사태 후 극우 지지층 결집에 몰두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이 반중국 의식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 출범을 앞두고 전략적으로 미·중 균형 외교에 공을 들이던 정부 방침에 역행하는 것이다. 외교 골든타임으로 불리는 시기에 대통령이 개인의 안위를 위해 국익을 훼손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체포된 윤 대통령은 야당과 중국의 정치적 결탁을 주장하며 색깔론 공세를 펴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5일 공개한 메시지에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했다. 그러면서 “부정선거 시스템은 이를 시도하고 추진하려는 정치 세력의 국제적 연대와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말한 ‘국제적 연대와 협력’의 대상은 중국과 북한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됐다. 그는 같은 날 체포되기 전 여당 의원들을 만나 2030 세대의 탄핵 반대 집회 연설에 대해 “친중 세력에 대한 반감이 담겨 굉장한 감동을 받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윤 대통령 측은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답변서에서도 민주당이 “이 땅을 중국과 북한의 식민지로 만들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의 이 같은 행보를 두고는 지지층 결집을 위해 반중 여론을 조장해 이념 갈라치기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여권 관계자는 16일 기자에게 “윤 대통령이 평소 사석에서도 거칠게 특정 국가를 비난하는 표현을 썼다”며 “아무래도 비상계엄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사유를 설명하면서 감정이 격해진 게 아닐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최근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도 비상계엄 사태와 중국을 연결시키는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다. 중국을 끌어들여 색깔론 공세를 폄으로써 극우 보수층을 결집시키고 내란 사태의 본질을 흐리겠다는 의도다. 김민전 의원은 지난 2일 “가는 곳마다 중국인들이 탄핵소추에 찬성한다고 나선다. 이것이 탄핵의 본질”이라고 했고, 이상휘 의원은 지난 10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신화통신 기자가 포함된 외신기자들과 비밀 회동을 가졌다”고 말했다. 이 의원이 ‘비밀 회동’이라고 주장한 것은 외신기자 간담회였다.
윤 대통령과 여당 의원들의 이런 발언은 트럼프 정부 출범을 앞두고 미국 초밀착 기조에서 미·중 사이 균형 외교로 선회하던 정부의 외교 전략과도 배치된다. 정부는 트럼프 정부의 대중국 적대 정책에 지나치게 연루되지 않으면서도 중국과의 관계를 다져야 하는 과제를 안았다. 윤 대통령도 지난해 11월 미국 대선 후 브라질 등 중남미 순방에서 현지 언론 인터뷰를 통해 “한국에 있어 양국(미·중)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는 아니다”고 한 바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제 관계 전문가는 통화에서 “트럼프 정부 출범을 앞두고 외교 지형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며 “한국 외교 전략의 큰 틀을 구상하고 섬세한 전략 구사가 필요한 시점에, 이를 모를 리 없는 대통령이 반중 발언을 하는 건 국익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외교적인 사안을 국내 정치에 활용하는 경우는 정권을 불문하고 늘 있었는데 절대 고쳐지지 않는다”며 “정치권이 반성해야 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외교적 결례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황재호 한국외대 교수는 “국민이 보편적으로 느끼고 있는 중국에 대한 반감을 악용해 지지 세력을 모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며 “외교 문제로 비화할 수도 있어 정치권이 신중해야 하는데 좀 우려되는 바가 있다”고 말했다.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장은 “심각한 외교 결례”라며 “강대국들은 어떤 형태로든 보복할 능력이 있다”고 했다. 김 소장은 “내정이 대외 정책을 주도하게 두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라며 “국제 정세를 이분법적으로, 제로썸 형태로 해석하면 그 비용은 향후 과다 청구될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김대기 전 비서실장을 주중대사로 지명했으나 비상계엄 사태 이후 모든 절차가 중단됐다. 아직까지 윤 대통령의 충암고 동창인 정재호 대사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